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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여사 별세] “아내 없었다면 나도 없었다”는 영원한 동지 DJ 곁으로결혼 열흘 만에 DJ 정보부 끌려가
76년엔 양심수가족협의회 결성
DJ 수감 땐 집에 난방도 안 해
“영부인 아닌 여사로 불러 달라”
유창수 기자 | 승인 2019.06.11 18:26 |
▲2016년 이 여사의 모습

이희호 여사는 대개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부인’으로 기억되지만 그의 삶의 궤적을 추적해보면 강인한 사회운동가이자 여성운동가를 만나게 된다. DJ가 이룬 민주화 운동의 업적에서 이 여사의 지분은 적지 않다.

1922년 태어난 이 여사는 당시로선 드문 신여성이었다. ‘희호’라는 이름은 그 출발이다. 의사였던 아버지는 아들과 같은 돌림자 ‘호’를 딸에게도 붙여줬다. 당시 여성이 누리기 힘든 일이었다. 부모는 감리교를 믿어 서양식 사고에 익숙했다. 이 여사는 자서전 『동행』에서 “무조건 아들을 선호하던 시대였지만 나는 위로 오빠가 셋이나 있었기에 운 좋게도 크게 환영을 받으며 태어난 딸이었다”고 적었다.

어머니는 딸을 공부시켜야 한다는 열의가 컸다. 그런 어머니는 이 여사가 18살 때 돌아가셨다. 이 여사는 “학업을 마칠 때까지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것이 어머니의 꿈을 이루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화여전(현 이화여대)과 서울대에서 공부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스칼릿대학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교수였던 수필가 피천득은 이 여사를 “언니스러운 인품과 활발한 성격은 (이 여사가) 사범대 전교 여학생들의 지도자적 역할을 하게 했다”고 회고했다.

주위서 결혼 말리자 “큰 꿈 이룰 사람”

이 여사가 평생의 동행자 DJ를 만난 건 1951년 피란지 부산이었다. 이 여사는 당시 여성운동에 투신하고 있었고, DJ는 해운사를 운영하는 사업가였다. DJ는 이 여사를 “이지적인 눈매를 지닌 활달한 여성”으로 기억했다. 공부를 많이 한 인텔리 여성 앞에서 주눅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상하리만큼 말이 잘 통한다는 것이었다.

DJ는 이후 3, 4, 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내리 낙선했다. 그 사이 전처인 차용애씨와도 사별했다. 외롭고 괴로운 나날이었다. 그는 말벗이었던 이 여사를 찾았다. 그들은 이 여사가 총무로 있던 대한YWCA가 자리한 명동에서 산책을 하며 정치 등을 주제로 토론했다. 서로를 향한 사랑이 커졌고, DJ는 청혼했다. 이 여사는 이미 청혼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다. 이 여사는 후에 “이 사람을 도우면 틀림없이 큰 꿈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애 둘 딸린 홀아비에 빈털터리였던 DJ와의 결혼을 다들 말렸지만 그의 결심은 확고부동했다.

1962년 결혼한 뒤 열흘 만에 이 여사는 DJ가 반혁명이라는 죄목으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는 장면을 지켜봤다. 결혼 생활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이 여사는 DJ에게 시련을 에둘러 가라고 타이르지 않았다. 이 여사는 1972년 미국에서 한국의 독재 상황을 알리던 DJ에게 “더 강한 투쟁을 하시라”고 편지를 썼다. 유신시절 옥중의 남편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무엇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알면서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라고 했다. 이 여사는 DJ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였다.

▲11일 오후 광주시청 1층 로비에 마련된 고(故) 이희호 여사의 분향소에 추모객들이 가득 차 있다.

이 여사는 스스로가 민주화 운동가였다.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으로 DJ가 구속되자 함께 구속된 이의 부인들과 함께 양심수가족협의회를 결성했다. 민주주의와 언론자유가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상징하자는 뜻에서 입에 검정 테이프로 십자가를 만들어 붙이는 시위도 이끌었다.

이 여사는 DJ를 민주화 운동의 동지로 여겼다. 1977년 DJ가 진주교도소에 수감돼 있을 때 집에 난방도 하지 않았다. 추위를 잘 타는 남편이 불을 때지 않는 교도소에 있는데, 자신만 따뜻하게 지낼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냉방에 꿇어 엎드려 기도하다 정신을 잃기도 했다.

