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팔린 술이 만병이었다네’ 글에서 ‘조대마당’이라 한 지역을 법성사람들은 ‘핵고당’ 앞이라고 한다.

‘핵고당’은 전라감사 소세양 공이 ‘법성포 신루’ 제목의 시, 첫 구절에서 ‘위태롭게 솟은 누각 넘어질 듯 외롭다’고 한 ’동조정(董漕亭)‘을 일컫는 말이다.

풍류정자에 많이 쓰였던 정자 정(亭)를 쓴 건물이지만 풍류정자와는 다른 면도 있고, 풍류정자와 닮은 면도 있는 제법 규모 있는 6칸 건물이다. 법성첨사의 정청인 ‘동헌’이 5칸 건물이었으니 「법성진진지」 ‘동헌’보다 컸던 건물이다.

<사진출처=법경헌>

‘동조정’은 법성첨사가 전라도 지역에서 세금으로 거둬들인 곡식을 검사하고 계량하기위해 지은 법성첨사 집무실이었다. <「지도군총쇄록」 오횡묵>

그런데 ‘법성진’이나 ‘법성창’에 출장한 관리들이 남긴 시로 미루어 때로는 연희장소로도 쓰였던 곳이다.

동조정, 전라도 세곡을 검사, 계량하는 법성첨사 집무실

초대 지도군수 오행묵이 1896년 음력 5월에 임지인 지도로 가는 길에 법성진을 들렸을 때 이 ‘동조정’을 ‘좌기청’이라 하였고, 1807년 음력 11월 선전관 윤수임의 ‘법성진’ 화재 보고서에도 ‘좌기청’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법성첨사의 집무실이란 뜻이다.

이렇게 이 ‘동조정’은 집무 공간임이 분명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정경이 한 폭의 그림이었던 곳이었으니 풍류정자와 진배없이 시도 짓고, 창도 하며 연희를 했던 건물이다.

“(전략) 5월 13일 고군산에서 이곳까지는 300리 길이요, 80여리를 돌아 들어가면 항구(법성포)가 있는데 사방을 산이 껴안은 가운데 하나의 별세계가 열려있다.

민가 천여 호가 고기비늘처럼 붙어 있어 제비집 같다. 항구 앞에 이르면 배의 노가 화살촉처럼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 마치 삼밭 같다.

동헌은 반쯤 언덕진 곳에 있어 각 관아 건물을 차례로 배치하였고, 관아 오른쪽에 객사가 있고, 좌기청(동조정)이 있으며…(후략)” 「지도군총쇄록」 1896년 5월 13일자 일기

「법성진진지」(1895년)에는 “법성창이 폐쇄되었던 1890년 이후부터 동조정이 중간 중간 무너진 상태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1897년에 새로 생긴 지도군 향교와 객사를 짓기 위해 뜯겨서 쓸만한 재목만 배에 실어 지도로 옮겼다. 「독립신문」

‘학교뿌리를 일제에 두고 있는 법성포초등학교 출신들’

이후, 이곳은 영광 갑부 조희경이 소유하게 된다. 그리고 이 건물을 이용하여 1908년에 지금의 ‘법성포초등학교’가 문을 연다. 「매일신보」 1908년부터 ‘법성포초등학교’ 역사가 여기서 시작된다. 그런데 지금, 이 학교 출신들의 뿌리는 여기에 있지 않고 1920년에 이 학교를 그대로 이어받아 이 학교를 폐교하고, 일제가 개교한 ‘법성포공립보통학교’에 있다.

▲「매일신보」 1916년 제3124호 4면 4단기사 : 법성포보교와 유지 전남 영광군 법성포 사립보통학교는 명치 41년(1908년)에 포 내 인민들이 공동으로 설립한 것인데 원래 저축한 기본금이 무(無)하고(없고), 교사(校舍)가 무(無)하여(없어) 가용(可容)의 방(方)이 무(無)하더니(운영할 방법이 없었는데) 신(辛)히(다행히) 본도(전라남도) 유수한 재산가 영광군 ‘조희경’씨의 정각(亭閣)을(동조정)을 무상임차를 수(受)하야(무상으로 빌려) 근근유지하다가····

원사립과 핵고당

개화기에 법성포에는 보통학교가 두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장대호 소유의 ‘작청’터에서 설립된 ‘법성사립보통학교’와 조희경 소유의 ‘동조정’ 터에서 개교한 ‘사립 법성포보통학교’(지금의 법성포초등학교)가 서로 이웃하고 있었다.

