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도(道)-전라북도, 3읍(邑)-백수읍, 영광읍, 홍농읍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법성포는 조선시대 서해안의 최대 항구였다.

임금이 이르기를 “조운의 정사가 얼마나 중대한 일인가. 땅을 떼어 관할을 바꾸기 전에 영(營)과 진(鎭)을 서로 비교하여 반드시 동등하게 만들어야할 것이다. 영광군에서 진량면을 ‘법성진’에 떼어 주어 독립된 진으로 만들고 첨사를 변지이력(邊地履歷)의 자리로 삼으라”하였다. 「정조실록」 제27권 1789년 윤5월 22일자 기사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조선 22대 왕, 정조의 어명이다.

‘법성’은 이렇게 정조 때부터 영광군에서 떨어져 나와 고종 32년까지 무려 106년(1789년~1895년) 동안 영광군수가 아닌 법성첨사가 독자적으로 고을을 다스렸던 특이한 내력을 지닌 고을이다.

▲최근 세운 ‘법성포 진성마을’ 표지석. 조선 22대 정조대왕 어필 집에서 집자(集字) 하였다.

또한 법성포는 ‘백제토성’을 비롯하여 고려 5백년, 조선 5백년, 도합 천 여 년 동안 전라도 각지에서 들어온 세금(곡식)을 뱃길을 이용해 개경과 한양으로 실어 나르기 위한 조창(漕倉)이 자리했던, 정사(正史)에 기록된 고을이다.

역대 조선 왕들 가운데 정조는 다른 왕에 비해 글씨를 잘 썼다.

정조는 “당나라 서예가 안진경의 곧고 굳건한 글씨에 심취하여 ‘마음이 곧 글씨’(心劃論)라는 좌우명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리더라면 정조처럼] 김준혁. 2020년 발간.

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지은 시에서 시작하여 유명을 달리했을 때까지 남긴 글들을 모아 정리한 ‘홍제전서’에는 이곳 법성포의 향토사에 큰 획을 그은 조창의 중요성과 함께 ‘법성창’의 내력이 기록으로 남아 전하고 있다.

“나라가 있으면 ‘조’(漕)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중종 때는 나주의 영산창을 없애면서 그것을 영광의 법성창에 소속시켰고, 숙종 때는 해운판관을 없애고 양호(충청도와 전라도)의 도사가 겸임토록 했었다.” [홍제전서] 제12권 서인 5

조운의 중차대함을 일깨우며 조운 정사에 심혈을 기울였던 정조는 재위 13년인 1789년 윤 5월에 법성창을 관할하는 법성진을 독자 권역(獨鎭)으로 승격시켰다.

조선시대 독진으로 승격시킨 곳은 여러 곳이다. 그러나 영광군의 26개 면 가운데 진량면(현 법성면), 한 고을을 떼어내 영광군수의 간섭을 받지 않고 법성진장이 고을 수령이 되어 3정(군정-軍政, 전정-田政, 환정-環政)을 행사토록 한 예는 법성 독진이 처음이었다.

지금은 법성포가 말단 행정면의 한낱 어촌으로 전락하였지만 조선시대 법성포는 군사요충지이자, 국가재정의 중추기관인 세곡을 거둬들였던 조창이 있었던 고을의 치소였다. 진성마을 사람들은 유구한 마을의 역사를 상기하고 고을발전을 위한 첨병임을 다짐하며 이 마을비를 세웠다고 한다.

▲동짓재에서 바라본 법성포 전경

법성포, 꿰매지지 않은 구슬

2019년 법성문화진흥원에서는 법성포에 <법성포역사문화탕방길>을 조성했다.

