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상대를 골탕 먹이고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만드는 경우에 쓰이는 고사다. 후한 광무제(光武帝)때 복파장군 마원(馬援)은 당시 최고의 무장이었다. 남방(베트남)을 정벌하러 갔을 때 장기전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너무 멀리 원정을 나가 많은 병사들이 풍토병에 걸리자 예방할 수 있는 방도를 찾았다. 그곳 사람들은 율무를 숭늉마시 듯이 많이 복용하고 있었다.

율무차를 많이 복용한 병사들은 풍토병도 많이 완화됐다. 몇 년에 걸쳐 승리를 거듭한 결과 남방을 평정할 수 있었다. 임무를 완수하고 철군하면서 율무가 몸에 좋은 것을 알고 종자로 쓰기위해 좋은 것으로 한 수레 가득 싣고 돌아왔다. 사람들은 수레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남방에서 나는 진주나 코뿔소의 뿔 같은 대단한 보물이라고 생각했다. 조정에서도 뒷말이 무성했으나 공을 세우고 돌아오는 장수에게 더 이상 캐물을 수 없어 그냥 넘어갔다.

그 후 마원이 병으로 누워있는데 양송(梁松)이 문병을 왔다. 양송이 침대 옆에서 마원에게 공손히 절을 했지만 마원은 그대로 누워 답례를 하지 않았다. 양송은 불쾌했으나 그냥 문안하고 돌아갔다. 나중에 아들이 그 이유를 물었다. “양송이 부마(駙馬:임금의 사위)이기 때문에 조정에서는 그를 꺼려하거나 그에게 양보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 아버님께서는 답례를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나는 그의 아버지와 친구였다. 지금 비록 지위가 높다고는 하지만 어찌 장유유서(長幼有序)를 무시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양송은 무시당했다고 생각하고 이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릉(務陵)에 오랑캐가 극성을 부렸다. 광무제 유수(劉秀)는 마원에게 출정명령을 내렸다. 나이 62세 인데도 노익장(老益壯)을 과시하며 당당하게 오랑캐 정벌에 나섰다. 처음에는 순조로웠으나 시간이 갈수록 병사들이 적응을 하지 못하고 쓰러져 갔다. 마원도 말라리아에 걸려 죽고 말았다.

죽기 전에 양송은 군대의 감찰업무를 띠고 마원을 찾은 적이 있었다. 그때도 앉아서 답례하였다. 양송은 마원이 아버지 친구이긴 하지만 두 번이나 답례를 하지 않은 것에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었다. 마원이 전쟁터에서 병으로 죽자 묵은 감정이 되살아나 마원을 무고(誣告)하기에 이른다. 옛날 남방을 평정하고 돌아올 때 진귀한 보물을 수레 한가득 싣고 돌아왔었다는 상소를 올렸다.

황제는 그 말을 듣고 대노하여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관직을 삭탈하였다. 그와 평소에 가깝게 지내던 자들도 감히 조문을 가지 못했다. 마원의 부인은 너무 억울하였다. 남방정토 때 가지고 온 것은 율무 종자뿐이었는데 수레에 덮어 싣고 오는 바람에 사람들이 금은보화로 오해했던 것이다. 마원의 부인은 자식들과 함께 스스로 포박하고 낙양으로 가서 황제 앞에서 속죄했다. 황제 유수는 양송의 상주문을 꺼내 다시 자세하게 조사한 끝에 은혜를 베풀어 마원의 장례를 후하게 베풀고 원래 가지고 있던 벼슬도 그대로 회복시켜 주었다.

경쟁이 심한 사회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법이란 여러 사람의 이익보다도 한사람의 억울함을 찾아주는 것이라고 했다. 지도자는 구성원의 자질을 잘 파악하여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불이익을 받는 사람이 없어야 진정한 리더다. 물론 공적인 일에 자기감정을 실어 모함을 하는 사람도 정당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옳을 것이다.

이경일 회사원(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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