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외부 출입보다는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날씨가 풀리면서 다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이 넘쳐나고 있다. 여행의 계절을 맞아 영광군 9경(景)과 지역별 특색 있는 문화재를 소개 한다. <편집자 주>

“봄이 와서 꽃피는 게 아니다/ 꽃피어서 봄이 오는 것이다/···(중략) 내가 먼저 꽃피지 않으면/ 내가 먼저 문 열고 나서지 않으면/ 봄은 오지 않는다/ 끝끝내 추운 겨울이다.”

이정하 시인의 ‘봄을 맞이하는 자세2’를 읽다가 문득 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요즘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은 계절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봄이 왔지만 여느 봄 같지 않다.

이런 때에 접한 시 한편은 ‘먼저 꽃피라’고, ‘먼저 문 열고 나서라’고 등을 떠민다. 온갖 봄꽃이 만발한 이때에 고강도의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소박한 봄나들이마저 쉽지 않다. 이런 사회적 영향으로 자발적(?) 격리 중에 있는 군민들 사이에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은 충동들이 넘쳐나고 있다. 겨우내 그리워했을 생명의 푸른 빛깔을 찾아 영광군의 아름다운 섬, 송이도로 떠나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광 하면 자연스럽게 굴비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영광에 있는 섬을 가본 적이 있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잘 모른다. 신안이나 진도, 그리고 완도와 여수의 섬들은 떠올리면서도 “영광에도 섬이 있느냐”고 반문한다.

영광에는 유인도가 11개다. 특별히 내세울 만한 섬도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교통이 불편하여 잘 알려지지 않았다. 면소재지 낙월도는 최근에야 하루 2~3회 여객선이 다니지만 송이도와 안마도는 들어가면 1박을 하고 와야 한다.

영광군 낙월면에 소속된 11개 유인도 가운데 송이도와 낙월도, 안마도는 낙월면의 가장 크고 대표적인 섬이다. 면소재지인 낙월도는 송이도와 20여 분 거리지만, 두 섬을 연결하는 뱃길은 없다. 우리나라 대부분 섬들의 모습이다. 지금은 좀 덜하지만 예전에는 아주 가까운 섬들도 가보지 못하고 평생 바라만 보다가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한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낙월면에 속하며, 섬에 소나무가 많고 섬의 모양이 사람의 귀를 닮아 ‘송이도’라 불린다. 마을 앞에 위치한 조약돌(몽돌)해수욕장은 오랜 세월동안 파도가 만들어낸 부드럽고 동글동글한 모양의 조약돌이 약 1km 정도 이어져 색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2003년 해양수산부의 아름다운 섬 100선에 선정된 바 있으며, 칠산도 괭이갈매기, 노랑부리백로 및 저어새 서식지는 천연기념물 제389호로 지정되어 있다.

낙월도는 신안군과 매우 가깝고 송이도와 안마도는 영광군 법성포 쪽에 가깝기 때문에 생활권이 서로 다르다. 바다에서 나오는 어종도 서로 달라 낙월도 주민들은 새우를 많이 잡고, 송이도와 안마도 사람들은 조기를 많이 잡는다. 그래서 낙월도의 관문 염산은 젓갈이 많이 팔리고, 송이도와 안마도의 관문인 법성포는 명품 영광굴비 주산지가 되었다.

같은 바다에 떠있어도 지형과 해양 생태가 서로 달라 오묘한 균형 발전을 이룬다. 낙월도 어장은 새우가 대량으로 잡히고, 칠산바다는 조기가 풍년을 이루었다. 낙월도에는 새우잡이 어선인 멍텅구리배가 있었다. 1987년의 셀마호 태풍으로 선원 27명이 수장을 당한 후 정부에서 어족 자원 보호 차원의 보상을 해 주고, 멍텅구리배는 사라졌다. 송이도 사람들은 1960년대 칠산 바다에서 조기가 사라진 후 소규모 어업에 종사하면서 농업에 의존해 생활하고 있다.

송이도는 법성포 계마항에서 28.5km 떨어진 작은 섬이다. 그 덕분에 송이도는 원시의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낙월면의 가장 중앙에 있는 섬으로 면적은 3.60km²이며, 낙월면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다. 유래는 알 수 없지만 고려시대에는 송이도를 ‘남사자도’로 불렀다고 한다.

