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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언론] 기자에 대한 영화의 두 시선-‘내부자들’과 ‘1987’‘타락한 권력의 하수인’ 또는 ‘진실과 양심의 고발자’
글/이대현(국민대 겸임교수·전 한국일보 논설위원) | 승인 2019.10.05 02:10 |

◇‘내부자들’은?

동명의 윤태호 만화가 원작이다. 대선 후보인 현역 국회의원 장필우와 미래자동차 회장 오현수, 유력 일간지 조국일보 논설주간 이강희가 손을 잡고 ‘부당거래’를 한다. 영화는 추악하고 뻔뻔한 ‘정·경·언 유착’과 사생결단으로 그 실상을 폭로하려는 깡패와 검사를 통해 우리 사회의 깊고 어두운 단면을 드러낸다. 우민호 감독의 2015년 작품.

◇‘1987’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영화화했다. 박종철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고 그것으로 마침내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나기까지의 ‘사실’을 긴박하고 촘촘하게 그려간다. 당시 관련자들이 모두 실명으로 등장한다. 장준환 감독의 2017년 작품.

영화의 시선은 두 개다. 하나는 믿음의 선이고, 하나는 불신의 악이다. 선택은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 그것에서 언론의 존재와 역할은 무엇인가에 달려 있다. 그 선택에 따라 기자는 진실과 양심, 정의를 지키는 감시·고발자가 되기도 하고 탐욕에 빠진 타락한 권력의 하수인이 되기도 한다.

◇영화 속 기자의 얼굴

한국 영화도 마찬가지다. 어느 쪽에 서 있게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진다. 사회 부조리나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존재인가, 아니면 자만과 탐욕에 빠져 그것을 외면하거나 동조하는 존재인가. 영화는 기자에게 한쪽으로 서 있는 사람들과 ‘동질성’을 갖게 한다.

이 같은 이분법적 시각이 때론 과장되거나 극단적이지만, 분명한 것은 둘 다 현실의 반영이란 사실이다. 비록 정반대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같다. 기자, 나아가 언론의 존재 가치에 대한 강조이고, 그것을 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사건이 있는 곳에 기자가 있다’는 말을 영화는 다양하게 설정한다. ‘살인의 추억’에서처럼 말 그대로 사건 현장에서 진실을 파헤치려고 애쓰는 기자. 반대로 ‘내부자들’에서처럼 사건은 누구도 쉽게 바로잡을 수 없는 거대 권력의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이고 그 악의 고리에 자신도 기꺼이 손을 잡은 기자. 영화는 이들의 존재를 통해 현실의 언론에 박수를 보내기도 하고 질책하기도 한다.

‘더 포스트’처럼 아예 사건이 ‘언론’이고 주인공이 ‘기자’인 작품은 다르겠지만, 영화는 기자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때론 아주 짧은 순간으로도 자신의 시선과 인식, 현실을 드러낸다. ‘베테랑’에서 박 기자(신승환)는 “기자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고 소리쳤다. 기자의 현실과 자세, 자부심을 응축한 한마디다.

음습하고 비열하고 잔인하고 사악하고 탐욕스러운 우리 사회 지배세력의 거대하고 추악한 커넥션을 고발한 ‘내부자들’에서도 마찬가지다. 거기에 야합한 조국일보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 분)의 한마디 한마디가 섬뜩하고 통렬하다. 비뚤어진 언론관을 교묘히 이용해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타락한 언론인을 참담하게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원작인 윤태호 만화의 직설적이면서 풍자와 은유가 날카로운 대사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기는 하지만.

영화 ‘내부자들’ 속 이강희와 똑같은 언론인은 현실에 없다. 과장이다. 그렇다고 현실이 아니라고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이따금 비슷한 일이 터지고 그를 연상시키는 인물이 나오니까. <출처=영화 ‘내부자들’ 스틸컷>

◇타락의 시선, ‘내부자들’ 속 이강희

조국일보 논설주간 이강희의 대사를 다시 한 번 기억해보자. 먼저 말과 글에 대한 그의 인식과 그것으로 진실을 농락하고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부터. “말은 권력이고 힘이야” “누구는 어떠어떠하다 보기 힘든데, 누구는 어떠어떠한 것으로 매우 보여진다” “끝에 단어 3개만 바꿉시다. ‘볼 수 있다’가 아니라 ‘매우 보여진다’로”.

이렇게 말과 글의 권력을 교묘히 이용해 권력에 빌붙어 욕심을 채우면서도 “저 같은 글쟁이가 무슨 힘이 됐습니까”라고 너스레를 떠는 그가 노조 기사를 두고 불평하는 오현수 미래자동차 회장(김홍파 분)에게 아무렇지 않게 건넨 말은 한 고위공무원에 의해 ‘진짜 현실’ 대사가 되어 세상을 분노케 했다.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뭐 하러 개, 돼지들에게 신경 쓰고 그러십니까. 적당히 짖어대다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국민을 개, 돼지로 여기는 언론인의 비뚤어진 언론관과 사회 인식을 ‘내부자들’은 그의 말로 대신한다. “그들이 원하는 건 술자리나 인터넷에서 씹어댈 안줏거리가 필요한 겁니다. 적당히 씹어대다가 싫증이 나면 뱉어버리겠죠. 이빨도 아프고 먹고살기도 바쁘고. 우린 끝까지 질기게 버티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나라 민족성이 원래 금방 끓고 금방 식지 않습니까? 적당한 시점에서 다른 안줏거리를 던져주면 그뿐입니다. 어차피 그들이 원하는 건 진실이 아닙니다. 고민하고 싶은 이에게는 고민거리를, 울고 싶은 이에게는 울 거리를, 욕하고 싶어 하는 이에게는 욕할 거리를 주는 거죠. 열심히 고민하고 울고 욕하면서 스트레스를 좀 풀다 보면 제 풀에 지쳐버리지 않겠습니까?”

