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1.7.26 월 16:58
상단여백
HOME 기획특집
[기획특집] 조기상 전 국회의원·정무장관 별세, 향년 84세부자 2대 국회의원 6선···정치인 집안 문 닫아
영광군민신문 | 승인 2021.07.12 09:43 |

조기상 전 국회의원이 지난 7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조 전 의원은 영광읍 백학리에서 조영규 전 1·3·4·5대 국회의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경기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행정사무관, 중앙공무원교육원 교수 등을 거쳐 정치에 입문했다.

국가등록문화재 제678호 영광읍 백학리 ‘창녕 조씨 관해공’ 가옥 영광읍 백학리 20번지. 기와 너머 감나무며 흙담 아래 소담한 호박이 영락없는 촌집이지만 한때 조선조 당상관 집으로 영화를 누렸던 곳이다. 전국에 알려진 ‘만석군’, 요즘 말로 재벌이 살았던 집이다.

제11·12대 총선에서 전남 영광·함평·장성 선거구에 출마해 잇달아 당선, 민정당 중앙집행위원과 정무장관 등을 역임했다. 박병배 전 의원(4·5·7·8·9대 국회의원)이 장인(丈人)이다.

부자 2대의 정치역정

부친 조영규 제헌의원은 1948년 5·10총선 때 35세의 나이로 전남 영광군에서 출마해 무투표로 당선됐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조기상 전 의원은 “영광에서 병원을 운영하던 부친과 여러 예비출마자들이 별장인 (체)화정(棣花亭) 정자에서 누가 출마할 것인가를 두고 얘기하던 모습을 지켜봤다.”

조기상 의원은 “고향인 영광은 법성포가 있어 굴비로도 유명하지만 고대로부터 중국과 교역을 시작했고 조선시대에는 전라도의 세곡을 조정으로 실어 나르던 조운선이 집결했던 곳입니다. 그래서 신문물이 일찍부터 들어왔지요. 호남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부친께서는 경성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일제의 침탈이 시작되자 일본이 아닌 중국 북경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항일운동에 가담했습니다. 1940년 경 형제가 모두 의사시험에 합격해 고향에서 의료활동을 했다”고 말했다.

조영규 전 의원은 1946년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선거에서 영광군에서 당선되어 정계에 진출했다. 그 후 5·10총선에서 자주독립국가와 민주주의 수립, 근로대중의 복리 증진 등을 정강(政綱)으로 채택한 한국민주당(약칭 한민당)이었다. 한민당 발기인으로 당을 이끌었고 부통령을 지냈던 인촌 김성수씨와 교우가 깊었다.

1948년 5.10총선 당시 투표 모습. 기표소 앞에 후보자의 명단이 붙어 있다.

“5·10총선이 다가오자 영광군에서는 예비출마자들이 체화정에 모였고 여기서 부친께서 출마선언을 하자 다들 출마를 포기하고 양보했습니다. 병원을 운영했던 부친께서는 주민들과 접촉이 많았고 의사로서 인심을 얻다보니 다른 후보들이 출마를 거둬들이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치열한 선거전 없이 무투표로 당선됐습니다. 이승만·신익희·김준연 의원 등 12명의 무투표 당선자 중 한 명입니다. 선거과정에 관권이 개입하거나 금권선거는 전혀 없었다고 해요.” 유명을 달리한 조기상 전 의원의 증언이다.

5·10총선 결과 무소속이 85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승만이 이끌던 대한독립촉성국민회가 55명, 한민당이 29명, 대동청년단 12명 등의 순이었다. 한민당은 제헌헌법 때 내각책임제를 추진했으나 이승만 의장이 대통령중심제를 고집해 헌법이 바뀌면서 이승만과 대립했다.

1984년 7월 17일 서울 국립중앙극장에서 열린 제36주년 제헌절기념식에 함께한 조영규 제헌의원(오른쪽)과 조기상 전 의원.

청렴했던 제헌의원 부친 조영규

조기상 전 의원은 거처를 서울로 옮겨 부친과 함께 생활하며 제헌국회의 활동을 지켜볼 수 있었다고 했다. “가끔 제헌국회에 방청을 가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지켜보기도 했고, 신문의 정치면을 보다 의문이 생기면 아버지께 물어보곤 했다”면서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지만 부친께서는 “어린 나이에 정치에 관심을 갖는다고 나무라지 않고 응대해 주셨다”고 기억했다.

