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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남의 인재육성 칼럼] 우리 자서전은 누가 읽어줍니까
김종남 前 광주일보 편집국장 (언론인) | 승인 2018.12.04 21:35 |
김종남 前 광주일보 편집국장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물었다. “네 자서전은 언제 나오나?” 갑작스런 질문이어서 말문이 막혔다. 몇 년 전 <이름나려면 자서전 쓰세요!>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군자는 이 세상의 삶을 끝낼 때까지 그 이름이 한 번도 값있게 불리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君子疾沒世而名不稱焉; 논어 위령공편, 도올 김용옥 역)”는 공자말씀을 인용하며 ‘죽기 전에 한 번 값있게 불리는 방법’, 그 중에서 ‘가장 돈 안 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조용한 방법’으로 자서전 쓰기를 권했었다.

아마도, 자서전 쓰기를 권한 당사자로서 책임(?)을 다하고 있느냐는 질문 같았다. 뜨끔했다. 어떤 글이든 글에는 인생이 담겨있어야 한다. “인생이 안 들어간 글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무한화서/ 이성복)”는 잠언이 생각났다. 남에게 권하려면 스스로 자서전을 써보았어야 맞다. 정작 난 자서전을 쓰지도 않았고 또 쓰려고 노력해본 적도 없다.

그럼 ‘자서전쓰기 권유’는 ‘말장난’이었을까. 아니다, 전제조건이 있었다. ‘이름이 나려면’이다. 이름을 내고 싶은 (값있게 이름이 불리고 싶은)사람에게만 권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지만, 이름 내는 일은 더욱 쉬운 일은 아니다. 특출한 재능이 없으면 엄청난 공력을 들여야 한다. 특히 자서전쓰기는 돈 대신 시간이 들어간다. 수년 수십 년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해야한다.

그뿐인가, 누가 그 자서전을 읽어 줄 것인가? 소로는 20세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37세 때(1854년), 17년간 쓴 일기를 바탕으로 <월든>을 썼다. 월든 호숫가 통나무오두막(1845년 7월4일 입주) 생활 2년2개월2일이 끝나고 7년 후에야 발간했다. <월든>은 사실 소로의 37년 인생이 담긴 자서전인 셈이다. 소로는 이미 이름 난 작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월든>은 초기엔 관심을 끌지 못했다. 소로가 45세로 죽을 때(1862년)까지 8년 동안 초판 2천부가 다 팔리지 않았다.

“난 자서전 대신 일기를 열심히 쓰고 있지. 그런데 너는 자서전 안 쓰나?” 친구가 했던 질문을 되돌려주었다. 이번엔 친구 말문이 막혔다. 아마도 친구는 자서전을 쓰고 싶었는데 잘 안되어 그런 질문을 했던 가 보다. “그럼 일기는 쓰느냐?”고 고쳐 물었다. 일기는 날마다 열심히 쓰고 있단다. “그러면 자서전 기초는 다 되었네, 이제 정리만 잘하면 자서전이 되겠지!”라고 시원하게 말해주었다.

친구 표정이 밝아졌다. “그래도 일기와 자서전은 다른 게 아니냐?”고 한마디 했다. 맞는 말이다. 일기는 독자가 없지만 자서전은 독자가 필요하다. 일기는 나중에 자신도 못 읽을 만큼 개발새발 낙서처럼 써도 되지만 자서전은 독자가 읽어줄 만큼은 써야한다. 자서전은 재미나는 스토리나 눈물겨운 감동 아니면 깨닫게 하는 교훈(敎訓)이라도 줄 수 있어야 존재한다. 우리는 그만한 스토리를 만들며 살아왔던가.

자서전에 대한 문답은 거기서 끝났다. 다른 친구들 관심을 끌지 못해서이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어떻게 하면 친구가 일기를 정리해 자서전을 낼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돈은 걸림돌이 아니다. 자가 출판을 하면 50부든 100부든 찍을 수 있고, 그 종이 값마저 아까우면 전자책으로 만들 수도 있다.

역시 제일 큰 문제는 누가 읽어주느냐이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니 확실한 방법이 있었다. 가족이다. 아예 독자를 아들딸로 정해놓고 책을 쓰고 만든다. 공자도 ‘값있게 이름이 불리라’고 했지 ‘많은 사람에게 이름이 불리라’는 말씀은 없었다. 평생 독신으로 산 소로는 아들딸 대신 ‘가난한 젊은이들’을 위해 <월든>을 썼다.

가장 가까운 아들딸에게 값있게 불리는 게 ‘이름이 나는’ 시작이자 최종목표가 아닐까.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손자손녀가 읽어줄 것이다. 언젠가는 얼굴 한 번 못 본 증손이 그 이름을 불러줄지 모른다. 누군가 선조가 쓴 자서전이라며 기념관 한 귀퉁이에 모셔줄지도 모른다.

▶언론인 김종남은...

광주서석초등학교, 광주서중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다. 1967년 ROTC 장교로 임관, 강원도 양구에서 2년 반 병역을 마치고 1971년 전남일보(광주일보 전신)에 입사, 30년 동안 기자생활을 했다. 1982년 미국미주리대학 저널리즘스쿨에서 1년간 언론학을 연수했다. 1997년 광주대학교 언론대학원을 졸업하고 16년간 광주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로 언론과 지역사회, 언론사상사, 언론문장론을 강의했다. 2001년 광주일보를 나와 4년 동안 광주비엔날레 사무총장을 지낸 후 (사)무등사랑 청년취업아카데미와 인생나눔교실 등에서 글쓰기 특강과 멘토링을 하고 있다.

김종남 前 광주일보 편집국장 (언론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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