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나 자신을 속일 수 있을까? 정신과 의사들이나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자기 자신을 얼마든지 속일 수 있다고 한다. 정신과 의사들에 따르면 알코올 중독환자의 대부분이 자신이 중독자임을 부인한다는 것이다. 보호자와 함께 정신과 병원을 방문하는 중독자는 자신은 알코올 중독자가 아니며 술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적이 한 번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부인은 다른 주장을 하면서 술 먹고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간적도 있고 술로 인해 시비가 붙어 싸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하소연한다. 그래도 당사자는 중독이 아니라고 끝까지 버틴다.

이렇게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알아보기 위해 2000년에 캐나다 맥길 의과대학의 정신과학 교수인 애슐리 와자나는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했다. 의대생들을 상대로 정치가가 로비스트로부터 뇌물을 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결과는 85%이상이 부적절하다고 답했다. 이 교수는 같은 학생들에게 의사가 제약회사로부터 향응을 제공받는 것은 어떠냐고 물었다. 여기서는 46%만이 부적절하다는 답이 나왔다. ‘내로남불’이다.

사람들은 이렇듯 자신과 관련해서는 관대하고 이성적이지 못하다. 객관적이고 이성적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위치도 아닌데 진실하지 못한 것을 진실한 것으로 여기도록 스스로 오도하고 그릇된 생각을 정당화하려는 생각을 ‘자기기만(Self-deception)’이라고 한다. 자기 아들이 학교에서 다른 아이를 때렸다는 연락을 받고 온 학부모는 무조건 상대 학생이나 선생님을 윽박지르며 ‘우리아이는 그럴 리가 없다’고 큰소리치는 것도 자기기만이다.

이런 자기기만은 스스로 믿고자 하는 것에 대한 무의식적 소망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반박 증거가 나와도 쉽게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증거를 대는 사람에게 공격적으로 대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진실을 인정하게 되면 자기에게 미칠 파장이 두려워 자기기만에 빠지기도 한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십 년째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이런 자기기만에 해당한다. 어느 쪽이든 진실을 인정하게 되면 소망을 포기하거나 불안을 감수해야 되므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진실쯤은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판적 사고에 능한 지식인들이라고 해서 자기기만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한다. 수많은 연구결과들이 다른 연구 팀들에 의해서 재확인 되지 않아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주 많다. 시시각각으로 발표되는 수많은 참신한 결과들 중 몇 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 타당성을 인정받는 것은 단 몇%에 불과하다. 이런 면에서 학술연구조차도 자기기만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준다.

심리학자들은 소망적(所望的) 사고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지식인들이 더 자기기만에 빠지기 쉽다고 말한다. 자신은 오류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확신이 서있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오류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논리적 사고에 익숙하기 때문에 역(逆)으로 그릇된 사실을 뒷받침하는 논리적 근거를 잘 끌어다 맞춘다. 이런 한계 때문에 우리의 과학은 비슷한 영역의 전문가 집단에 의한 재확인이나 실험에 의한 반증을 통해서만 한 발짝 한 발짝 전진할 수 있도록 규제되어 왔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다는 노벨상을 우리나라가 못 받는 이유도 자기기만과 무관하지 않다. 학생들이 새로운 연구를 하는 것보다도 이미 나와 있거나 교수가 원하는 것에만 집중하므로 노벨상에 가까이 갈수가 없는 실정이다. 이웃나라 일본은 현재까지 28명이나 수상했다. 교육방식이 비슷하고 두뇌도 비슷한데 우리가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자기기만이 많이 작용했다고 본다.

그러나 자기기만이 좋게 이용하면 필요할 때도 많이 있다. 긍정적 사고방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위적으로 자기기만을 강조한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객관적 평가보다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나 희망과 긍정을 잃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 나간다. 만약 우리가 너무 정직하여 자신의 능력과 삶 전반을 객관적 시각에만 치우친다면 아마도 우리들은 우울증과 좌절, 그리고 삶에 대한 후회 속에서 벋어나기 힘들 것이다.

이경일 회사원(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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