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명재상하면 황희(黃喜)와 조선중기 오리 이원익(李元翼)을 떠올릴 것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황희의 젊은 시절 누렁소와 검정 소 이야기가 있다. 고려후기 공양왕 때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당시 현인들과 함께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농성할 때 태조 이성계의 간절한 부름을 받고 정치에 들어가 90세까지 최장수재상으로 조선시대 최고의 청백리로 추앙받는 명재상이다.

벼슬 초기시절 잠시 암행어사로 함경도지방을 돌때의 이야기다. 그 지방 군수의 자잘 못을 묻기 위해 소 두 마리로 쟁기질을 하는 노인을 만나는데 다짜고짜 묻기 보다는 처음에 말을 부드럽게 붙이려고 노인을 불렀다. “어르신! 두 마리 소중에 어떤 놈이 일을 더 잘합니까?” 그러자 노인은 하던 일을 멈추고 소를 세우며 밖으로 나왔다. 황희의 옷소매를 끌면서 정자나무 뒤로 돌아가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렁이는 일도 잘하고 고분고분 말도 잘 듣는데 검정 소는 힘은 좋으나 꾀가 많아 다루기가 매우 힘이 듭니다.”

황희는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으며 노인에게 다시 묻는다. “아니 어르신 그게 무슨 비밀이나 된다고 거기서 말씀하시면 될 것을 여기까지 오셔서 그것도 귀에 대고 말씀 하십니까?” 그러자 농부 어르신의 대답은 이러했다.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일지라도 저를 미워하고 좋아하는 것은 다 안답니다. 내가 거기서 이야기 했더라면 좋다고 한 놈은 괜찮겠지만 싫다고 한 놈은 얼마나 서운해 하겠습니까.

저놈들이 어찌 사람의 말을 알아들으랴 싶지만 나를 위해 힘껏 일하는데 그놈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하고 지방군수에 대해서는 묻지도 못했다. 이때 황희는 노인의 사려 깊은 행동에 감동을 받아 사람을 직접 비교하는 일이 없었다. 그 뒤 몇 년의 세월이 흐르고 판서로 재직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어느 날 부인이 배를 구해서 약에 쓰려고 장롱 뒤에 놓고 친정에 다녀왔는데 배가 없어진 것이다. 그 방에 드나드는 사람은 자기 부부와 여종뿐인데 배가 사라진 것이다. 그 배는 쥐가 조금씩 갉아먹는 것을 황희는 보았다. 다른 곳으로 옮겨놓지 않고 배를 쥐가 어떻게 먹는가 보려고 그대로 놓고 관찰했다. 그런데 쥐는 한 번에 다 먹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먹어서 나흘 만에 다 먹은 다음 씨와 안에 딱딱한 부분만 남기고 모두 해치우는 것을 보았다.

마님이 나중에 돌아와 보니 배가 없어진 것을 보고 여종을 불러다가 종아리를 걷게 하고 때린다. 이방을 들락거리는 사람은 우리 부부 말고는 너밖에 없는데 왜 허락 없이 배를 먹었느냐면서 종아리를 때리고 다그친다. 여종은 정말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여종은 먹지 않았어도 매를 적게 맞으려고 잘못했습니다. 배가 눈에 띄어 너무 먹고 싶어서 제가 먹었습니다. 그러자 부인은 매를 멈추고 앞으로는 각별히 조심 하여라, 하며 용서를 해준다. 이 광경을 지켜본 황희는 느끼는 바가 있어서 그 이튼 날 세종을 만나 지금 감옥에 갇혀있는 노비들을 재조사해야 됩니다.

세종이 이유를 묻자 어제 집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백성을 항상 억울함이 없어야 한다고 하면서 허락 하여 재조사를 해보니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더 큰 벌을 받지 않으려고 거짓 자백을 하고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세종은 다시 지금의 법무부에 해당하는 형조에 추상같은 명령을 내린다. 양반이든 노비든 누구든지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그 뒤로는 억울한 옥살이가 많이 줄어졌다.

황희는 너그러웠지만 큰일에는 시시비비를 가리며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양녕대군을 세자자리에서 폐할 때 원칙을 흐린다고 홀로 반대하여 태종에게 미움을 사 남원에 5년 동안 유배를 간적이 있었다. 그 뒤 태종은 아들 세종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주고 황희를 불러 중책을 맞기며 황희와 화해를 시킨 것이다. 그래서 세종은 자기를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승으로 발탁하여 때로는 신하처럼 스승처럼 모시고 나이가 너무 많아 물러난다고 해도 황희를 놓지 못한다. 황희와 세종은 이렇게 돈독하게 지냈으며 세종이 승하한지 2년 뒤 90의 나이로 당시에 매우 장수하며 청백리로서 모든 관리들의 모범적 인물로 추앙받고 지금까지도 명재상으로 오르내린다.

이경일 회사원 (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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