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8일 ‘영광청년인권영화축제’에 참석하게 되었다. 여성인권영화 2편을 보고 간단하게 토론기조발언을 해달라는 요청으로 퇴근 후, 뒤늦게 도착하였다. 주최 측에서 선정하여 보내 온 영화는 2006년에 제작된 ‘그 여자네 집’과 ‘당신과 나 사이’ 라는 2편의 단편영화였다. ‘그 여자네 집’은 5인의 감독이 공동으로 기획한 작품으로 여성의 가정, 사회, 육아에서의 차별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당신과 나 사이’는 전업주부가 재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겪는 남편의 반대, 육아와 가사노동의 차별과 여성의 사회활동 보장에 대한 토론거리를 던지는 영화였다. 이 영화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DVD로 제작하기도 한 것이지만, 내가 느끼는 현실지점과는 거리가 느껴졌다. 얼마 전 영광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이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미투운동에 쏠리는 분위기에서 ‘가사노동’을 주제로 하다니 진부하기도 하였고, 육아에서 벗어난 지 한참 지난 세대다보니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영화제에 참여한 대부분이 청년층으로 가족과 함께였고, 주변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니 이해가 되었다. 농촌에 아이들이 있고 젊은 세대가 있다는 것 자체가 희망처럼 느껴지기도 하였고, 고령화·저출산의 문제는 특정 나이 대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전 사회적인 문제이지 않은가!

영화를 보면서 계속 답답했던 것은 여성과 남성이 똑같이 교육을 받았고, 직장생활을 하였음에도 여성은 출산과 육아로 인해 경력단절이 일어나고,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 부부가 각자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가사노동은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영화가 나온 2006년과 지금의 2018년에는 무엇이 달라져 있는 것일까? 어떤 젊은 여성은 “남편이 잘 이해해 주고, 집안일을 잘 도와줘요.” 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정말 그녀의 남편은 좋은 사람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가사노동이 무보수의 집안일로 여겨지고, 남성은 자신의 일이 아닌 아내의 일을 돕는다는 인식이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왜 가정의 문제는 개인의 일로만 치부하고, 그 가정의 부부문제로만 한정짓는 것일까? 시대적으로 여성의 경제활동의 참여와 가족관계의 다양화로 인해서 남성의 자녀양육참여와 양성평등의식은 필수적인 요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생활에서는 아직도 먼 얘기, 딴 얘기만 하고 있는 꼴이다. ‘가정’이라는 테두리를 설정해 놓으면 지극히 사적으로 접근하다보니 가부장적이고 전근대적인 사고로 묶어 놓고 침범하지 못하게 한다. 사회 구조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인식을 확산시키고 제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당면한 고령화·저출산 사회, 여성의 노동참여, 양성평등에 대한 문제와 관련이 있는 ‘육아휴직제도’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육아휴직제도는 1995년 남녀 모두가 육아휴직제도를 신청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되었다. 남성 유급 육아휴직 기간이 최대 52주(365일)로 제도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일본과 함께 가장 길지만 소득대체율은 32%로 최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남성 육아휴직제도가 유명무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르웨이가 97.9%로 가장 높았고 오스트리아와 스웨덴도 각각 80.0%, 77.6%로 조사됐다. 이들 국가는 남성 유급 육아휴직기간이 8.7~12.9주로 우리나라보다 짧았지만 소득대체율은 월등히 높았다. 아이슬란드(45.6%), 스웨덴(45.0%), 포르투칼(43.0%), 노르웨이(40.8%) 등은 남성의 비중이 절반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나 부모가 거의 대등하게 육아휴직에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의 국가들은 1970년대~80년대를 거치며 유급육아휴직과 부모가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육아휴직제도를 먼저 도입한 국가들로 알려져 있다. 스웨덴의 육아휴직 기간은 총 480일(부모 각자 240일)이고 부모할당제로 인해 부모가 서로에게 양도할 수 없는 90일을 제외하고 양도가 가능하다. 스웨덴의 육아휴직은 기본적으로 유급이며 부모 각자에게 주어진 240일 중 195일에 대해서는 휴직 전 급여의 77.6%를 보전하여 지급하고 나머지 45일에 대해서는 정액지급(일 180크로나, 한화로 약 2만원 정도)을 하며, 양도가 불가능하다.

노르웨이의 육아휴직제도 역시 스웨덴과 같은 부모할당제를 갖추고 있다. 육아휴직 기간은 육아휴직 급여의 수준에 따라 46주와 56주(산전 휴가를 3주씩 추가하는 경우 49주, 56주)로 나뉜다. 1993년 부모할당제를 도입함에 따라 각 부모가 할당된 10주씩의 육아휴직을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 26주 혹은 36주의 기간은 가족의 상황에 따라 부모끼리 나누어 사용할 수 있다. 육아휴직의 급여의 경우 46주의 육아휴직을 택한 경우, 휴직 기간 동안 이전 급여의 100%를 수령할 수 있고, 56주 육아휴직의 경우 급여의 80%를 수령할 수 있다.』 [송지원.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의 육아휴직제도 및 사용실태. 본문 내용 인용]

이 두 국가의 육아휴직 기간과 급여지급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유급 육아휴직제와 부모할당제를 통한 아버지의 육아휴직 사용 확대를 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아버지의 육아휴직 사용 확대가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 가족환경개선에 기여한다는 것은 중요한 점이다. 영화 속의 부부갈등이나 여성 개인의 고충으로만 그쳐서는 안된다. 남성의 육아나 가사노등의 참여는 보편적인 제도에서 가정 내의 인식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육아휴직제도의 효과로 여성의 건강과 가정 내 평등의식과 자녀 교육환경 개선,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번 ‘영광청년인권영화축제’ 속 여성인권영화를 보며 평등하고 건강한 사회를 꿈꾸어보았다. 그리고 내년에는 ‘여성인권영화제’도 영광지역에서 성황리에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보았다. ‘여성인권영화제’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여성폭력의 현실과 심각성을 알리고자 피해자의 생존과 치유를 지지하는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서 한국여성의전화 주최로 2006년에 시작된 영화제이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전국에 25개 지부, 1만여명의 회원이 함께 하고 있고, 영광에도 여성의전화 지부가 있다. 전국에서는 강화군과 함께 농촌(군 단위)에 있는 유일한 지부이기도 하다. 이 소중한 자산에 관심 가지고, 이 가을 여성주의 영화를 한 편 보시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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