아직 듬성듬성, 엉성하지만 빈자리를 차근차근 채워,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소중한 자산이 되리라 확신한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법성포 진내리 마을 구석구석’은 ‘꿰매지지 않은 구슬’이었다···‘역사의 구슬’들을 한데 묶어 ‘역사의 보물창고’로 만드는 노력이 부족했다. 모두들 먹고 살기에 급급했기에 그럴 수도 있었고, 또, 지역의 역사를 잘 보전하려는 행정기관의 노력이 결여됐기 때문에 빚어진 일일 수도 있다.” 「전라남도 홈페이지」 전

남역사이야기 백일흔 여덟 번째 이야기. ‘법성포, 지붕없는 역사박물관(하)’ 최혁 지음

고려 5백년, 조선 5백년, 도합 천 여 년 동안 유구한 역사와 문화유산을 감춘 채 속살을 들어 내 놓지 않고 있는 ‘법성포’에는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이 고을의 정서가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는 구슬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지금은 법성포가 말단 행정면인 한낱 어촌으로 전락하였지만 조선시대 ‘법성포’는 군사 요충지이자 국가재정의 중추기관인 조창이 자리했던 고을의 치소였다. 우리나라 정사(正史)에서 빼 놓을 수없는 중요한 고을이었다.

조선시대 백과사전으로 평가되고 있는 「임원경제지)」(서유구)에서 꼽았던 전라도 명당 터 17곳 중 하나가 법성포였다. 또, 포구를 감싸고 있는 산들이 천혜의 방파제가 되어 천여 척의 배들이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었던 서해지역 호남권역의 대표적인 항구가 바로 ‘법성포’였다.

2019년 법성문화진흥원에서는 법성포에 <법성포역사문화탕방길>을 조성했다.

아직 듬성듬성, 엉성하지만 빈자리를 차근차근 채워,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소중한 자산이 되리라 확신한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법성포 진내리 마을 구석구석’은 ‘꿰매지지 않은 구슬’이었다···‘역사의 구슬’들을 한데 묶어 ‘역사의 보물창고’로 만드는 노력이 부족했다. 모두들 먹고 살기에 급급했기에 그럴 수도 있었고, 또, 지역의 역사를 잘 보전하려는 행정기관의 노력이 결여됐기 때문에 빚어진 일일 수도 있다.” 「전라남도 홈페이지」

▲「영남호남연해형편도(嶺南湖南沿海形便圖)」 (편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지금은 목포와 군산이 손꼽히지만 조선시대 ‘법성포’는 수도 한양은 물론 중국과 해로가 활짝 열려있던 서해안의 손꼽히는 물류 중심 항이자 교역 항이었다.

또, 얼마 전까지 신안군청을 목포에 두었듯이 현재의 신안군을 관할했던 지도군 청사를 이곳 ‘법성포’에 두려고 했을 정도로 대단했던 고을이었다. 「독립신문」 1897년 3월 1일자 기사

또, 빼어난 경관으로 ‘소동정호’(小洞庭湖)란 별호로 불리며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제집 드나 들 듯 했던 고을이었다.

「여지도서」 영광현 산천 법성포 실로 목포와 군산항을 능가했던 고을이 법성포이다. 「朝鮮の港灣」 朝鮮總督府, 第10節 法聖浦(全羅南道 靈光郡)(49쪽), 「法聖浦物語」 崗本周峰日韓合倂前後の法聖浦(12쪽)

▲「황성신문」1899년 8월 10일자 기사/금년 7월초에 내부에서 정부에 청의하기를 지도군수의 보고와 해 군민인의 등소(等訴)를 의하야 지도 군아(郡衙)를 영광군 전(前) 법성진으로 이정(移定)하겟다 하거늘…

수모당한 법성첨사 비

1897년 10월에 목포항이 개항되고 8년 뒤인 1905년 1월에 일본 오사카에서 오하타라는 사람이 법성포에 이주하여 정미소와 운수업을 했다. 최초 이주한 일본 사람이 다. 곧 이어 갯벌지역이었던 지금의 법성2리를 매립한 목포의 무라카미회사도 개설되었다. 또, 요코미찌가 이주하여 석유·운수·잡화점을 하였고, 1906년에는 주재소가 개소되고, 헌병분견소에 뒤이어 조선해수산조합 법성포출장소와 곡물검사소가 개소되었다.