이런 그의 오른손을 배신당한 깡패 안상구(이병헌)가 잘라버린다. 그래도 바뀌지 않는다. “까짓것 왼손으로 쓰면 되죠.” 왼손으로 쓰든 오른손으로 쓰든 그에게 글은, 언론은 권력이고 대중은 거기에 놀아나는 어리석은 개, 돼지이다.

물론 이강희와 똑같은 언론인은 현실에 없다. 과장이다. 그렇다고 현실이 아니라고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이따금 비슷한 일이 터지고 그를 연상시키는 인물이 나오니까. 과장과 시대에 뒤떨어진 상투가 있지만 이강희를 보고 언론인들이 스스로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담은 실화 영화 ‘1987’은 기자가 액션영화의 주인공 같은 영웅은 아니라고 말한다. 언론인의 진실한 무기로 진실을 파헤쳤고, ‘보도지침’이란 권력의 부당한 간섭을 과감히 뿌리치고 그 진실을 세상에 드러냈다. <출처=영화 ‘1987’ 스틸컷>

◇믿음의 시선, ‘1987’ 속 윤상삼과 신성호

그렇다면 영화가 이강희와 반대편에 세운 기자들은 어떤 존재인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담은 실화 영화 ‘1987’은 액션영화의 주인공 같은 영웅은 아니라고 말한다. 특종을 한 동아일보 윤상삼 기자(이희준)도, 중앙일보 신성호 기자(이신성)도 당시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이 땅에 양심과 자유를 지키려 했던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우리한테 남은 마지막 무기는 진실뿐입니다.” ‘1987’에서 경찰의 감시를 피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을 알리려는 재야 민주열사 김정남(설경구)은 이렇게 말한다. 진실은 무기이자 누구에게도 가장 소중한 가치이다. 기자만의 특권도 전유물도 아니다.

‘1987’에서 정권의 비열한 폭력에 맞서는 편에 선 사람들 모두가 협박과 공포 속에서도 끝내 진실을 포기하지 않았다. 양심을 버리지 않은 부검의, 권력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한 공안검사, 이 땅에 진정한 평화와 자유를 열망하는 천주교 사제들과 재야 민주인사, “진실은 감옥에 가둘 수 없다”는 교도소 경비계장과 교도관 그리고 울분으로 거리에 나선 수많은 대학생과 시민들까지.

그들은 각자 자신들의 진실의 무기와 가치로, 자신들의 자리에서 용기 있게 진실을 향해 나아갔다. 그 결과 진실은 세상에 알려졌고, 그 진실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었다. 검찰간부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를 놓치지 않은 신성호와 화장실에 숨어서까지 취재를 한 윤상삼, “경찰이 고문해서 대학생이 죽었는데, 보도지침이 대수야. 앞뒤 재지 말고 들이받아”라면서 기사를 실은 동아일보 사회부장(고창석)도 마찬가지였다. 언론인의 진실한 무기로 진실을 파헤쳤고, ‘보도지침’이란 권력의 부당한 간섭을 과감히 뿌리치고 그 진실을 세상에 드러냈다.

‘1987’은 그들이야말로 지극히 상식적인 언론인이자, 시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만 특별한 시선을 보내지 않았고, 영웅으로 치켜세우지도 않았다. ‘민주주의’는 영웅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양심과 정의를 지킬 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대표성이 아닌 상징성

영화 속 기자는 비록 실존 인물을 담았다 해도 현실 그 자체는 아니다. 대표성을 가지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언론인의 단면을 보여주는 상징적 성격이 강하다. 윤상삼 기자처럼 긍정적이라고 더 미화되고, 이강희 논설주간처럼 부정적이라고 마구 비틀어도 안 된다.

그러나 영화는 의도와 달리 관객들로 하여금 마치 그들이 언론인을 대표하는 듯한, 모든 언론인이 그들과 같은 모습일 것이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많은 영화들이 언론에 대한 냉철하고 객관적인 관찰이나 고민 없이 기자를 등장시키고 있다. 감독과 작가의 선입견이나 고정관념, 스토리의 흥미와 자극을 위해 멋대로 과장하고 희화하기도 한다. 리얼리즘을 팽개치고 다른 작품의 것을 그대로 모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특히 비리와 부패를 소재로 한 영화에서 심하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무시할 수도 있지만, 이런 상투성이야말로 언론인에 대한 편견을 낳는다. 그리고 그 편견은 기자에 부정적인 영화일수록 자극적이고 강해 자칫 전체 언론인에 대한 시선이 될 위험이 있다. 이미 그렇게 되고 있다.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정서와 맞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책임은 국민의 기대 수준을 저버린 기자, 사회적 사명과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언론에도 있다.

기자들은 기자가 나오는 영화를 볼 때면 마음이 편치 못하다. 그러나 불편함만으로 영화 속의 기자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영화는 허구이지만, 현실을 완전히 무시하지 않는다. 모든 기자들이 당당하게 “나도 저런 기자야” 아니면 “저런 기자는 없어”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영화 속 기자도 달라지고, 영화도 편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본 기사는 <신문과방송> 2018년 6월호(통권 570호) 기획연재 섹션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글/이대현(국민대 겸임교수·전 한국일보 논설위원)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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