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우리나라도 재래시장 보다는 이제는 도농 할 것 없이 대형 마트가 판을 치는 시대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이마트는 트레이더스(TRADERS)라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여 시작했다. 트레이더스 방식은 일반 마트보다 좀 더 대형포장의 물품들을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함으로써 서구식 분위기를 살리기 위함이다. 거기에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또 다른 차이점을 발견할 수가 있다. 상품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상품을 다양하게 구비한 것은 물론 한 가지 상품이라도 다양한 종류를 진열한 것이 모든 상가들의 방식이었다. 다양한 상표는 물론 용량이나 가격 면에서 선택의 폭이 넓게 하기위해 배려차원에서 다양하게 구비 했던 것이다. 게다가 수시로 할인율이 달라지고 사은품을 증정하고 1+1행사도 시간에 맞춰 진행하고 여러 방법의 이벤트를 진행하므로 합리적이고 알뜰하게 소비를 하려면 매달리지 않고는 행사 혜택을 받지 못했다.

이에 비해 이마트 트레이더스에는 선택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이만큼 저렴한 가격이니 다른 상표나 포장을 구하려면 다른데 가서 알아보시라”는 식으로 보인다. 그런데 의외로 쇼핑이 점점 더 쉬워지고 시간도 짧아지며 카트를 금방 채울 수 있다. 자유 민주주의에서의 선택권은 역사라고 봐도 무방하다. 민주주의는 지도자도 선택하고 정당도 자기가 선택하고 이렇게 선택권이 보장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꽃이라고도 한다.

물론 상품을 구매함에 있어서도 우리는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것을 놓고 선택 할 수가 있다.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는 상품들의 존재도 어떤 것이 내 입맛에 잘 맞을 것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보장된 것처럼 보인다. 상품뿐만 아니라 삶 속에서도 모든 것이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여행·문화·금융이나 지양하는 취미 등 모든 분야에서 다양한 것을 놓고 선택을 해야 한다. 이전세대들이 목숨 바쳐 이뤄놓은 것들도 있고 지금도 선택을 위한 요구들은 많이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결론은 나의 선택이라고 하는 학자도 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다양한 선택권의 폭을 줄이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이론이 등장한다. 요즘같이 인터넷 매체가 발달하면서부터 대형마트에 진열된 상품들을 보고 그 상품을 사게 되면 뭔가 손해를 본다는 느낌이 들어 돌아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본다. 비슷하거나 같은 상품이 수 페이지에 걸쳐 나온다. 스펙도 잘 모르겠고 사용후기나 리뷰기사도 전적으로 믿을 수 없고 그 가격으로 구입을 했을 때 혹시 후회나 하지 않을까 의심스러운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결국을 꼭 필요치 않은 상품은 미루기 일쑤다.

어떤 때는 과감하게 물건을 샀다고 해도 마음이 편하지 않을 때가 있다. 구매한 물건이 내 수중에 들어와도 혹시 실수나 하지 않았을까 불안하다. 내가 요즘 유행하는 정보에 뒤 떨어져 우수한 품질을 저렴한 가격에 놓친 것은 아닐까? 결재 후에도 선택한 물건이 하자가 있거나 유행은 지나지 않았는가. 가까운 지인들에게 자랑을 하고 싶어도 “나는 그거 50%할인해서 샀는데”라는 말을 들을까봐 자랑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 미국의 스워스모어 대학교 사회 행동학 교수 배리 슈워츠(Barry Schwartz)는 《선택의 패러독스》라는 책에서 개인적 자유의 선택권이 오히려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고 좌절시키는 역설에 대해 설명한다. 슈워츠기 예로들은 선택은 반드시 물건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우리의 삶속에는 선택으로 시작해 선택으로 끝이 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배우자 선택에서부터 친구, 나라의 지도자, 심지어 내가 교육받을 선생님도 선택하는 세상에서 산다. 또한 선택했다가 잘 못된 선택이라고 생각되면 바꾸는 것도 다반사다. 배우자도 바꾸고 직업도 바꾸고 종교 까지도 바꾸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선택의 잘 못으로 기댈 곳조차 없어 방황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동시에 절대적 가치가 사라지다보니 한번 선택한 것에 대한 헌신도 사라져 버린다. 배우자를 선택 했다가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바꿔버리는 현실이다 보니 관계가 삐걱거리면 바로잡으려는 노력 보다는 차라리 바꿔버리는 선택을 선호하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그러므로 선택할 여지가 많다는 것은 그중에서 하나를 선택함으로서 포기해 버린 나머지 기회에 대한 미련이 그만큼 증폭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결론이다. 로버트 프로스트라는 시인은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에서 몸은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며 결국은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해 그 선택이 내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고 했다. 프로스트에게 두 갈래가 아니고 백 갈래 길이 있었다면 그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운명으로서 수용하기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선택의 역설’은 다음 질문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지금 건강한 사람에게 만약 당신이 암에 걸렸다면 항암 요법을 선택할 때 본인의 의사가 적극적으로 반영되기를 바라느냐고 묻는다면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이 선택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원한다.

다음에는 현재 이미 암에 걸려 치료중인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하게 되면 거꾸로 다수의 환자들이 의사가 대신해서 선택해 주기를 바란다. 인간은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삶이 좀 더 근본에 도달 했을 때 선택권은 인간에게 고통을 가중 시킬 뿐이다.

이경일 회사원(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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