그리고 문제의 가와사키가 등장한다. 1915년에 고베 출신인 가와사키(川崎)라는 사람이 ​법성고을 사람들은 이 마을을 그냥 농장이라 불렀다.

전남농장을 설립하고, 역시 갯벌지역이었던 지금의 고진아파트(옛 법성중·고 터) 일대를 매립하여 6천여 평의 일본인 전용 마을을 조성했다. ​법성고을 사람들은 이 마을을 그냥 농장이라 불렀다. 「조선총독부 관보」, 「조선의 항만」, 「법성포물어」, 「한국수산지」, 「법호견문기」

▲천기농장-일본 고베 갑부 가와사키가 1915년부터 1917년까지 조성한 전남농장을 1945년에 양영학원에서 사택을 제외하고 농장 사무실과 창고, 야적장 등을 불하 받아 5년제 중고등학교로는 영광군내 최초로 법성포수산중학교를 설립하였다. 양영학원은 법성고을사람들과 독지가들의 후원으로 설립된 학교재단이다. <사진=문일성>

가와사키농장이 준공된 1917년에 법성포에 살았던 일본인들은 계략적으로 150여 명에 이른다. 「통계연보」

요시가와라는 자가 주임이었는데, 그의 주거는 규모나 경관이 대단히 잘되어 있었고, 그 위에 다는 풍농(豊農)을 기원하던 신사가 있었는데 그곳은 성역이라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이었다. 「법성향지」 (1988년) 462쪽

이들은 일제강점기 내내 일본 순사와 헌병을 등에 업고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을 저해하고, 거들먹거리기 일쑤였다. 특히 가와사키 전남농장 사택지역은 법성포의 특수지역이었다.

▲1945년 현재 법성포내 일본인 거주 약도<법경헌 소장 사료>

이렇게 떵떵거리며 살던 일본사람들이 비각거리에 있는 선정비를 자기집 정원 다릿돌로 놓은 무례를 범하며 주민들을 자극했다. 이 일은 1923년에 있었던 실화이다.

▲1923년에 일본사람들이 다릿돌로 썼던 유석규 첨사비다. 2007년에 농장 마을 주민(이종길)이 수습하여 보관하고 있다가 2020년 6월에 ‘법성포 역사․문화 탐방길’을 조성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법성포노인회 전남 법성포에서는 거(去), 음(陰) 정월 15일에 50세 이상의 노인들이 회집하야 노인계 설립총회를 개최하엿는대 그 목적은 사회사업을 원조하자는 것이라는 바 이 동기는 당지 청년의 사업이 무능함에 인함이라더라. 「동아일보」 1924년 3월 16일자 기사

사태가 이러함에도 3~4십 대 청장년들은 부끄럽게도 일본사람들의 방자한 무례에 맞서지 않았다. 지역사회의 교화와 발전을 위해 법성포교풍회를 결성하는 등, 의욕만 앞섰지 첨사비가 다릿돌로 놓이는 수모를 당해도 수수방관하고 팔장만 끼고 있었다.

​결국, 이를 못 마땅해 하던 노인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1924년에 노인회를 결성하고 노인들이 나섰다. 그리고 ‘비각거리’ 선정비를 모두 숲쟁이로 옮겼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숲쟁이로 옮겨 보는 눈이 많아야 이런 수모를 면할 수 있을 거라고...

1924년 3월 16일자 「동아일보」에는 ‘법성포노인회 창립’ 제하 기사가 게재되어 있다.

「동아일보」의 이 기사는 지역 청년들의 분발을 촉구하고, 노인들이 앞장서게 된 동기를 알렸던 기사다.

유창수 기자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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