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당 합장 불갑사 주지

불갑산에는 7월말경부터 노랑색 상사화가 피기 시작한다. 9월 중순경 부터는 붉은색 상사화가 피어나 온 산천을 붉게 물들인다. 불갑산은 상사화 전국 최대 군락지로서 타 지역의 추종을 불허한다. 가히 별유천지 선경을 이루어 내니, 옛 사람들이 '호남제일지가경(湖南第一之佳景)이요, 해동무쌍지보계(海東無雙之寶界)' - 호남의 제일 뛰어난 경치요, 해동에서 둘도 없는 보배로운 곳 - 라고 찬탄했다.

불갑산은 상사화뿐만 아니라 각종 희귀한 산야초와 식물이 다양하게 자생하고 있는 자연식생의 보고이기도 하다. 한국 자생식물의 85% 이상이 불갑산에 자생하고 있을 정도로 식생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불갑산은 온대림과 난대림이 교차하는 접점에 위치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이런 다양한 식생대를 간직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옛 선인들은 이러한 불갑산의 다양한 식물생태를 보고 '기화요초가 철따라 만발하는 신선이 사는 세계' 라고 평했다.

온 산을 붉게 물들이고, 사람들의 마음마저 붉게 물들이는 상사화에는 그 특이한 식생모습과 꽃의 화사하고 뛰어난 자태에 걸맞게 그 이름에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상사화는 꽃 이름 그대로 풀이하면 상사(상사) 즉 '서로 생각한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상사화는 '화엽불상견고상사(花葉不相見故相思)' 라고 해서, '꽃과 잎이 서로 보지 못하고 서로 생각하고 그리워만 한다'라는 의미에서 상사화라고 했다고 한다.

이처럼 상사화는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서로를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연모하는 정을 간직한 꽃이라고 세간 사람들은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룰 수 없는 애절한 사랑, 무한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영겁의 애틋한 사랑' 을 간직한 꽃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러한 의미부여로부터 세간 사람들은 상사화를 무한한 그리움과 애절한 사랑의 마음을 붉게 토해 내놓고 있는 꽃이라고 여기고 있다.

상사화를 사찰에서는 피안화(彼岸花)라고 불러왔다. 피안화는 바로 상사화에 대한 불교적 명칭이며, 다음과 같은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불교에서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중생세간을 차안(此岸 :이 언덕)이라고 하고, 부처의 세계 즉 깨달음과 해탈열반의 세계를 피안(彼岸 :저 언덕)이라고 한다. 차안은 번뇌망념으로 인한 생노병사의 괴로움을 겪는 질곡의 세간, 곧 사바세계를 뜻한다. 피안은 번뇌망념의 소멸과 깨달음을 통해 생사해탈하여 모든 괴로움을 벗어난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열반의 세계를 말한다.

앞에서 본 것처럼 피안화는 잎이 사그라진 뒤에 꽃대가 올라와서 꽃이핀다. 여기서 잎이 무성하게 나와 있는 상태는 번뇌망념이 치성한 중생세간 즉 차안을 의미하며, 잎이 완전히 사그라진 상태는 치성하던 번뇌망념이 소멸된 것을 의미하고, 꽃대만 올라와 꽃이 밝게 핀 상태는 깨달음을 통해 열린 해탈열반의 세계 즉 피안을 의미한다고 본다.

이처럼 피안화는 해탈열반의 이상향, 곧 불국세계를 나타내고 있는 꽃이라고 한다. 그래서 피안화가 사찰주변에 많이 피어 있는 것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번뇌와 집착으로 인한 괴로움을 벗어나서 해탈열반의 즐거움의 세계에 노닐도록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이라고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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