한 지역에 이름이 비슷한 두 학교가 이웃하고 있으니 고을 사람들은 헷갈려 호칭에 혼동이 생겼다. 그래서 법성 사람들은 1906년에 처음 생긴 ‘법성사립보통학교’를 ‘원사립’이라 하고, 나중에 생긴, 1908년에 생긴 ‘사립 법성포 보통학교’를 ‘핵고당’ 또는 ‘보통학교’로 구분하여 불렀다.

이 글도 비슷한 학교 이름으로 쓰면 읽으시는 분들이 혼동하실 것 같아 백여 년 전 법성 사람들 같이 ‘원사립’과 ‘핵고당’으로 구분하여 서술하였다.

중추원 의관을 지낸 장대호라는 분이 어떤 연유에선지 연고가 없는 법성포로 이주하여 터를 잡았다. 그리고 작청터를 비롯한 조선시대 관아 터를 소유하게 된다. 「지적도」(1915년) 그리고 이분 소유가 된 형방청 건물과 그 터를 이용하여 1906년에 법성포 사람들이 출연하여 「법호견문기」 ‘원사립’을 설립하였다. 「법성향지」 ‘원사립’은 교장에 장대호 「조선신사보감」 교감에 이화복, 총무에 이장섭, 사무원에 전명욱, 장형선, 교사에 서울에서 초빙한 최한주 선생이 맡아 학교를 운영하였다. 「황성신문」

소위 신식학교라 했던 이와 같은 학교는 처음에 학생들을 모집하는데 꽤 애를 먹었다고 한다. 깨어 있던 몇 사람 외에는 아이들을 도통, 학교에 보내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학하려면 상투를 잘라야 했기 때문이다.

왕이 스스로 상투를 자르고 전국에 단발령을 공포했음에도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불감훼손이 효시지야니라”고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은 아버지, 어머니의 육신에 가위질을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반발했다. 분위기가 이러하니 학교는 문을 열었는데 부모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입학한 학생들에게는 학비도 무료요, 학용품도 공짜로 주는데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몸과 머리카락과 피부는 부모에서 불려 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하지 않음이 효도의 시작이니라.”

“신식 공부를 하고 싶은데 우리 아버지가 못 가게 해 댕길 수가 없었어…. 그때는 머리 깎고 학교 가면 부모들이 초상난 집같이 울었네. 아이고, 아이고 소리 나서 쫓아가 보면, 우리 아들이 머리 깎았네 해. 그러면 동네 사람들도 따라 울었네.”

-상산 신명희(1901~1986) 선생의 대담 녹취록에서

영광지역에서는 개화의 영향을 가장 이른 시기에 맞았던 법성이었지만 당시의 분위기가 이러했으므로 입학하는 학생들의 학비는 물론 교재와 학용품을 무상으로 제공하면서 학생들을 모집했다. 「법성향지」

​1908년에 이르러 일제는 ‘사립학교령’을 공포하고, 이 령에 맞춰 모든 사립학교는 당국의 인가를 받도록 하였습니다. 이 문제로 ‘원사립’이 둘로 갈라지게 된다.

인가를 받아야 한다는 측은 “관인 학교가 되지 않으면,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도 학력을 인정받지 못하여 상급학교 진학 길이 막히고, 취업도 할 수 없게 될 뿐 만 아니라 학교 운영도 어렵게 된다”라는 논리다. 인가를 반대하는 측은 “관인 학교로 전환되면 매사 ‘조선통감부’의 간섭을 받게 되어 일제가 의도하는 대로 식민지 학교가 된다”라는 논리로 관인 학교 인가에 반대하였다.

