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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막노동해서 대학까지 보낸 딸이 '아빠 직업이 부끄럽다'며 삼성 다녔다 거짓말하라네요"
유창수 기자 | 승인 2019.07.14 14:39 |

"이해가 안가요. '노가다'란 직업이 그리 싫은가요?"

아내는 예전에 내가 막노동으로 7만원 받고 집에 오면 "힘들었죠? 수고했어요"라며 진수성찬을 차려주고 했는데, 우리 딸은 나를 부끄러워한다.

"무슨 아빠 직업이 '노가다'야. 내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다가 아빠 직업 물어보면 삼성 다녔다가 퇴직했다고 말해. 절대, 죽어도 막노동하러 다닌다고 말하지 마. 친구들이 놀리니까."

딸이 학교 다닐 때 이 말을 한 날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그날 10년 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웠다.

막노동해서 애들 대학 보내고, 시집보내고 다 했는데 딸은 여전히 나를 싫어한다.

얼마 전에는 가족하고 외식 갔다가 내 손이 탄 건물에 들어갔다. 자랑스럽게 "이 건물 대리석을 아빠가 깔았다"고 자랑하니 딸이 "짜증 나니까 밖에서 그런 소리 하지 말라"며 화를 냈다.

겉으로는 꾹 참지만 속으로 운다. 막노동은 천한 직업이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지만, 이런 일을 하는 나 같은 사람이 있으니까 건물도 짓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건데 딸은 그걸 모른다.

그래도 일한 뒤 "내가 이걸 지었구나"하면서 건물을 보면 뿌듯하기도 한데... 딸을 잘못 키운 내 탓이니 이해해야겠지.

오늘도 담배 한 개비 물고 하염없이 연기만 날릴 뿐이다.

한 가장이 남긴 씁쓸한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서 재조명됐다. 그는 일용직 노동자로, 한 평생 현장에서 일하며 가족들을 먹여 살렸다.

아들은 그를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하지만, 딸만은 결혼을 한 지금까지도 아빠의 직업을 부끄러워한다.

딸뿐만 아니라 요즘에는 종종 현장복을 입고 다니다 젊은이들에게 무시를 당한다는 그.

자신의 직업이 한 번도 부끄럽거나 싫었던 적 없었기에 남들의 시선은 무시했지만, 딸의 말만은 상처로 다가왔다고 한다. 딸이 그런 말이나 기색을 보일 때마다 섭섭함을 넘어 서글프다는 그의 글에 많은 누리꾼들이 위로의 마음을 보내고 있다.

한 누리꾼은 "내 장인어른도 타일공인데 작업복을 입고 식당에 갔다가 쫓겨난 적이 있다고 하더라"며 "나와 처가는 누구보다 장인을 존경하고 사랑한다"며 경험담을 전했다.

또 다른 누리꾼들은 "딸이 등골 브레이커가 따로 없다", "타일공, 목공은 돈 진짜 잘 버는데 딸이 뭘 모르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도시권에 거주하는 50대의 61%가 블루칼라 직종에 종사한다는 통계도 있다.(2014년 서울서베이 도시정책지표조사)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건강하고 정직하게 노동하는 이들을 누가 무시할 수 있겠는가.

혹시 아버지의 직업이 '대기업 직원'이나 '화이트 칼라'가 아니라 부끄러운 적이 있었는가? 그렇다면 정말 부끄러운 것은 아버지의 직업이 아니라 '당신의 사상'일 것이다.

내가 어릴 적엔 <성공시대>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성공한 사람들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방송이었는데
매주 인물이 바뀌지만 이야기의 서술은 언제나 동일했다.
과거의 비참한 현실과 현재의 성공을 대비시키고
엄청난 노력과 불굴의 의지가 그 간격을 메운다.
그걸 보고 있노라면, 아무리 힘든 환경이라도
노력으로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니 그건 능력주의의 시작이었다.
개인의 능력과 ‘노오력’만 있으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자기계발서 같은 이야기.

하지만 현실에서 능력과 노력은 성공의 마스터키가 아닌
여러 요인 중 하나일 뿐이다.
게다가 과거에 그러한 성공 신화가 가능했던 건,
그때는 한국이 고성장 시기였고,
다들 지지리 못살아서 개인 간 자본의 차이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개인이 계층을 이동할 기회를 찾기 어렵고
공정한 능력주의의 전제 조건인 ‘기회의 평등’은 지켜지지 않은 채
부모의 자산, 배경, 계층의 이어달리기가 진행 중이다.
물론 노력이 경시될 수는 없으나,
운과 환경과 같은 비능력적인 요소가 많은 것을 좌우하고,
노력만으로 큰 성공을 거둔 이가 있다 해도,
소수의 예외가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노력=능력=성공]이라는 등식은
[게으름=무능=가난]이라는 등식으로 자동 연산되어서
가난의 이유를 노력이 부족한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차별과 계급을 정당화한다.
무한한 기회가 열려있는데도 가난한 것은 너의 탓이니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그래서 사람들은 가난하면 쪽팔리다.
그러니 가난해 보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것도 아닌데
학교엔 노스페이스나 K2쯤은 입고 가야 가오가 살고
부녀회에선 비싼 아파트처럼 보이기 위해
아파트 이름을 영어로 바꿔야 한다는 촌극을 벌인다.

기회가 평등하지 않는 한, 능력주의는 허구일 수밖에 없음에도
성공시대와 자기계발서가 심어놓은 왜곡된 능력주의는
우리를 부자인가 아닌가 하는 결과값에 맞춰
우쭐함과 부끄러움 사이 어딘가에 놓이게 했다.

하지만 막상 주변을 둘러보면
그저 운이 좋아서 혹은 상속받은 자본으로 부를 이룬 부자가 한둘인가.
가난하지만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이웃이 한둘인가.

과정은 스킵한 채 편법을 저지르고 약자를 착취해도
돈이 많은 부자는 당당하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았어도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이 부끄럽다면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닐까.

가난하다 해도 최선을 다했고 떳떳하게 살아왔다면
그 삶에 자긍심과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

세상에는 부끄러워해야 할 부가 있듯이
떳떳한 가난이 있다.

유창수 기자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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