1980년 군사재판부로부터 사형을 선고받은 DJ에게 이 여사는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당신의 생이 평탄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더욱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 (당신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유난히 강했습니다. 그래서 받은 것이 고난의 상입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DJ 부부의 삶의 방향은 달라졌다. 이 여사는 이제 옥바라지 대신 지원 유세 등 선거를 함께 했다. 그해 실시된 1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DJ와 함께 이 여사는 전국을 돌았다. 충남 서산 연설에서 이 여사는 찬조연설을 했는데, 당시 언론에선 “웬만한 정치 연설꾼 실력을 웃돌아 부창부수라는 중평을 받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1992년 대선 낙선 뒤 DJ가 불러주는 정계 은퇴서를 받아쓴 이가 이 여사이기도 했다.

▲1973년 8월 8일 도쿄에서 납치된 김대중 전 대통령이 14일 서울 동교동 자택으로 돌아온 뒤 이 여사가 상처를 치료하고 있는 모습

DJ “이희호 남편인 게 자랑스럽다”

1997년 대선에서 DJ는 마침내 대통령이 됐다. 대통령 부인을 부르는 명칭이 ‘영부인’ 대신 ‘여사’로 바뀐 것도 이 때다. 이 여사가 “대통령의 부인이기 전에 ‘나 자신’이고 나이도 들었으니 여사로 불러주면 좋겠다”고 건의한 결과다. 이 여사는 청와대에 있는 동안 어린이 문제에 관심을 쏟았다. 옥중의 남편에게 보낸 편지들을 묶어 『내일을 위한 기도』라는 책을 출간했고, 판매수익으로 결식 아동을 도왔다.

DJ는 1983년 미국 망명 시절에 샌프란시스코에서 강연하던 중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아내가 없었더라면 내가 오늘날 무엇이 되었을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오늘 내가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은 내 아내 덕분이고, 나는 이희호의 남편으로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나는 그것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많은 이가 이 여사를 설명할 때 DJ를 먼저 떠올리지만, DJ는 자신의 삶을 설명할 때 아내를 앞세우곤 했다.

“남자는 자신을 믿어주는 여자를 위해서 여자가 인정해주는 만큼 성장한다.”

- 이희호 여사 자서전 ‘동행’ 중에서

“이희호 여사, 여성위해 살아온 위인”

문 대통령의 메시지 전문

오늘 이희호 여사님께서 김대중 대통령님을 만나러 가셨습니다. 조금만 더 미뤄도 좋았을텐데, 그리움이 깊으셨나봅니다. 평생 동지로 살아오신 두 분 사이의 그리움은 우리와는 차원이 다르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여사님 저는 지금 헬싱키에 있습니다. 부디 영면하시고, 계신분들께서 정성을 다해 모셔주시기 바랍니다.

여사님은 정치인 김대중 대통령의 배우자, 영부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1세대 여성운동가입니다. 대한여자청년단, 여성문제연구원 등을 창설해 활동하셨고, YWCA 총무로 여성운동에 헌신하셨습니다. 민주화운동에 함께 하셨을뿐 아니라 김대중 정부의 여성부 설치에도 많은 역할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여성을 위해 평생을 살아오신 한명의 위인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여사님은 "남편이 대통령이 돼 독재를 하면 제가 앞장 서서 타도하겠다" 하실정도로 늘 시민 편이셨고, 정치인 김대중을 '행동하는 양심'으로 만들고 지켜주신 우리시대의 대표적 신앙인, 민주주의자였습니다.

지난해 평양 방문에 여사님의 건강이 여의치 않아 모시고 가지 못해 안타까웠습니다. 평화의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드리고 싶었는데 벌써 여사님의 빈자리가 느껴집니다. 두 분 만나셔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겠지요. 순방을 마치고 바로 뵙겠습니다. 하늘 나라에서 우리의 평화를 위해 두 분께서 늘 응원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집에서 이 남자와의 결혼을 반대합니다.

저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석사를 따 한국에 돌아왔고 풍족한 건 아니지만 아버지가 의사셔서 어려움 없이 자랐습니다.

남자는 고졸이고 현재는 직업이 없지만 정치를 하고 싶어 합니다. 스피치학원을 잠깐 했었는데 선거에서 몇 번 떨어지고 지금은 무일푼으로 월세방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홀어머니가 편찮으시고 시누이가 하나 있는데 심장이 안 좋아서 결혼하면 둘 다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남자는 재혼입니다. 첫사랑과 결혼해서 지금은 사별하고 중학생 아들이 두 명 있어요. 물론 제가 키워야 합니다.

전 초혼입니다. 전 그를 사랑하는데 가족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 모두 결혼을 반대하네요. 인물 됨됨이는 정말 훌륭한데... 그는 내가 필요하고, 아이들을 돌봐주길 원하네요... 그리고 절 사랑한다고 합니다. 이 결혼 괜찮을까요?

-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이야기 ‘사랑하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에서

유창수 기자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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