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집보다 좋은 이웃이 있는 집에서 살아야 한다"는 정영준 영광군노인회장(86). 처음 든는 ‘좋은 말씀’이다. 신선한 충격이다. 이기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자기 몸 추스르기에도 힘들어 할 연세에 자신 보다 남을 더 많이 생각하기 쉽지 않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군에 입대해 전방에서 6‧25를 온몸으로 겪었다.

군인-공무원 퇴직후도 공부

장교가 되기 위해 신발을 이용해 키를 2Cm 키워 1m55Cm로 만들어 입대했다. “12년간의 장교 생활에서 배우고 얻은 것이 많습니다.” 메모하고 외우는 습관이 몸에 뱄다. 군 시절의 경험이 사회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는 말을 하면서는 옛날로 돌아간 듯 목소리에 힘이 넘친다.

군 제대 후 25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고 1990년 정년퇴직했다. 퇴직 후에도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타고난 부지런함과 건강, 더불어 사는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철학’이 그를 집안에 가만히 놔두질 않은 것 같다.

보고 느낀 것들을 사회에 알리고 싶어 신문 등에 투고도 많이 했다. 영광 향교로 출근했다. 유도회장을 맡아 향교에 공부하는 분위기를 심었다. 논어와 중용을 공부 했다. 중요한 대목을 줄줄 외우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향교 유도회장 거쳐 노인회장

2010년 영광군 노인회장에 당선됐다. 노인에게 효 교육을 시켜야 자식이 따라간다는 평소의 신념에 따라 회원 교육에 나섰다. 노인대학을 개설, 인성과 효(孝) 교육에 나섰다. 유명강사를 초빙해 실시하는 교육은 지원자가 밀렸다. 50명 인원 제한을 풀 수밖에 없었다. 교육생이 180명 까지 늘어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중‧고교 학생들처럼 수학여행도 갔다.

“아무리 이른 아침이라도 출발 시간 10분 전에는 전원이 모입니다.” 건강한 노인사회를 이루었다는 성취감이 묻어난다. 기획력과 추진력에 부지런함까지 더한 정 회장의 리더십은 영광군 노인복지관에 즐거움과 건강이 넘치게 했다.

무투표로 재임했다. 군내 경로당 육성의 주인공이니 투표할 필요도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휴대폰 한대에 금이 1000원 어치가 들어 있다. 1300개를 수거했다. 군 경험을 살려 전국 1등을 했다. 1천만 원의 상금을 받아 367개 경로당에 좋은 커피 폿을 마련했다.” 이런 실적을 올린 영광군 노인회는 중앙회의 관심과 배려를 끌어냈다. 중앙회가 기증 받은 이불 200채가를 통째로 영광에 보낼 정도다.

하루도 결석 안한 ‘모범생’

영광군도 모범적 운영을 하는 노인회의 보금자리인 노인복지회관에 더 많은 관심과 배려를 했다. 응접세트 등 고급 집기를 군에서 마련해 줬다며 자랑이다. 사무실에 보건복지부의 ‘보건의료지원사업 우수기관’패가 모인다. 회원들의 건강 관리에도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음을 알게 한다. 노인복지회관은 늘 즐겁다. 아코디언 소리, 노래 소리가 나고, 게이트볼을 하느라 웃음이 넘친다. 수십 명이 함께 담소하면서 먹는 점심은 보약이다.

뒤늦게 성공비결을 여쭸다. “무보수 명예직이지만 하루도 ‘결석’을 하지 않았다. 비교적 경제적 여유가 있다. 참전용사 연금과 공무원 연금을 받는다. 아들들이 정기적으로 돈을 보낸다. 돈에 구애 받지 않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봉사하겠다는 정신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던 것 같다. 격려하고 따라준 회원들 덕분이다.”

정 회장은 향리인 묘량에서 버스로 출근한다. 직원회의 하랴 회원들과 대화하랴 바쁘다. 하루 한 곳의 경로당만 돌아도 1년이 모자란다. 행복으로 알고 돌아다닌다. 게으름을 부릴 여유가 없다. 틈 나는 대로 책도 읽는다. “법정의 무소유 등을 독파했다. 눈이 나빠졌다. 하지만 기분 좋게 운영해 왔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30일 퇴임 “독단은 금물”

이달 말이면 임기가 끝난다. 후임 회장 선거도 끝났다. 김학실 전 군서농협조합장이 선임됐다. 부지런하고 정신이 건강한 정 회장의 인의예지를 실천하는 삶은 회장직을 내려놓은 후에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공부도 내려놓지 않을 기세다.

후임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을 여쭸다. “일 처리는 수용할 것 하고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해. 직원들의 협조를 잘 받아야 하고. 독단은 금물이지. 목민심서에도 나와 있어, 끌어서 다스리라고. 그대 그때 판단을 잘 해야지.”

“설날엔 많이들 찾아왔지. 이낙연 총리도 단골이었어. 이개호 의원도 오고 군수와 의원들도. 세뱃돈을 주고 싶었어. 5만 원씩 봉투에 담아 건넸지. 모두들 웃으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지.” 체구는 작으나 누구보다 넉넉하고 큰 분이다. 헤어지며 손톱깎이 선물을 건네시는 손이 더없이 따뜻하다.

조철상 선임기자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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