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양기는 무식하기는 해도 세도가 집안의 자식답게 향락과 잡기 쪽은 섭렵을 안 해본 것이 없었다. 기생을 끼고 음주가무를 즐겼으며 도박·닭싸움·경마·개싸움 등 돈 걸고 내기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았다. 이런 과정에서 양민들을 숱하게 괴롭혔다.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지만 그 집안의 위세에 눌려 직접 떠들지는 못하는 실정이었다. 양기뿐만 아니라 당시 외척 집안 족속들은 거의 비슷한 나쁜 행동을 일삼고 있었다.

당시 외척 집안의 횡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 하나를 살펴보자. 후한 말기에 와서 양(梁)씨 가문 외척과 등(鄧)씨 가문 외척이 판을 치고 있었다. 등씨 집안사람들은 등태후를 믿고 온갖 부정을 저지르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두근(杜近) 이란 벼슬아치가 등씨 집안 외척에게 당했다. 그는 등태후에게 권력을 황제에게 돌려주라고 요구하다가 누군가의 손에 보쌈을 당해 금난전에 내팽개쳐 지는 기가 막힌 일이 백주 대낮에 벌어졌다.

가까스로 목숨은 살아났다. 그는 살아 도망치기 위해 사흘을 죽은 듯이 그 자리에 누워있었다. 눈에 벌레가 생길정도로 죽은 척 하고 누워 있다가 감시가 소홀한 틈을 이용하여 산속으로 도망쳤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이름도 바꾸고 술집을 하면서 은둔생활을 이어 나갔다. 그 후 15년이 지나 드디어 등씨 가문이 실각하자 세상에 나타난다.

양기의 악행을 살펴보자. 136년 하남윤으로 부임한 양기가 가장 먼저 저지른 사건이 아버지 양상의 문객이었던 여방(呂芳)을 해친 사건이다. 여방은 양기가 젊은 시절부터 좋지 못한 행동을 일삼자 양씨 가문이 곤경에 빠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순수한 생각으로 부친 양상에게 양기에게 주의를 주라고 당부했다. 이 일로 인하여 양기는 아버지로부터 한바탕 혼났다. 보통사람들의 성장 과정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성격이 모난 양기는 이 사건은 가슴속에 품고 있었다. 그러다가 하남윤으로 부임하자 자객을 시켜 여방을 살해한다. 살해한 뒤 사건을 감추려고 여방의 원수가 한 짓이라고 소문을 내게 한다. 또한 의심의 눈초리를 피하기 위해 여방의 동생 여우를 낙양 현령으로 추천하는 등 여씨 집안사람들을 다독거리며 호의를 베풀었다.

그렇게 시선을 돌리면서도 여방을 죽인 자객이 살아있는 한 언제 소문이 날지 몰라 자객을 살해한다. 자기 손에는 피를 묻히지 않고 여방의 동생 낙양현령 여우를 시켜 살해한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뒤부터는 누구든지 양기의 행동에 대해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 무렵 광록대부 두교는 강직한 인물이었다. 그가 연주를 감찰하면서 양기 패거리의 죄상을 밝히면서 상당수를 파직시켰다. 이런 두교에게 앙심을 품고 대장군의 신분을 이용하여 곤경에 빠뜨리려 했다. 뇌물을 받은 사궁을 추천해 달라고 두교에게 청탁했으나 두교는 거절했고 끝내 자객을 시켜 두교를 살해했다.

그의 비리는 한두 건이 아니다. 완현의 현령으로 부임해온 오수에게 그 고을에서 못된 짓을 일삼던 자신의 패거리들을 잘 부탁한다는 청탁을 넣었다. 오수는 듣지 않고 법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단호하게 나갔다. 이에 앙심을 품고 있다가 형주 자사로 승진하여 부임할 때 다시 인사를 왔다. 그때 청탁을 들어주지 않은 보복으로 술에 독을 타서 대접했다. 독주를 모르고 마신 오수는 부임지로 가는 도중에 타고 가던 수레에서 급사했다. 이렇듯 양기에게 미운털이 박히면 온전하지 못했다.

양기의 범행대상은 벼슬이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았다. 최고의 권력자 황제도 자유롭지 못했다. 114년 순제가 죽자 양기는 겨우 두 살 박이 어린아이 유병(劉炳)을 황제자리에 앉혔다. 유병은 중국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황제에 오른 충제(冲帝)다. 대권도 거의 양기의 손을 거쳐야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충제가 이듬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후임 황제를 놓고 양기와 태위 이고(李固)가 격렬하게 논쟁을 벌였다.

이고는 외척이 정치에 관여하는 것을 막기 위해 나이도 있고 품행이 단정하며 시시비비를 가릴 줄 아는 청하왕 유산(劉蒜)의 옹립을 적극 주장했다. 양기는 그렇게 되면 국정을 주무르기가 곤란할 것 같아 여덟 살 난 유찬(劉纘)을 밀어 결국 황제자리에 앉혔다. 이가 바로 질제(質帝)다. 그런데 황제에 오른 질제는 양기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문무백관이 모인 자리에서 양기를 가리키며 갑자기 “저자가 발호장군(跋扈將軍:아랫사람이 권력을 일으켜 윗사람은 해치는 하극상)인가?” 라며 양기를 비웃었다. 어린 질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 양기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이었다. <3부로 계속>

이경일 회사원(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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