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재 칼럼] 바른 역사를 배우지 못한 자들의 망동

박호재 아시아문화학회 부회장

역사에 대한 인식은 상상력을 낳는다. 역사적 상상력은 과거를 향할 수도 있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도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성찰과 공동체의 미래를 올바르게 일궈가는 지혜를 안겨준다. 문제는 오작동의 심각성이다. 역사에서 비롯된 잘못된 상상력은 편견으로 치닫기도 한다. 이 또한 역사적 인식이기에 그 편견의 양상은 고집스럽고 표독하기조차 하다. 편견의 주관자들이 역사를 만들어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작동 되는 상상력은 개개인 품성의 탓이기도 하겠지만, 원 소스의 문제일 때가 많다. 불량한 소스에서 채취되는 악취가 험상궂은 상상력을 일깨우는 것이다. 잘못된 역사기록이 잉태한 적폐다. 인문학, 인문학적, 인문주의 등등의 어휘가 발부리에 걸리는 돌멩이처럼 횡행하고 있다. 모든 공공의 프로그램에 표찰처럼 나붙어 있으며, 눈을 씻고 봐도 인문성을 찾을 수 없는 이벤트에도 ‘인문’이라는 말이 습관처럼 쓰인다.

인문학의 정수는 문·사·철…이를테면 문학과 역사, 그리고 철학이 본질이다. 역사에 대한 앎이 인문학의 중심 테제로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것이 인문학이 추구하는 것이기에, 결국 올바른 역사인식이 바탕이 되지 않고는 휴머니즘은 제대로 성취될 수가 없다. 철학의 아버지 칸트가 역사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역사철학이라 명명하며 자신의 철학을 펴가기 위한 핵심 논제로 삼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5·18 망언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광주인들은 분노로 치를 떨고 있다. 김진태·김순례·이종명·지만원…망언의 주체들이다. 필자의 시각에서도 이들은 괴물이나 악마의 화신인 양 느껴진다. 내가 아닌 타인의 생명의 존엄성을 희롱하고 짓밟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광주의 5·18에만 침을 뱉은 것은 아니다.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에게도, 제주 4·3과 여·순항쟁의 비극적인 죽음들에게도, 백색테러가 빚은 한국 근현대사의 모든 참혹한 희생자들에게도 일관적인 ‘악마성’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적지 않은 이들이 이들을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라도 그들은 망언을 그치지 않는다. 악마적 정신들이 뭉쳐 철옹성을 쌓은 비빌 언덕이 있는 까닭이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 잔혹한 서북 청년단에 의해 2만~3만여 명의 무고한 양민이 학살된 제주 4·3 항쟁을 두고도 ‘빨갱이를 척결하기 위한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수단’이라 인식하는 이들, 광주의 5월 항쟁을 북한군인들이 내려와 부추긴 내란사태라 고집하는 이들의 행태는 분노의 단계를 넘어서서 이해불능의 ‘사태’로 다가선다.

투철하고 일관된 악마성이 없이는 자행할 수 없는 처신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독버섯 같은 인식 오류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다시 ‘인간의 윤리적·정치적 실천의 자각적 목표로서의 역사라는, 도덕적 목적론’을 주창한 칸트의 역사철학이론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생명에 대한 가치가 송두리째 실종된 채, 생명의 존엄성이 짓밟힌 모든 비극들을 ‘빨갱이를 처단하기 위한 국가안보의 당연한 수순’으로 인식하는 극우 이데올로기의 화신들에게 도덕적 목적론은 허접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결국 그들은 그렇게 교육받은 것이다. 서울대를 나온 최고 엘리트를 자임하는 나경원이도 그렇게 교육받은 것이다. 올바른 역사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이 저지르는 만행이 새삼 소름끼치는 세월이다. 그렇다고 다 큰 애들에게 이제야 역사공부 좀 하라고 다그칠 수도 없고…. 버린 카드로 접고 가야 할 것 같다.

▶박호재(朴琥載) 편집위원 약력

본적 : 전라남도 함평군 학교면 복천리 913

▶학력

전남대학교 대학원 졸업/ 도시계획 전공/ 공학석사

전남대학교 졸업/ 건축공학과

▶경력

(재)광주비엔날레 공공미술전 큐레이터 (1998)

광남일보 편집국장 (2002~2004)

전남매일 편집국장 (2004~2006)

광주전남 뉴시스 취재국장 (2006~2007)

광주북구청 '문화의 집' 운영위원장 (2005~2009)

(재)광주문화재단 문화정책실장 (2011. 01~2014.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