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민심이 흉흉하고 결집이 되지 않을 때 누군가 과감하게 책임을 져야 조용해지는 때가 있다. 즉 희생자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계륵(鷄肋)이란 고사로 잘 알려진 조조(曹操) 술수를 한번 보자. 조조가 한중 땅을 놓고 유비와 싸울 때 일이다. 조조는 전세가 불리한 상황에서 더 이상 싸워도 별 이득이 없고 그렇다고 물러서기에는 자존심이 상하는 난감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군량미도 바닥이 나가는 상황에 봉착했다.

보급품이 당도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므로 위기감을 느낀 조조는 병참 참모를 불러 지시하기를 식사배급을 대폭 감소하여 후군으로부터 도착할 때까지 버티라고 하였다. 그러자 병사들의 불만이 고조돼 폭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때 저녁식사에 닭국이 메뉴로 나왔다. 참모 한사람이 들어와 조조에게 오늘밤 암호를 무엇으로 정할까 묻자 엉겁결에 계륵이라고 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행군주부 양수는 조조의 속마음을 읽고 퇴각 준비를 했다. 조조는 식량을 빼돌리고 군의 사기를 떨어뜨렸다는 죄목으로 양수를 처형 한다. 그의 목이 효시되자 병사들의 불만이 사라졌다. 그 뒤 조조는 양심에 가책을 느껴 죄 없이 목이 잘린 양수의 가족들을 보살펴 주었다. 한사람을 희생시킴으로 규율이 잡히고 안정된 것을 보면 조조는 심리학에도 조예(造詣)가 깊었던 것 같다.

서양에서도 르네상스 시대에 조조와 비슷한 사람이 있었는데 권모술수에 냉혹했던 체사레 보르자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권모술수를 보면 당시에 그의 이름을 ‘우아한 냉혹자’ 로 통했을 정도다. 냉혹하기가 그지없으면서도 우아하게 행동해서 부쳐진 이름일까? 그는 알렉산드르 추기경의 사생아로 로마에서 출생했다. 나중에 알렉산드르 추기경이 교황이 되자 아버지 배경으로 교황청 군대의 총사령관에 발탁 되었다.

사령관이 되자 존재감을 나타내고 교황청 권위를 바로잡기위해 시범 케이스로 명령에 잘 복종하지 않는 참주들을 징벌하는 차원에서 로마냐 공국을 정벌하였다. 당시 로마냐 공국은 공권력이 미치지 못해 무법천지나 다름이 없었다. 체사레 보르자는 자기 손에 피를 되도록 적게 묻히려고 잔혹하다고 소문난 또 다른 유능한 장군 레미로 데 오르코를 임명하였다. 새로 정복한 곳이라 강력하게 법을 잘 집행하고 냉정한 사람을 보내는 것은 누가 보아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체사레는 그를 희생양으로 삼기 위한 술수에 불과했던 것이다.

체사레의 예상대로 로마냐 공국은 많은 희생자를 내면서 질서가 회복되어 잘 다스려 지게 되었다. 질서는 잡혔지만 현지인들의 불만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때 체사레가 나서서 오르코의 폭압적인 행동을 지적하며 잡아들였으나 이튿날 피살된 체로 발견 되었다. 오르코를 이용하여 질서를 회복하고 안정되는 속에서 터져 나오는 불만을 오르코를 죽임으로 불만을 잠재웠던 것이다. 정도는 다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해방 후 6.25를 전후해서 남쪽 지리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빨치산 부대들도 그런 일을 소규모나마 자행했었다. 죽일 사람을 나무에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놓고 일행 중에 한사람을 풀어주면서 죽창으로 이 사람들을 찔러 죽이면 그 공로로 너만을 살려 주리라고 회유를 한다. 그때 회유를 받은 사람은 거의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했는데 혹시 살수도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힘껏 묶인 동료들을 찔러 죽인다. 마지막 남은 한사람을 고생했다고 격려 하면서 죽이는 것도 희생양의 법칙에 해당한다.

이렇게 희생양의 법칙을 이용할 때는 반드시 두 개의 목적이 달성되어야 한다. 두 번째 체사레 보르자는 마키아벨리에 의해서 《군주론》이라는 책으로 발간되어 스테디셀러로 나와 있다. 지금도 서양 고전으로 많이 읽히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당시 외교관으로서 체사레를 몇 번 만나보고 감명을 받아 자기가 느꼈던 점을 장문으로 본국의 왕에게 보낸 것이 책으로 발간되었다. 이것이 군주론 17장에 나오는 체사레의 로마냐 정복과정이다. 동양 유가에서는 맞지 않는 일이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조조의 《후흑학(厚黑學:철면피 같은 흑심)》 이나 《군주론》이 한 학문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경일 회사원 (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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