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남자 아이가 사용할 학습용 패드 가죽 커버를 구입하였다. 새로 온 패드의 색깔은 아주 예쁜 핑크색이었다. 새 커버라서 아이가 좋아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한 쪽으로 밀쳐놓고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뭐가 마음에 안 드니?” 라고 물어도 대답을 안 하고 머뭇거리기만 하였다.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다시 물었더니 느닷없이 같은 또래 여자 아이가 사용하고 있는 패드를 가지고 싶다고 했다. 왜? 다른 사람이 쓰고 있는 헌 패드를? 그 여자 아이가 가지고 있는 것과 차이점이라곤 커버의 색깔 밖에 없었다. 아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패드의 색깔은 파란색이었다. 그제야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아이는 핑크색을 여자색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모른 척하고 “선생님은 이 핑크색이 너무 예뻐서 00가 좋아할 것 같았는데....... 아닌가보네?”

하였더니, 대뜸 “전 예쁜 색을 안 좋아해요.” 라고 했다.

“그래? 그렇구나! 그런데 왜 예쁜 색을 안 좋아할까? 그럼 00가 좋아하는 색은 미운 색일까?” “..........” 아이는 대답을 못했다.

“예쁜 색과 미운 색이 따로 있을까? 색깔은 그냥 각각 다른 색깔들일 뿐인 것 같은데.......”

아이가 색깔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으나, 섣부르게 판단하여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아이의 불만에 대한 조정은 필요할 것 같았다.

“00야! 저건 이미 00가 쓰는 것이니까, 네 맘대로 가질 수 없을 것 같은데........ 예전에 쓰던 비닐로 된 이 주홍색 커버는 어떠니?”

라고 말하자, 아이가 “네.” 하고 수긍하였다. 걱정과는 달리 주황색 패드는 쉽게 받아들였다. 아마 핑크색 보다는 덜 여성적인 느낌이었을까? 주황색은 중성적인 색깔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예전에 이와 비슷한 경험담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십 오년 전이었던 것 같은데, 아들 하나만 둔 후배의 이야기였다. 핑크색 양말을 신고 갔더니 유치원 아이들이 여자양말 신고 왔다고 놀렸다고 했다. 후배는 아들에게 색깔에 대한 편견을 가지지 않도록 교육을 했었는데도 아이들 또래의 집단에서는 통용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후배가 선택했던 것은 흰색 양말, 흰색 티셔츠를 입히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다고 했다. 갑자기 센터 아이와 후배의 아들이 오버랩이 되었다. 세월은 흘렀으나 성에 대한 인식은 비슷한 것일까? 색깔에 대한 편견, 성적 차별 인식은 여전하게 느껴졌다.

비슷한 예로 살색이라고 통용되던 색깔이 인종차별과 인권의 문제로 제기 되어 2005년에 살구 색으로 바뀐 과정에서 보여주듯이, ‘서로 다름’에 대한 차별의식은 가장 보편적인 문화 속에 일상적으로 널리 퍼져 있다. 세상과 전사회적으로 metoo운동이 벌어지고 있지만, 지방의 작은 지역사회, 우리들 개인의 일상에서는 여전히 성적 차별 문제는 남의 일처럼 느끼고만 있는 것만 같다. 거시적인 문제에는 모두 동의하나 일상의 개별적인 문제에는 늘 면죄부가 존재한다. 아니 어쩌면 ‘기센 여성’에 대한 뒷담화와 여성혐오 발언으로 덮고 가기도 하는 것 같다.

나는 아동을 교육하는 현장에서 일하면서 아동·청소년들이 보편적인 사회인식을 답습하고 있음을 보곤 한다. 그들이 쓰고 있는 언어, 옷차림, 치장 문화는 매스컴에서 생산해내고 있는 그대로이다. 그리고 개인의 차이는 그 아이가 속한 가정과 환경의 재생산이다. 그럼에도 ‘요즘 아이들은 어쩌구........’하는 교사나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서 답답한 적이 많았다. 아이들을 탓하거나, 가정환경의 열악함과 가정교육만을 말하기에는 너무 할 얘기가 많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아이들 자신의 노력 부족이라거나 불우한 가정환경이라고만 말하는 지극히 사적인 접근은 경계할 일이다. 누군들 금수저, 엄친아가 되고 싶지 않았겠는가?

더 복잡하고 어렵게 이야기 할 필요가 없다. 교육의 문제는 일차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 사회의 교사, 어른이 바뀌면 되는 문제이다. 그리고 사회의 환경이 조금 더 안전하고 건강하게 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른들이 바뀌기가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어른들이란 수 십 년 형성된 지식과 행동방식이 굳어져 있고, 거기에 살아 온 경험치 까지 보태져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어떨 땐 시대착오적이어서 제대로 된 문제의식은커녕 잘못에 대한 인정도 잘 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의 삶이 이 사회의 기반이 되었고, 그 노고를 존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 중 대부분은 어른이 된 순간, 성장을 멈추고 성숙해 지지 않고 있다.

시대가 달라졌다고? 세대 차이가 심하다고? 자본주의 성 상품화가 더욱 노골적이 되어 버렸다고? 다 맞는 말이다. 50대인 나 또한 10대의 청소년들과 겪는 문화적인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종종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다. 인정한다. 서로의 차이가 무엇인지 잘 관찰하고, 무엇이 문제이고, 더 긍정적인지 알아야 한다. 그러자면 먼저 우리 일상에서 존재하는 차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식을 늘 점검해보아야 한다. 그것은 누구를 위한다는 것보다는 자신의 성숙과 관련된 문제이다. 공존하려면 방법이 없다. 이 사회에 살고 있는 같은 구성원으로서 함께 살아나갈 방법은 꼬리표 붙이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는 만큼 실천해야 한다. 그럴 때 존중과 배려의 문화가 싹트는 토양이 마련되는 것이다.

논어에 ‘배려’를 뜻하는 글귀 중

“子貢이 曰我不慾人之加諸我也를 吾亦欲無加諸人하노이다.”

라는 말이 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나에게 하기를 바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하고, 나에게 하지 말기를 바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동서양의 진리는 모두 같아서 이렇게 명쾌하다!

제발 부탁한다. 여성이든, 아동·청소년이든, 노인이든, 사회적 약자든,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여서 가르치려고 들지 말아라! 가르치려고 하거든 먼저 배워라! 우리가 사는 매일 매일이 배움의 순간들이다. 잘 배우고 잘 가르치고 할 수 있다면 더 할 나위 없을 것이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더욱이 지식과 정보처럼 빠르게 변하는 것이 없다. 낡은 고정관념이 강할수록 더 배워야 하는 것이다. 화려한 말잔치에 그치는 공염불은 그만하고, 스스로 잘 배우고, 익혀서, 잘 가르치려고 해야 한다. 먼저 우리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차별이 무엇인지, 사람과 사람 사이. 성. 종교. 지역과 문화의 차이가 무엇인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편견과 고정관념은 어떤 것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런 태도가 밑바탕이 될 때, 성 차별의 문제 또한 보편적인 가치관과 자기 성숙을 위한 지향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인간에 대한 예의, 그 사람의 인식과 됨됨이를 가르는 시금석이 ‘젠더성’이라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각자 자기 생활 속에서 민감성을 가지고 차별과 편견을 인식할 때 인식의 전환과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리라고 기대된다.

이연옥 민들레세상 지역아동센터장 / 영광여성의전화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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