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_편집위원장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신약성경 마태복음 9장 17절 말씀이다. 변화와 혁신을 요구할 때 많이 쓰는 대표적 수사인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의 연원이다. 선거에서 잇달아 패배한 민주당에서 이 말이 나왔다. 재선 의원들이 3선 이상 ‘중진’들에게 2선으로 물러가라는 요구를 하고 나선 것이다.

어느 ‘판’이나 위계질서가 있다. 특히 정치판은 엄격하기 그지없었다. 선수가 쌓일수록 ‘중진’으로 대접하고 받는 것이 관행이었다. 밖에 나오면 다 같은 ‘의원님’이지만 국회 안에서는 선수에 따른 위계질서가 엄격했다. 배정 받는 사무실의 위치도 달랐다. 그랬던 관행이 세월과 함께 사라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3선 이상, 소위 ‘중진’들이 맡았던 대표를 초·재선들이 맡겠다고 나서는 모습이 생경하다. ‘쿠데타’가 연상된다.

초·재선 의원들이 대표를 맡아선 안 된다는 법은 없다. 초·재선이라도 위기에 처한 당을 구할 능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환영한다. 그러나 재선 의원 가운데 위기의 민주당을 구할 ‘인재’는 보이지 않는다. 당 대표 출사표를 던진 한 의원을 예로 든다. 서울이 지역구인 그는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의 당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당시 그 지역구 구의회 의장은 위원장인 재선 의원이 오히려 표를 날려버렸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같은 당 소속 구청장은 물론 시·구 의원들에게 득표를 독려하기는커녕 발목을 잡았다는 것이다. 전남 출신인 구 의장은 위원장의 냉대를 견디다 못해 대선 직전 국민의 힘으로 당적을 바꿔버렸다고 한다. “서울이 지역구인 국회의원들 대부분이 구청장이나 다선 의원들을 멀리 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대선에서 이길 수 있었겠습니까?” 국회의원 자신도 득표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수도권의 젊은 국회의원들 대부분이 그렇다는 말을 덧붙였다.

당 대표를 하겠다고 나선 그 의원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난 두 번의 선거에서 민주당의 승리를 위해 전력을 다 했는가? 미안하지만 내가 알기로 당신은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의 표를 깎아 먹었다. 당신 지역구 구의회 의장이 탈당하고 국민의 힘으로 입당한 것이 증거다.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구의회 의장이 등을 돌린 것은 엄청난 손실이다. 선거를 앞두고 일선 득표 책임자가 등을 돌리게 만든 당신이 대선 패배의 주범이 아닌가 묻는다.

대선 패배의 원인을 제공한 국회의원이 대표가 되겠다고 나서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S대 학생회장 출신인 그의 라디오 인터뷰를 들으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말은 ‘청산유수’다. 하지만 본인의 정치적 성공에만 전념한 그의 뻔뻔함에 구역질이 났다. 아니 분노를 금치 못했다. 민주당의 성공보다 자기의 출세에 급급한 정치인들은 출당해야 마땅하다. 번지르르한 말보다 대선과 지방선거의 성적표가 당직자 선출의 잣대가 돼야할 것이다.

민주당은 ‘다수당’이라는 현실에 너무 안주했다. 그 결과가 대선과 지방선거 패배로 이어졌다. 이제 2년 후면 총선이다. 지난 20년간 당을 좌우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던 586 세대(60년대 출생 50대 80년대 학번)용퇴 론이 힘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당을 떠나는 것도 문제다. 97세대(90년대 학번, 70년대 출생) 재선의원 가운데 노무현 같은 리더가 보이지 않아서다. 자기희생을 감수하고 나서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장을 자유롭게 발표하고 주장하는 백가쟁명은 바람직하다. 젊은 패기로 과감하게 도전하는 모습도 아름답다. 

하지만 민주당의 97세대는 지난 두 번의 선거에서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뛰어난 의정 성적표도 없다. 0선의 이준석 국민의 힘 대표가 보여준 정치력에도 못 미쳤다. 자기희생을 감수하는 감동을 안겨준 적도 없다. 그럴듯한 출사표는 결코 감동을 주지 못한다. 박수를 받을 수 없다. 양대 선거 패배에 대한 통렬한 반성문부터 쓰기 바란다.

조일근 편집위원장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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