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임 영광여성의전화 활동가

“엄마, 학교 다녀왔습니다.” 나의 사랑 보물 2호 귀염둥이 초등생 딸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보따리를 가지고 왔는지 나도 기대가 된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빅뉴스를 가져온 모양이다. 내 품속으로 파고들어온 딸아이는 하루 있었던 일을 재잘거리더니 이내 질문이 시작되었다.

“엄마, 이번에 들어간 회사에서 엄마는 무슨 일을 해?”

올해 5월에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게 된 엄마가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했나보다.

나는 10여 년 동안 전업주부를 하며 불과 몇 해 전에 다시 사회에 발을 내디딘 워킹맘이다. 그리고 현재 다니고 있는 이곳은 나의 세 번째 직장이기도 하다.

자리를 옮길 때마다 딸아이는 엄마가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 했다. 그때마다 나는 나의 일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반응이 좀 다르다. 딸아이는 시큰둥한 얼굴로 두 번째 질문을 해왔다. “엄마는 왜 의사가 안됐어?” 왜 갑자기... 이런 질문들을 하는 것일까? 딸아이는 현재 내가 하는 일에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 아니란 걸 이내 알게 되었다. 아마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보여 지는 의사들이 좋은 집에서 좋은 환경에서 사는 게 부러웠을까?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어서 답을 해달라고 날 보는 딸아이에게 “엄마가 의사엄마이면 좋겠어? 의사엄마는 너무 바빠서 우리 딸이랑 많이 못 놀아 줄 것 같은데..?”라고 시작해서 주저리주저리 대답을 했다. 그리고 이내 세 번째 질문이 들어 왔다. 이 질문에 내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엄마는 무엇이 되고 싶었어? 엄마의 꿈은 뭐야? 딸아이의 마지막 질문이었다." ‘내 꿈?’ 얼마 만에 들어본 질문이던가? ‘나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자연스레 내 꿈은 우리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해서 완성된 인간으로 사회에 내보내는 것? 이것이 내 꿈이었나?’, ‘지금 나는 어떤 꿈을 꾸고 있지?’ ‘왜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는 거지?’... 짧은 순간 오히려 내게 더 많은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딸아이 눈에는 내가 지금 마음을 먹고 뭔가를 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물어보는 것일까? 아님 지금의 나의 직업이 딸아이 눈에는 별로인가? 내 머릿속은 혼란스럽기도 하면서 정말 거창한 대답을 찾으려고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나는 졸지에 나의 노후를 생각하면서 내 꿈을 하나 만들어 버렸다. ”엄마의 꿈은 베풀며 사는 거야. 지금은 영광에서 일하고 있지만, 네가 대학생이 될 때쯤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우리보다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는 봉사활동가가 되고 싶어“ 어떤 특정한 직업을 말해주기를 바랬는지 모르지만 난 어떤 직업을 갖든 베풀며 사는 삶이 엄마의 꿈이라며 설명해주고 다시 딸아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우리 딸은 꿈이 뭐야?”

“바리스타가 되어서 엄마가 좋아하는 커피를 날마다 내려줄 거야”라고 자랑스럽게 대답하는 딸아이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꿈이 금새 바리스타로 바뀐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치원 선생님, 피아니스트, 사진작가 등을 꿈꾸던 꿈이 많은 아이이다. 또 어느 날은 티비 속 드라마에 나오는 변호사를 보며 자신도 변호사가 되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변호해주고 싶다고도 한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를 낳고 자신의 꿈을 포기한다. 한때 갖고 싶었던 직업, 삶에 대한 꿈들이 다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누구의 엄마로 불리어 지며, 자녀들을 위해서, 남편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찬란했던 꿈들을 가슴속에 묻어버리고 엄마로써 또 다른 꿈을 꾸며 생활하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으니 말이다. 힘든 육아와 가사 일에 지쳐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버겁다 보니 꿈을 꾼다는 것이 어쩌면 사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이들은 내손이 덜 가도 될 만큼 훌쩍 커 있고 아이만 바라보고 살아왔던 시간들 속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는듯한 느낌을 비단 나만 받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바로 그 구멍 난 자리에 이제는 나의 꿈으로 채워보자.

나는 이제 엄마로써의 꿈과 함께 나 자신을 위한 꿈을 꾸려 한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드는 것만큼 하나하나 자격이 더 생기는 것이라 여기며...

꿈 많았던 젊은 시절, 그 시절보다 나는 지금 더 많은 세상을 경험했고 행복하고 기쁜 경험도 있었겠지만... 그 경험들 중 힘들고 불행한 경험이 자리 잡고 있다 할지라도 내가 겪었던 불행과 상처까지도 내가 꿈을 꾸는데 원동력이 될 테니 말이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고 했던가...

상담사의 길로 접어든 엄마를 보며 자신도 상담사가 되겠다고 말하는 딸 아이. 문득 딸아이의 모습을 보며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듯 생각이 자리한다. 어쩌면 엄마의 꿈과 함께 아이의 꿈도 함께 자란다는 것. 넘어지고 실패할지라도 꿈을 향한 그 여정을 내 자녀들과 함께 하고 싶다.

세상의 위대한 엄마들이여! 우리도 꿈을 가져보자!

잠시 뒤로 했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은 어떠할까? 누군가가 그랬다. 내가 나를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에서 꿈은 비로소 출발하게 된다고... 나를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진정 내가 원하는 꿈을 발견하고 작은 것부터 하나씩 하나씩 이뤄 나가보자.

이글을 쓰며 서영은의 ‘꿈을 꾼다’라는 노래 가사를 흥얼거려 본다.

“꿈을 꾼다, 잠시 힘겨운 날도 있겠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내일을 향해 나는 꿈을 꾼다.”

사단법인 영광여성의전화(부설 영광여성상담센터)는 인권상담 및 성평등문화 확산을 위한 교육 및 홍보사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여성인권단체입니다. (문의 : 353-4994)

후원계좌 : 679-01-181566 농협 영광여성의전화

박정임 영광여성의전화 활동가  news@ygweekly.com

<저작권자 © 영광군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