사회학자인 조은 동국대 명예교수는 1986년에 사당동에서 만난 한 가난한 가족을 25년 동안 따라다닌 이야기를 고스란히 책에 담았습니다. 제목은 ‘사당동 더하기25’입니다. 보통 교수들의 저서는 책상위에서 단기간에 쓰여 집니다. 그런데 조 교수의 이 책은 무려 25년에 걸쳐 객관적 입장을 고수하며 쓰인 것이지요. 편한 마음으로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을 25년간이나 만나면서 학문적 연구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존경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렇게 ‘별난’ 학자가 우리 영광 사람인데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중학생 시절 이웃집에서 살았던 여고생이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습니다. 의사 남편과 잘난 아들들을 키워낸 조 교수는 더불어민주당 선출직공직자 평가위원장으로 세간의 관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국회의원 공천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입니다. 정치에 입문할 수도 있겠다 싶었으나 정치는 거기까지였습니다.

조 교수는 정년 후 ‘사당동 더하기25’에 8년을 더했습니다.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당동 사람들과 33년을 함께하며 그들의 삶을 지켜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과의 대화를 영상에 담아 ‘사당동 더하기33’이란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올해 서울 독립영화제에 이어 제9회 광주독립영화제에 초청받았습니다. 33년 세월을 120여분에 담았지만 가난을 대물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여과 없이 담아낸 영화는 우리의 아픈 과거를 소환해내기에 충분했습니다.

나라는 세계 10대 경제대국을 노래하지만 가난을 대물림하며 살아가는 사당동 사람들이 거친 언어로 풀어내는 삶의 이야기는 큰 울림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조 교수와 그들-사당동 사람들과의 대화에는 보통 사람들이 입에 담지 못할 단어들도 거침없이 등장했습니다. 그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고백들이 튀어나왔습니다.

‘사당동 더하기33’은 서울독립영화제에 이어 4일부터 7일 까지 광주극장에서 열리는 광주독립영화제에도 초청을 받았습니다. 지난 토요일(5일) 사당동 사람들과 조 교수를 만나러 광주극장엘 갔습니다. 85년 역사를 간직한 광주극장은 68년 화재로 신축한 반세기 전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돈 버는 것을 지상의 가치로 아는 세상에서 광주 최고의 역사문화 공간으로 지켜준 주인장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옛날식 극장에서 김지미, 박노식, 황해, 김진규, 신영균, 허장강 등을 만나고 ‘사당동 더하기33’을 마주했습니다. 33년 세월은 조 교수와 사당동 사람들을 허물없는 사이로 만들었더군요. 이제 조 교수가 아닌, 국가가 사당동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아직도 저를 떠나지 않네요. 조 교수님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해법을 이야기할 때가 아닐까요?

조일근 편집위원장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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