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곤경에 빠진 양국충을 고력사(高力士)와 상의한 양귀비는 잠시 변방에서 이임보의 예봉을 피하게 했다. 사건이 잠잠해질 때 까지 일단 변방으로 떠나도록 한 것이다. 양국충이 울며 겨자 먹기로 촉(蜀) 땅으로 떠났으나 가자마자 다시 조정으로 불러들인다. 이번에도 양국충이 판정승을 한 셈이다. 20년 가까이 휘두른 간신 이임보의 칼은 이제 들지 않는다. 이임보는 얼마 안가 19년의 재상자리를 죽음으로 내려놓고 만다.

이임보가 울화병으로 세상을 뜨자 현종은 기다렸다는 듯이 양국충을 그 자리에 앉힌다. 신흥간신이 늙은 간신의 자리를 꿰차고 든 것이다. 권력이 이 간신에서 저 간신으로 넘어가는 꼴이 되었다. 전 간신보다 더 욕심 많은 간신 양국충이 들어선 것이다. 천자를 제외한 최고의 권력을 잡은 앙국충이 가장 먼저 취한 조치는 이임보 잔당을 모두 내려앉히거나 작은 하자(瑕疵)만 있어도 죽이는 처절한 보복이었다.

양국충은 안록산과 한통속이 되어 이임보의 죄상을 파 해치며 없는 죄 까지도 만들어 덮어 씌웠다. 이임보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원한을 샀고 해쳤기 때문에 사방이 적이었다. 양국충과 안록산은 이임보에게 당한 사람을 찾아내 증인으로 내세우면서 이임보의 죄상을 폭로하도록 사주(使嗾)했다. 이임보는 죽었지만 비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살아생전 죄상으로 관작이 박탈되고 서인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는다.

아들들은 변방으로 유배되고 온 집안 식구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겨우 목숨만 살았다. 업보였다. 양국충은 이 일을 진행하면서 현종의 환심으로 최고의 명예인 국공(國公)의 자리에 봉해지며 많은 관직을 겸하는 최고의 실세가 되었다. 정점을 찍은 권력은 추락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권력의 속성은 최고의 자리를 자신은 모르기 때문에 더 오르려고만 한다. 그런 점을 추락의 시작으로 미리 안다면 그 사람은 위대한 사람이다.

이런 속성을 잘 아는 사람들은 부당한 권력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렇게 부당한 권력을 누리고 나면 나중에 보복을 당하거나 추락하는 것은 권력의 속성이다. 그러나 특히 간신들은 그것을 자기 눈썹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보지 못한다. 이임보를 견제하기위해 끌어들인 안록산도 보통을 뛰어 넘는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안록산은 무관이지만 아는 것이 있고 배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양국충을 깔보는 경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호인(胡人)출신이면서 북방의 군사요충지 평노·범양·하동의 절도사를 겸직하면서 권력까지 쥐고 있는 안록산을 중앙으로 불러들인 양국충이 어찌 보면 실수를 저지른 것이나 마찬가지다. 안록산은 유들유들한 말솜씨에 너스레를 잘 떨고 누구와도 대화를 잘하므로 현종의 환심을 샀다. 안록산이 능청스럽게 사람의 마음을 홀리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어느 날 양귀비는 현종이 안록산을 총애하는 이유가 궁금해 그를 만나보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안록산이 황제를 알현하기 위해 들어오는 것을 가까이서 보게 된다. 말로만 듣던 장군이어서 기대도 컸으나 말을 번드르르 하게하고 북방을 휘젓고 다니는 영웅치고는 외모가 별 볼일 없고 너무 비대해 웃음이 터졌다. 안록산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현종이 아니라 양귀비 앞에 와서 공손하게 무릎 끓고 절을 한다.

현종은 어이가 없어 안록산에게 “어찌 그대는 내게 보고를 하기 위해 왔으면서고 귀비에게만 절을 하는가?” “신은 어려서부터 저를 낳아주신 어머니에게만 절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누구인지 확실치 않기 때문에 언제나 여자에게만 절을 한답니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 말에 현종과 양귀비 모두 웃는 해프닝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런 말솜씨로 현종은 물론 양귀비의 환심을 사 10년이나 어린 양귀비를 수양어머니로 모셨다. 양귀비는 현종의 총애는 받고 있었으나 귀비 칭호는 받고 있지 못하던 터라 지방의 실권자 안록산을 양아들로 두는 것도 나쁠 것 같지는 않아 못이기는 척 받아들였다. 이로써 안록산은 현종과 양귀비 모두에게 사랑을 받게 된다.

안록산의 부상으로 양국충이 초조해 지기 시작한다. 잠시 이임보와 대항하기 위해 끌어들인 안록산이 이렇게 되자 이제는 그를 몰아내기 위한 수작이 필요했다. 안록산이 변방의 부대를 이용하여 모반을 꾀한다며 병권을 박탈하자고 현종과 양귀비에게 권했다. 그러나 이제는 양국충 보다도 안록산을 더 좋아하여 오히려 그를 비호하고 나서는 일이 벌어졌다. 이일로 자기보다 안록산을 신임하는 현종의 생각을 간파한 양국충은 안록산에게 모반의 낌새가 보인다고 하면서 확인해 보자고 건의했다.

만약 그런 일이 있으면 오지 않을 것이고 없다면 들어올 것이라고 했다. 현종도 이참에 그를 확인해 보려고 지방에 나가있는 안록산을 불러들인다. <6부로 계속>

이경일 회사원(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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