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후한 말기에는 유난히 어린 황제가 왕위 계승을 자주 하였다. 심지어는 겨우 100일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등극하기도 했으니 얼마나 간신들이 설쳤는지를 알 수 있다. 당시 후한 왕조는 외척과 환관 사이에서 권력투쟁이 끊이질 않았고 대체로 비슷한 과정을 밟으면서 서서히 망해가는 나라가 되었다. 황제가 어린 나이에 즉위하다보니 외척이 전권을 휘두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지각 있는 황제라면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불만이 생기기 마련이고 어린 군주는 힘이 없어 환관을 이용하여 외척을 제거하려고 한다. 성공하지 못하면 외척세력이 계속 농단(壟斷)하고 만약 환관 세력이 성공하게 되면 이제부터는 환관 세력이 권력을 휘두르며 황제는 유명무실한 존재가 된다. 이때 다시 외척을 이용하여 환관세력을 몰아내게 되면 다시 환관세력이 득세하여 왕권을 주무르게 되므로 다시 대척점에 있는 외척세력을 등에 업고 환관세력을 몰아내려고 한다. 어린 황제가 즉위하면 반드시 나타나는 악순환의 고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일어나기 마련이다.

후한 말기 환제(桓帝)시기에 대장군이던 양상(梁商)의 아들 양기는 고모와 여동생이 미모가 뛰어나 순제(順帝)의 황후(皇后)와 귀인(貴人)이 되어 궁중에 들어가게 된다. 대장군이던 아버지 밑에서 고모가 황후가 되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양기였다. 양기는 기질적으로 흉악한데다, 재주도 없고 덕도 없는 인간으로서 자랑할 만한 구석이 없는 형편없는 인간이었다. 거기에 얼굴 생김새도 떨어져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온갖 좋지 못한 것은 다 갖추었는데 그런 사람이 권문세가(權門勢家)에서 태어났다.

이런 망나니 같은 인물이 부친의 뒤를 이어 대장군이 되었고 황후의 조카에 귀인의 오라비가 되었으니 얼마나 세도를 부렸겠는가. 자기 눈에 거슬리면 최고의 권력자까지도 죽이는 황제를 능가하는 권력을 휘두르는 거대한 중국에서도 몇 안 되는 간신 중에 한 사람이다. 후한은 양기의 독재로 조정은 물론 나라 전체의 기반이 흔들 여 온 백성의 원망은 산 사람이 양기다. 400여년의 중국에서는 비교적 긴 왕조를 계승해온 한나라의 추락이 양기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정설로 보고 있다.

후한 말기 양기의 전횡을 역사속의 간신에서 알아보자. 중국 역사랑 청렴의 상징으로 가장 잘 알려진 삼국지(三國志)에 나오는 제갈량(諸葛亮)이 출사표(出師表)에서 후회스러운 과거사를 언급하면서 유비가 환제와 영제(靈帝)시대를 탄식하며 본인과 이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고 말하였다. 제갈량은 말하자면 후한이 양기를 기점으로 해서 내리막길을 걷다가 망했음을 지적하고 원인은 바로 양기로부터 시작 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후한 말기 양기가 불러들인 악영향은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중기 이후 한나라 황제가 어린 황제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것은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환관들과 외척들이 번갈아 가면서 만들어낸 산물이다. 석현(石顯)을 기점으로 만들어낸 환관 집단과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황제가 직접 불러들인 외척 집단이 말을 잘 들어 줄 수 있는 어린 황제를 선호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황제가 장성하여 왕도정치를 해나가면 환관이든 외척이든 힘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어린 횡제를 옹립하는 것이 당시는 숙명과도 같았다. 어렸을 때 마음대로 조종하다가 어느 정도 성장하여 제목소리를 낼 정도 되면 다시 어린황제로 바꾸는 것이 다반사였다. 어린 나이에 황제가 죽음에 이르는 것도 두 집단 간의 정치 투쟁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정치 투쟁에서 승리한 쪽이 자기 쪽의 어린 황제를 내세워 입맛에 맞는 농단을 해 나갔던 것이다. 황제는 허울만 있고 모든 일은 누가 권력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정해지며 거의 환관세력과 외척 세력 간의 다툼이었다. 이렇게 수 십 년간 악순환을 하다 보니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 민생과 사회전체가 도탄에 빠져 말이 아니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서 이웃나라 중국이지만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너무 많다. 역사는 과거를 비추어 주면서 경고와 교훈을 우리에게 준다. 현재도 끊임없이 과거의 잘못을 씻어내며 거울을 보는 것처럼 배워야지 비추지 않는다면 교훈은커녕 오히려 발목을 잡으며 과거에 얽매어 한걸음도 진보하지 못하는 것이 역사다. 양기의 악행이 얼마나 심했기에 제갈량이 나쁜 사람이라고 지적 했을까. 나라가 기울정도로 악행을 자행한 후한 말기 양기의 악행 퍼레이드를 하나하나 따져 보자. 2부로 이어집니다.

이경일 회사원(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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