1973년도까지만 해도 송이도에는 큰말, 작은말, 외미, 양골 등에서 107가구 522명의 주민이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교통이 너무 불편하고 물산이 없어서 인구가 대폭 줄어들었다. 송이도는 유일하게 해수욕장이 있어 여름철에는 피서객들이 제법 많이 들어오는 곳이다.

송이도에서 가장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몽돌해수욕장과 송이도와 각이도 사이의 모래등으로 된 7km 정도의 길이다. 인천의 대이작도 풀등보다는 모래에 갯벌이 많이 섞여 있지만 훨씬 길고 넓다. 썰물이면 2시간 정도 드넓은 모래등이 펼쳐진다. 모세의 기적처럼 바닷길이 열리는 풍경은 탄성을 자아낸다.

이 모래등은 섬으로 오는 뱃길을 막고 있으며 30분에서 1시간을 돌아가야 한다. 이곳 사정을 모르고 들어갔다가는 모래등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고 꼼짝없이 갇혀 있다가 물이 들기를 기다려야 한다. GPS가 없던 시절 이 풀등에 종종 배가 걸렸다고 한다. 물이 들어오면 바다로 변한다. 물이 빠지면 모래등이 드러나 배들이 멀리 돌아가지만, 썰물에는 각종 해산물 천국으로 변한다. 기쁨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주는 바다이다. 이 광활한 풀등은 송이도의 특산물인 백하와 새우의 산란장이기도 하다.

겨울철에는 맛조개와 대합이 많이 나는 조개밭이 된다. 여름에는 수영도 하고 조개를 잡는 자연 학습장으로 최고다. 1990년대에 이 모래등에서 지주식 김 양식장을 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양식장에 쓰였던 잘려나간 말뚝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 모래등은 새우·조개·게와 주꾸미 등 각종 물고기들의 부화장인 셈이다.

최고의 명품, 몽돌해변

선착장에 내리자마자 오른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해변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전국 유일의 조약돌 해수욕장으로 그 길이는 1km에 이른다. 맨발로 다녀도 발이 전혀 아프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운 몽돌로만 이루어져 있다. 맨발로 걸어가면 그 감촉이 아주 좋다. 몽돌은 바다의 거센 바람이 파도를 일으키면서 오랜 세월을 시달린 결정체다. 돌과 돌이 바닷물에 씻기고 달아져 둥글게 되었다.

보통의 섬들은 선착장에서 먼 곳에 해변이 위치해 걸어가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인데 섬의 관문인 선착장 옆, 마을 앞에 위치해 있어 여행자들은 마을에 숙소를 정하고 바로 나와 편리하게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몽돌해변의 조약돌은 해안절벽에서 흘러내린 돌들이 오랜 시간동안 조류에 다듬어져 동글동글 귀엽다. 돌 위를 맨발로 걸으면 피로가 풀리는 지압효과가 있고 돌 사이로 바닷물이 오고 갈 때는 몽돌해변 끝으로 서해 바다의 특징인 갯벌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고운 모래로 이어져 인기가 높다.

칠산바다 중심 섬 ‘송이도’

송이도 인근 바다는 하늘이 내려준 생선, 즉 조기의 최대 산란장이다. 임금님에게 보내는 진상품으로 유명한 영광 굴비는 이 칠산바다 주변에서 잡혔다. 그 칠산바다의 중심에 있는 섬이 송이도이다. 1960년대 조기가 많이 잡힐 때 칠산바다는 조기를 잡는 어선들과, 이들이 잡은 조기를 사들여 운반하는 상선들이 바다를 뒤덮여 불야성을 이루었다.

조기는 예로부터 영광의 대표적인 특산물이었다. 1454년에 발간된 세종실록지리지에는 한결같이 토산물 또는 진공물(進貢物)로 기록되어 있다. ‘영광 법성포로 돈 실러 가자······’는 민요도 조기잡이와 관련된 것이며, ‘칠산어화(七山漁火)’라는 시구(詩句)도 조기잡이 배들의 불빛이 불야성을 이룬다는 표현이다. 조기의 이동 경로를 보면 ‘동중국해-추자도근해-칠산바다-연평도’로 이어지는데 그중 가장 맛이 좋은 조기는 곡우 절기에 ‘칠산바다’에서 잡힌 것이다.

봄의 마지막 절기가 곡우(穀雨)다. 대개 4월 20일경에 든다. 곡우 때 물이 가장 많이 들고 빠지는데 이때를 전후해 히는 조기는 배에 알을 가득 실어 최고로 친다. 조기 파시 이야기만 나오면 대부분 노인들은 그 시절이 좋았다고 한다.

