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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계십니까?] 우리 조상들은 과거시험을 어떻게 보았을까?
이경일 회사원 (대한시멘트) | 승인 2019.01.08 17:08 |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측정을 시험으로 분별하여 그 실력을 판가름한다. 요즘에도 수능 시험일은 출근시간을 늦추고 듣기 평가시간에 학교 근처에서는 차량을 통제하고 비행기도 뜨지 못하게 할 정도로 온 국민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과거에는 어떻게 시험을 보았을까?

조선시대의 과거제도를 한번 살펴보자. 조선시대에 과거시험은 최고의 시험이었으며 시험을 볼 수 있는 사람과 보지 못하는 사람이 엄격하게 구분이 되어있었다. 과거에 합격하면 관직에 진출하여 관리로 임용되므로 신분이 달라지기 때문에 일생의 모든 것을 걸었다.

과거시험에는 문과(文科)시험과 무관을 뽑는 무과(武科)와 율관(律官) 역관(譯官) 의관(醫官) 등 기술직을 뽑는 잡과 등이 있었다. 이중에서도 가장 비중이 큰 것이 문과로 대과(大科)라고도 하였다. 오늘날 행정고시 사법고시에 해당되는데 대과를 보기위해서는 먼저 지방에서 뽑는 소과에 합격해야했다.

문과를 보기위한 자격시험이었다. 소과에는 진사(進士)시와 생원(生員)시로 나뉘는데 생원시는 유교경전에 대한 이해정도를 시험하는 것이고, 진사시는 유교경전의 문장력을 알아보는 시험이니 요즘의 논술시험과 흡사한 시험이다. 조선시대 소설에 ‘최진사’ ‘허생원’ 등이 나오는데 이 사람들이 대과로 올라갈 수 있는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이다.

당시 시험은 책문(策文) 이라 하여 제시하는 주제에 맞는 창의적인 문장 능력을 중점적으로 평가했다. 그런데도 자기가 직접 주관적으로 생각해낸 답안보다는 이미 전에 써냈던 모범 답안지를 모델로 외워서 써낸 답안지가 부지기수였다. 채점자들은 학식이 풍부한 관리가 맡았는데, 기존 문장을 그대로 베낀 답안이 절반이 넘는다고 할 정도로 천편일률적 이었다고 한다.

생원시와 진사시를 합해서 소과라고 했으며, 이 시험을 통과하면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에 입학하는 자격을 얻게 된다. 성균관에서 수학할 때는 출석성적과 성실성도 함께 체크했는데 요즘의 내신 성적을 보는 것과 유사한 제도다. 문과는 초시, 복시, 전시를 거처 총33명의 최종합격자를 선발했는데, 식년시(간지로 자, 묘, 오, 유년) 즉, 3년에 33명이니까 평균 1년에 11명이 대과에 합격한 셈이 된다. 조선시대 문과에 올라가기가 그만큼 어려웠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당시에는 과거보러 한양으로 간다는 것을 ‘영광(榮光)’을 보러간다 라는 의미로 ‘관광(觀光)’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관광이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여행이 변형되어 쓰고 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 에서는 지역 할당제도 함께 실시하였다. 물론 할당량은 인구 비례에 의해서 정했는데 지금의 헌법에 해당되는 경국대전(經國大典)에 규정되었다. 생원, 진사, 초시 각 700~1000명의 합격자중 한성부200명, 경상도100명, 전라도90명, 강원도45명, 이런 식으로 안배했다.

문과 초시 합격자240명은 성균관50명, 한성부40명, 경기20명, 충청, 전라도 각25명 경상도30명, 강원, 평안도 각15명, 황해, 영안도(함경도의 옛 이름) 각10명 등이었다. 초시(初試)에서는 지역안배를 했으나, 복시(覆試)에서는 철저한 성적순으로 관리를 선발했다. 이렇게 본다면 지역격차를 해소함과 동시에 개인의 능력을 적절히 반영한 좋은 제도로 보인다.

이러한 과정을 거처 최종 합격자를 발표하는 것을 방방(放榜)이라고 했는데, 같은 해에 합격한 동기생들끼리는 나이에 관계없이 친구처럼 지내며, 따로 돈독한 관계를 다지기 위하여 계를 조직해 함께 친목을 도모하기도 했다. 합격자는 머리에 어사화(御史花)를 꽂고 삼일유가(三日遊街:급제자가 선배, 친척어른을 찾아보는 일)를 받았으며 배출한 마을에서는 경사로 여기며 큰 잔치를 베풀었다.

조선 후기에는 자기 일생에 기념비적인 일을 8폭 병풍에 그림을 그려서 보관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이 때에 빠지지 않는 것이 과거합격 장면인데, 그만큼 과거급제가 개인의 자랑임과 동시에 가문의 영광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식년시는 정기시험이고 그 외 부정기시험으로 증광시(增廣試:국가에 경사가 있을 때), 알성시(謁聖試:국왕의 명에 의한 특별채용), 춘당대시(春塘臺試: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왕이 친림하여 경복궁내 춘당대에서 시행했으며, 대략 문과에5명 정도 무과는 더 많은 수 가합격하였음), 등이 있었는데 후기로 오면서 너무 합격자가 많이 배출되어 몇 년 동안 보직을 부여받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었다.

이경일 회사원 (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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