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미국의 사회 심리학자 해럴드 시걸(Harold Sigall)은 설득에 관한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세 그룹으로 나누어 실험을 진행했는데 피험자들은 모두 자기가 추구하는 주류이론을 확고하게 지지하는 정체성이 분명한 사람들이었다. 참가자들과 함께 경청하는 역할을 하는 가짜 실험자를 함께 배치했다. 경청 자는 연출된 사람으로 실험자의 말을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나타내기로 되어있었다. 그는 세 그룹의 피실험자 들에게 각자 믿고 좋아하는 이론에 대해 진술해 보라고 했다.

A조피실험자가 진술하는 동안 경청 자는 모든 내용을 공감하며 옳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B조피실험자는 진술하는 내용을 경청 자가 모든 논리에 상반되는 이유와 근거를 들어가며 반박했다.

C조피실험자는 진술하는 동안 논리를 들어가며 반박을 하다가 마지막에 가서 피실험자에게 설득 당해 공감했다.

그 후 시걸은 모두 경청자에 대한 성격 특성에 대하여 평가하게하고 통계를 냈다. 결과는 역시 매사에 반박했던 B조가 가장 나쁘게 나왔고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한 조는 모든 논리에 순응했던 A조가 아니라 반박하다 설득당한 C조로 나타났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무조건 자신의 관점에 공감하고 따르는 사람보다는 자신의 논리나 주장에 설득당한 사람을 더 좋아한다. 상대를 논리적으로 변화시킴으로 스스로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며 보람도 갖는다. 이런 현상을 ‘개변 효과’라고 한다.

이 실험은 시걸의 이론 즉, 개변 효과를 충분히 증명한다. 사람들은 분명한 정체성도 없이 자기의 말에 맹목적으로 공감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논리에 설득 당한 사람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심리는 어떤 상대와 대화할 때 그 사람의 관점을 변화시키고 이로 인해 자신이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면 자부심을 갖는다.

자동차 판매원 발렌은 대기업의 구매담당자를 수차례 찾아갔다. 자동차 판매가 목적인 발렌은 고객이 어떤 의견과 요구를 제시하든지 언제나 고객이 옳다고 공감해주는 전략이었다. 그는 고객의 의견에 반박하지 않았고 적극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며 진심으로 고객의 입맛에 맞추려고 최선을 다했다. 일반적인 판매원들의 방법이었다. 몇 차례 만남 후 구매담당자는 발렌을 좋게는 보았으나 명확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미루는 상태였다. 발렌은 자기의 전략을 바꿔 보기로 했다.

다음에 그 회사를 찾아갔을 때 고객은 늘 그랬듯이 가격은 중급 차량보다 높지 않으면서 고급차를 요구한다는 말이었다. 평소 같으면 그 말에 공감하며 여러 가지를 놓고 비교해 봤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른 전략으로 반박하기에 이른다. “고객님의 생각은 충분히 알았습니다. 대부분의 고객들도 이렇게 요구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고객님께서 편리성을 포기해야 되고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매우 큽니다. 그러니 저희 회사 중급 차량 중에서 선택하시기를 건의 합니다.”

구매담당자는 이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당신에게서 진정성이 보입니다. 사실은 이번에 우리는 열 분의 사장님 차를 교체해야 하는데 당연히 현재의 차보다 더 고급차로 바꿔야 그들의 사기를 올릴 수 있겠죠? 그런데 회사에서는 지금보다 돈을 더 지출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필요하긴 한데 차를 바꾸지 않겠다고 하는군요.”

발렌은 아주 유익한 정보를 얻어 모든 것을 깨달은 표정으로 고객에게 공감하는 낯빛을 보였다. 발렌이 자기의 말에 설득 당했다는 모습을 감지한 고객은 생각처럼 기뻐하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 후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차량 구매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 회사에 귀한 정보를 얻은 발렌은 기쁜 마음으로 회사로 돌아와 즉시 더 좋은 방안을 모색하고 그 다음에 고객의 회사를 찾았을 때 자연스럽게 계약에 성공 할 수 있었다.

발렌의 이 이야기는 고객이 자기를 설득했다고 생각했을 때 고객은 가장 큰 성취감을 느꼈고 이러한 성취감은 자신에게 순종적으로 따르는 모습을 봄으로 자부심을 느낀다. 이것이 작지만 성취감이 주는 정신적 선물이고 서로 간에 가깝게 지낼 수 있도록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

이렇게 보면 ‘개변효과’는 자신에게 좌절감을 안긴 사람을 싫어한다는 ‘애런슨 효과’와 자신이 위대한 인물로 평가 받기를 원하는 ‘자존감 효과’의 종합으로 봐도 무방하다. 발렌이 반박했을 때 순간적으로 좌절감을 느꼈지만 발렌은 기지를 발휘해 설득당하는 것처럼 연기했다. 고객은 자기의 기지로 설득하므로 좌절이 성취감으로 승화된 것이다. 순간 자존감이 살아나면서 발렌에게 호감을 갖게 된 것이다. 고객이 이렇게 호감을 갖게 되면 계약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성사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경일 회사원(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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