▲갱승인허(&#14981;承認許) : 사립학교령(私立學校令)이 칙령(勅令)으로 반포(頒布)된다&#62789;은 전보(前報)에 게재(揭載)&#62775;얏거니와 해(該) 안건(案件)이 반포(頒布)된 후(後)에 기왕(旣往) 학부인허(學部認許)를 승(承)&#62778; 학교(學校)라도 해(該) 인허(認許)&#57989; 물시(勿施)되고 갱(&#14981;)히 승인(承認)&#62775;기로 정(定)&#62775;얏다&#57989; 설(說)이 유(有)&#62775;더라. <『황성신문』1908년 7월 3일자 2면 3단 기사>

▲「황성신문」 1908년 8월 8일 자

결국 접점을 찾지 못하고 관인 학교 인가에 찬성하는 쪽에서 영광 갑부 조희경 소유의 ‘동조정’과 그 터를 이용하여 1908년에 ‘핵고당’을 설립하여 학생들도 양쪽으로 갈라지게 된다. 그리고 ‘핵고당’은 1910년에 보통학교 인가를 받아 관인 학교가 된다. 이 학교가 지금의 ‘법성포초등학교’이며, 1920년에 일제가 이 ‘핵고당’을 폐교하고, 이 학교의 자산과 학생들을 그대로 승계하여 ‘법성포공립보통학교’를 설립하였다. 그럼에도 ‘핵고당’의 학교사를 배제해 버려 2020년 현재 개교 112년인 학교가 졸업 횟수는 99회인 왜곡된 학교사를 자랑하고 있다.

「전남교육사」에 이 ‘핵고당’은 “1908년에 설립되었다”라고 하였으며, 1916년 2월 23일 자 「매일신보」에도 “학교가 생긴 지 9년이 되었고, 이해 4월에 학교 이전 공사를 시작하였다”라고 하였다. 즉, 사립학교 시기인 1916년에 ‘핵고당’에서 법성포 사람들이 모금한 돈에 영광군의 도움을 받아 「매일신보」 법성리 인의산 교정을 마련하고 이전하였다. 또, 일제가 발간한 「조선교육대관」에도 이 ‘핵고당’이 “명치 43년(1910년)에 ‘사립 보통학교’로 인가되어, 대정 9년(1920년)에 ‘법성공립보통학교’로 인가, 9월 13일 개교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사립에서 공립으로 전환’만 되었는데, 우리 조상들이 어렵고, 어렵게 설립하여 모진 고생했던 사립학교 역사를 배제해 버리고 밥상에 숟가락만 올려놓은 일제의 공립학교를 학교 원년으로 삼아 졸업생으로 셈하니 공립학교 이전에 ‘핵고당’을 졸업한 우리 조상들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 신세가 되었다.

▲「조선 교육 대관」 1930년

▲1916년에 지은 사립 법성포 보통학교, 1920년에 공립으로 전환하여 법성포 공립보통학교가 되었다. <법성포초 역사관 사진자료>

▲법성포 초등학교 공립 5회(1925년) 여학생 반 졸업사진 <법경헌 소장 사진>

▲법성포공립보통학교(현 법성포초등학교) 인의 산 교정 교문 준공 기념(1931년) 오른쪽 여자분이 학교에 한 분뿐이었던 영광읍 도동리에 사셨던 노함풍 선생이다. <법경헌 소장 사진>

1925년에 이르러 법성포 사람들은 학부형회를 결성하고 4년제인 학교를 6년제로 연장하기 위해 ‘학년 연장 운동’을 펼친다. 또, 여자 선생님을 발령해 달라고 청원하여 관철하였다. 이 결과, 이 학교는 1928년에 6년제 제1회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이때 졸업한 박기순·신명철·남궁조 등 세 분 가운데 두 분은 광주사범으로, 한 분은 목포상업으로 진학하여 1929년에 궐기한 ‘광주학생운동’에 앞장서 옥고를 치르고 학교로부터 퇴학처분을 받았다. 이렇게 젊음을 통째로 나라에 바치고 소위 ‘불량 선인’으로 낙인찍혀 세분 모두 40이전에 생을 달리하게 됐다. 지금까지 국가서훈도 받지 못하고 있다.

▲노함풍(교원) 1927년 8월 26일 경기도 경찰부 치안유지법 위반

유창수 기자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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