부친 조영규 의원은 제헌국회에서 연락위원(원내부총무)를 맡았다. 제헌국회의원들 중 거의 대부분은 가난했다고 한다. 조기상 전 의원은 “세비는 사무관급이었고 위원장이나 부유한 의원들은 자가용이 있었지만 일반 국회의원의 출퇴근은 미군 트럭을 개조한 통근차량으로 할 정도였다”고 했다.

조영규 제헌의원은 그 후 3·4·5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전남 최초의 4선의원이 됐다. 4선 의원을 지냈지만 부친의 의정활동 기록물들은 거의 없다고 했다. 자택을 병원으로 사용할 정도로 큰 저택에 살았지만 6·25 당시 인민위원회 사무실로 사용하면서 모든 자료들이 소실되었다.

반공투쟁에도 적극적이어서 한민당 의원이면서도 철기 이범석 씨가 창단한 조선민족청년단에 가입해 반공전선에 나서기도 했다. 영광군은 6·25전쟁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컸던 지역 중 하나다.

제11대 국회의원선거 벽보

어린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

조기상 전 의원은 제6대국회 총선에서 약관 26세의 나이로 부친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젊은 나이에 출마해 낙선했지만 ‘아버지를 국회의원으로 만든 아들’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대중연설을 잘 했고 학생 때부터 전남지역 타 선거구 찬조연설에 나서기도 했다.” “아버지의 후광도 있었겠지만 어려서부터 정치에 소질이 있었던 것 같다.” 생전의 조 의원이 주변 사람들에게 한 말이다.

조기상 전 의원은 제11대 총선에 출마해 첫 등원한데 이어 제12대국회 때 재선의원이 되었다. 소선거구제였던 제13대국회 때는 김대중 총재가 이끄는 평화민주당의 ‘황색바람’에 밀려 낙선했다. 조 의원은 제12대국회 때인 1986년 6월에 열린 임시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내각제책임제 개헌’을 주장해 당 안팎에서 큰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4·13호헌조치로 개헌주장이 금기시되던 때였습니다. 본회의 발언을 앞두고 병원에 입원중인 부친을 찾아 ‘이번 대정부질문에서 내각책임제 개헌문제를 다루려고 한다’고 했더니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겪겠지만 참 좋은 생각’이라고 반겼습니다. 본회의 발언을 녹화해 부친께 보여주자 ‘내각책임제는 내가 못다 이룬 꿈인데 오늘 발언은 너의 정치활동을 지켜본 것 중 가장 장한 일’라며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흐뭇해하시더군요.”

제헌헌법을 만들 때 한민당이 내각책임제를 추진했지만 이승만 대통령과의 의견차이로 좌절됐었기 때문에 내각책임제 선봉자인 부친은 못다 이룬 한(恨)이 있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대통령제는 선거과정에서 지역감정과 흑색선전, 선동정치 등으로 문제가 많았다”며 “내각책임제는 정당정치가 활성화되고 국회가 정치의 산실이 되는 제도”라는 점을 역설했다.

아버지 조영규 전 의원은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당 후보로 영광군·함평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정헌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아들 조기상 의원은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일당 후보로 영광군·함평군·장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김재식 후보와 신민당 이진연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민주정의당에 입당하여 여당 정치인으로 변신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영광군·함평군·장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정당 이원형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정의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이진연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박정희 정권 때까지는 야당 정치인이었으므로 대 야당 관계를 감안하여 1987년 5월 정무제1장관에 임명되었다.

조기상 전 의원은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전라남도 영광군·함평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평화민주당 서경원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서경원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1990년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도 민주자유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평화민주당 이수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김인곤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1996년 신한국당을 탈당했다. 다음 해 자유민주연합에 입당, 2008년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영광군수에 출마했으나 통합민주당 정기호 후보에 맞서는 후보단일화를 이루고 사퇴했다.

조기상 전 의원은 제11대, 제12대 국회의원 및 제5대 정무1장관으로 재임 중 장성에서 불갑저수지로 연결하는 밀재 도수터널 공사를 완료하여 영광지역 상수원 확보에 기여했다. 상·하낙월 연도교 설치 및 계마항 신규 국가어항지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역발전을 위해 힘써 온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제41회 영광군민의 날 군민의 상을 수상했다.

영광군민신문  news@ygweekly.com

<저작권자 © 영광군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영광군민신문 소개광고안내구독신청기사제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주)영광미디어 영광군 영광읍 중앙로 19  |  대표전화 : 061-352-0120  |  팩스 : 061-351-9401
등록번호 : 전남, 다00359   |  등록일 : 2015.11.23   |  발행인 : 조민상  |  편집인 : 조일근  |  청소년보호책임자 : 조일근
Copyright © 2021 영광군민신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