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석현은 제남(齊南)(현재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산동)의 부유한 가정에서 출생했다. 그러나 부유한집 자식답게 버릇이 없고 누구에게든지 안하무인(眼下無人)으로 대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못된 버릇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세상을 제 멋대로 국법도 무시하고 여러 가지 범죄행위를 서슴없이 자행하는 사회의 암적인 존재였다. 그런 망나니 같은 행동이 너무 잦아 결국은 궁형(宮刑)을 받아 환관(宦官)이 되었다. 궁형은 사형에 버금가는 매우 중대한 범죄자들이 받는 극형이었다. 인류의 야만성을 보여주는 치욕스러운 악한 형벌에 해당된다. 궁형은 본래이름이 부형(腐刑)인데, 이 형벌을 받으면 대개 궁궐에서 잔심부름이나 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궁형이라고 불렀다.

대부분 궁형을 받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한 사람이 많다. 궁형은 남자의 생식기를 통째로 절단하는 잔혹한 육형(肉刑) 중에 하나다. 생식기를 훼손하면 신체는 물론 남자의 정체성이 흐트러져 목소리와 인성 등이 현저하게 바뀌는 치욕적이 형벌이기 때문에 당시 통치자들은 이 형벌을 이용하여 많은 충직한 인사들을 해치는 일이 종종 있어왔다.

궁형을 받은 사람 중 위대한 일을 한사람은 《사기》의 저자 사마천(司馬遷)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사마천은 궁형을 받은 후 친구 임안과의 편지에서 “나와 같은 사람은 몸이 망가졌으니 남의 비웃음거리가 되어 부끄러워하는 것이 고작입니다. 궁형을 당하는 것 보다 더 큰 치욕은 없으며 형을 받고 살아남은 사람을 헤아린바 없으나 한 세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라고 궁형의 야만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사마천은 궁형을 받고도 위대한 역사책을 남겼으므로 본인에게는 치욕적이지만 후세에 사기를 읽는 사람들은 궁형 때문에 역사를 객관적으로 기술 했다고 보는 학자들도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궁형을 받은 사람들은 권력에 아부하거나 이권에 눈치를 보며 소인배의 길을 걷는 경우가 많다. 그 연장선상에서 출현한 인물이 이 장에서 다룰 간신 석현이다.

석현에게도 궁형은 치욕을 넘어서 한 인간의 입장으로 본다면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석현은 사마천 처럼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삶의 애착은 사마천 못지않았다. 젊어서부터 품은 사사로운 욕망이 있었지만 그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성격도 차분하지 못한데다 치욕스런 형벌까지 당하자 석현의 정신세계는 심하게 뒤틀렸고 자신의 괴로운 처지에 대한 울분을 세상과 타인에게 전가시키려 했다. 석현은 전형적인 소인배의 행동을 하며 간신으로 바뀌어 가는데 당시 시류(時流)에 사회적 조건에 휩싸여 환관간신으로 발돋움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처음에는 궁궐에서 보잘 것 없는 평범한 환관이었다. 한때는 부잣집 망나니였지만 궁형을 당하고 나니 교만한 성격도 고쳐야만 했다. 석현은 전에 행동했던 것과는 달리 사람들 앞에서는 겸손하고 온화함을 내비치며 매사에 조심스럽게 대처하는 모습으로 모든 사람들 에게 위장해서 행동했다. 철저하게 근신하고 조심했기에 공적이나 사적으로도 사소한 잘못도 없는 환관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쓰고 근신하고 조심해도 죄인의 몸이기에 어린환관의 몸으로 꿈은 있었지만 황제를 알현할 길은 보이지 않았다. 석현도 황제를 가까이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목표를 조금 낮춰 황제가 신임하는 인사들에게 아첨하려는 버릇이 은연중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부할 대상을 고르던 중에 홍공(弘恭)이란 환관이 석현의 눈에 들어왔다. 홍공은 학식이 풍부하고 법률지식도 많았으며 무엇보다도 성격이 원만하여 적이 없이 지낸 충직한 환관이었다. 홍공 역시도 궁형을 당한 환관이다. 석현이 갈망하며 찾고 있던 인사였다.

석현은 홍공과 가까이 하여 아첨(阿諂)하려고 애를 썼다. 자기에게 잘해주는 사람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홍공을 가까이 하면서 석현의 아부 기술은 나날이 발전을 거듭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부기술이 더욱 세련되어 갔다. 두 사람은 손발이 척척 맞는 환상의 콤비와도 같았다. 서로 밀고 당기고 돕고 도우면서 간신의 정상을 위해 한 단계씩 밟아 올라간다. 홍공은 학식이 풍부하고 일을 잘 처리하므로 왕조의 조직이나 복잡한 의식 등에도 조예가 깊어 보고서는 물론 각종 고시문을 매끄럽게 잘 썼기 때문에 중서령(中書令)의 고위직을 제수 받았다. 중서령은 현제 우리나라 대통령 비서실장직에 해당되는 고위직 공무원이다. 석현은 자연스럽게 홍공의 수족이므로 차장에 해당되는 중서복야(中書僕射) 에 임명되는 행운을 얻게 된다. 석현은 전부터 꿈에 그리던 그림이 점점 가까워진다. 2부로 이어집니다.

이경일 회사원(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저작권자 © 영광군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