송이도는 왕소사나무 전국 최대의 군락지로 1991년 천연보호림으로 지정되었다. 마을뒷산 큰 당에 수령 50~200년의 왕소사나무 110여 주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마을 뒷산인 내막봉 주변의 산등성이에 올라가야 볼 수 있다. 소나무 군락은 마을의 수호신이 있는 당산으로 여겨 최근까지 당제를 지냈다.

선주들은 깨끗하고 생기가 좋은 사람을 제주로 선정해 섣달그믐 무렵과 초하루 저녁 10시 무렵 칠성단에 수소 머리와 제물을 올려 마을의 평안과 풍어, 풍년, 선원들의 무사귀환 등을 기원한다고 한다.

이튿날 큰당에서는 남자들만 참여하는 당맞이굿이 농악과 함께 시작된다. 당맞이굿이 끝나면 선주들은 큰당으로 달려가 오색기를 가지고 내려와 자기 배에 꽂는다. 제일 먼저 오색기를 가져와 배에 꽂는 사람은 그해 만선을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굿이 끝나면 농악대는 마을샘을 돌며 샘굿을 쳐, 1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고 부정한 일이 없기를 기원한다. 물이 귀한 섬에서 샘에 일종의 제를 지내는 셈이다.

송이도 당집에는 일곱 개의 철마가 모셔졌다고 전한다. 해방 후 모두 사라자고 한 개만 남았는데, 면서기가 몰래 가지고 나가려다 선창에서 벼락을 맞아 그 자리에서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 온다.

송이도에는 아직도 초분을 하는 풍습이 남아 있다. 초분은 일종의 풀무덤으로 시신 또는 관을 땅 위에 올려놓은 뒤 짚이나 풀 등으로 엮은 이엉을 덮어 두었다가, 2~3년 후 뼈를 씻어(씻골) 땅에 묻는 무덤을 말한다. 송이도에는 3기의 초분이 있다.

해안선 산책로를 걸어보자

송이도는 몽돌해변으로부터 해안선으로 이어지는 산책로가 있다. 마을에서 해안 산책로로 향해 걷다 보면 다른 섬에서는 보기 드물게 논과 밭이 눈에 들어온다. 깊은 산 덕분에 다른 섬에 비해 물이 풍부하여 오래전부터 농사를 지어왔다. 농사에 물을 대기 위한 저수지가 섬 중앙에 있고 저수지 오른쪽에는 절터의 흔적인 석축이 있다.

마을에서는 팽나무 두 그루가 여행자를 반겨준다.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으로 패총과 무문토기 파편 등이 현재까지 발견되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큰 곳이다. 해안을 따라 돌아가면 곳곳에 해식애(海蝕崖)가 발달되어 있다. 큰냇기몽돌해변은 선착장에서 내려 바로 만난 하얀 조약돌 해변과는 사뭇 다른 장엄한 스케일을 자랑한다. 길이 6.4km의 해안산책로는 해돋이, 낙조, 바다경치를 즐길 수 있고 섬 주변에 널린 야생화가 반겨주는 걷기 좋은 아름다운길이다.

영광군에는 유인도 10개, 무인도 54개 등 64개의 섬이 있다. 그 가운데 송이도는 우리끼리만 알고 싶은 완소섬(완전 소중한 섬)이다. 영광 9경(景)으로 꼽히고, 영광 9미(味)인 맛조개와 백합의 주산지다.

해양수산부가 2003년 ‘아름다운 어촌’으로 2005년에는 ‘6월의 어촌’으로 선정했다. 송이도로 가는 여객선이 2019년 3월부터 하루 두 번 운항으로 뱃길이 편해졌다. 영광여행을 준비 중이라면 송이도에 꼭 들러보길 추천한다. 송이도는 향화도 선착장에서 매일 오전과 오후 하루 2회 왕복 운항하고 있다.

<송이도 운항정보>

운항노선 : 향화도⇔송이도(22.8km)

소요시간 : 1시간 30분

운항시간 : 하절기(4월~10월) 2회 운항 08:00~14:30

선박요금(편도) : 도서민 6,900원/ 일반인 8,200원/ 차량(승용기준) 26,000원

문의 : 061)353-4277 ((유)향화도 매표소)

※ 자주는 아니지만 물때에 따라 10:30 출발할 수도 있으니 송이도 여행을 계획할 때는 미리 전화로 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유창수 기자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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