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어떤 사안에 대해 사실과 다르거나 진실이 아닌 것을 합리화 하면서 정당화 시키려는 심리적 현상을 ‘자기기만’ 이라고 한다. 심리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자기기만의 문제는 주로 인식론적 오류와 도덕적 불성실의 두 가지 문제로 접근해 설명한다.

인식론적 오류란 본인이 자기기만에 빠져있다는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다. 즉 무지(無知)한 상태를 말한다. 도덕적 불성실(不誠實)의 문제는 자기가 자기기만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바로잡을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의지가 약해서, 나태해서, 아니면 고치고 싶은 생각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맹자(孟子)》 등문공 하편에 송나라 대부 대영지 와의 대화에서 나온다. 대영지(戴盈之)가 맹자에게 “수확량의 십분의 일을 세금으로 거두는 세법을 실시하고 국경의 관문과 시장에서 세금을 거두는 것을 폐지하는 것은 금년에는 불가능 합니다. 우선 세금을 깎아주고 내년까지 기다란 후에 폐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물었다.

맹자가 대답하시기를 “날마다 이웃집에 닭을 한 마리씩 훔치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그에게 ‘그것은 군자로서 도리가 아니므로 해서는 안 된다’고 하자 그 사람은 ‘훔치는 숫자를 줄여 한 달에 한 마리씩 훔치다가 내년이 되면 그만 두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옳지 못한 것을 알았다면 당장 그만 둬야지 어찌 내년까지 간단 말이오.” 라고 했다. 

당시 세금이 가혹하다고 백성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을 때였다. 대부로 있던 대영지도 세금이 과중하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있었지만 쉽게 면제해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올해는 깎아만 주고 내년에는 감면해 주겠다는 것이다. 대영지 생각으로는 합리적 방안이었다. 

이렇게 말함으로 맹자에게 칭찬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성격이 대쪽 같고 백성을 사랑하는 맹자는 잘못된 것을 알았다면 내년으로 미루지 말고 당장 실천해야함을 닭 도둑을 예로 들어 대영지를 설득했다. 그러나 대영지 생각으로는 올해는 흉년으로 힘드니 깎아주고 미봉책(彌縫策)으로 일 년을 미루다가 내년에 풍년이 들면 원래대로 십분의 일을 징수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자기기만의 전형적인 사례다. 

여기서 송의 대부 대영지가 문제의 본질을 잘 알면서도 이런 의견을 제시했다면 도덕적 불성실에 해당하는 자기기만이다. 문제의 본질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의견을 제시 했다면 인식론적 오류에 준하는 자기기만으로 보인다. 인식론적이든 도덕적이든 간에 자기기만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합리화 하려는 경향이 다분하다. 그 잘못된 것들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치려는 생각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맹자는 자신을 속이고 더 나아가 백성을 속이려는 대영지의 속마음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러나 본인은 이렇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누구든지 문제의 심각성을 깊이 있게 생각하려고 하지 않고 쉽게 보는 경향성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자기기만에 빠진 사람들이 세 가지 특징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문제의 핵심을 파악할 줄 모른다. 둘째는 본인이 그 문제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모른다. 세 번째는 문제 인식을 못하기 때문에 고치려는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인간 존재란 무엇인가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자기를 부정하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 태도를 잘못된 신념 즉 잘못된 믿음에서 나온다고 역설(力說)했다. 

잘못된 신념은 인간의 본질적인 자유를 위협하는 불안한 관계에 있다. 그 잘못된 신념의 대상이 바로 자기기만에 빠진 자신이다. 다시 말해 자기스스로가 본인을 속이고 있는 역설(逆說)적인 논리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잘못된 것이 명백한데 진실이라고 주관적으로 확신하는 것이 잘못된 신념이다. 자기기만은 거짓과는 다르다. 거짓은 속이는 자와 속는 자의 주체와 객체가 다르다. 자기기만은 속이고 속는 자가 본인 혼자다. 

자기기만에 빠진 사람이 잘못됨을 깨달았으면 자기기만이 거짓임을 알아야 한다. 자기 의지에 반해 자기를 속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사실에 입각 하지 않고 편견을 가지고 보면 자기기만에 빠지기 쉽다. 한번 빠지면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흐려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자기를 속이지만 흐려진 판단력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자기기만에 빠진 자 들의 프로세스를 보면 잘못 본 사실이 자기를 배반하고 잘못된 행동으로 이어져 자기를 정당화 시켜 빠져 들어간다. 그러므로 자기기만에 빠져들지 않으려면 문제인식은 냉철하게 객관적으로 접근하면 자기기만을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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