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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가와 고택] ‘매간당(梅磵堂) 고택’] 매화락지 명당에 위풍당당 ‘삼효문’…나라에서 인정한 효자 가문
150년 역사의 ‘연안 김씨’ 직강공파 종택…살아있는 건축 박물관
유창수 기자 | 승인 2020.05.12 12:02 |

“그 들판은 매화낙지다. 매화 매(梅), 꽃 화(花), 떨어질 락(落), 따 지(地), 그렇게 쓰지.” “꽃이 떨어지는데 무엇이 좋은가요?” “이 사람아, 꽃은 지라고 피는 것이라네. 꽃이 져야 열매가 열지. 안그런가?” <혼불1권 58쪽>

혼불의 소설가 최명희의 소설에 ‘매화낙지’에 대한 글이 나온다. 영광 매간당 고택은 ‘매화낙지’라는 명당에 위치해 있는 멋진 고택이다. 우리나라 민간 고택 가운데 최대 규모인 125칸이다. 매간당 고택의 상징은 대문 역할을 하는 ‘삼효문’이다. 3명의 효자를 낸 집이라고 해서 나라에서 세우도록 한 건물이다.

연안김씨 직강공파 종택인 매간당 고택으로 드는 마을 어귀. 솔숲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영광은 서해가 10㎞ 거리니 동고서저(東高西低)가 분명하다. 10㎞ 떨어진 동쪽 태청산(590m)을 제외하면, 100~200m의 나지막한 산들이 동남북으로 에워싼 길지. 먼 북쪽에 불갑천이 동에서 서로 들을 휘감아 흐르는 길지. 뒷산의 정기가 모여 약간 부풀어 오른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풍수지리상 매간당 고택은 매화꽃이 떨어지는형국(梅花落地)의 길지이며, 학(鶴)의 형상이란다. 과거에는 연안김씨 종택이라 불렀는데 현재는 ‘매간당(梅磵堂)’ 고택으로 불리고 있다. 1998년 국가민속문화재 제234호로 지정됐다.

영광읍에서 염산방면으로 7.8km 가다가 외간교에서 왼쪽으로 꺾어 돌아 소나무가 심어진 하천둑길을 따라 산모퉁이를 돌면 오른쪽에 매간당 고택의 솟을대문이 보인다. 마을 앞에 차를 멈추고 사방을 둘러보니 가슴이 툭 트인다. 뒤에는 나지막한 안산이 마을을 감싸고 앞에는 군남과 불갑의 넓은 벌판이 펼쳐진다.

매간당 고택은 16세기 중엽 연안 김씨 직강공파(直講公派) 중조(中朝)의 4대손인 김영(金嶸, 1540~1598)이 영광군수로 부임하는 숙부 김세공(金世功)을 따라 영광에 온 이후 연안김씨 직강공파가 이곳에 정착해 후손들이 크게 번창해 외간종중이라 부른다.

매간당 고택 마당에는 꽃과 나무가 있고 하늘을 담고 있는 자연주의 건축인 한옥이 보인다. 군남면 동간리로 접어들자 세월이 깊은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드넓은 평야는 세상의 것 같지 않은 풍요로운 풍경이다. 매간당 고택은 전국 유일의 매우 특별한 대문을 갖고 있다. 고종 5년(1868) 건립된 것으로 솟을대문 위에 한 칸 규모의 효자각을 올린 2층 누각이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으며 계단 난간은 고급스럽게 조각된 당초문으로 장식되었다. 이 솟을대문은 입향조로부터 2세, 7세, 8세가 ‘효성이 지극했다’하여 고종의 명으로 세운 것이다.

2천여 평의 대지에 125칸의 종택은 팔자기와 지붕으로 양 날개에 여의주를 입에 문 용머리 장식을 하고 있다. 배흘림 기둥에 큰 대문의 돌 문턱과 나무 문턱의 차이점, 버선발로 들어가 일을 보는 옛날식 변소와 아궁이에 불을 떼 물을 덥혀 쓰는 목욕통, 일제시대 공출에 대비하여 곡식을 숨겨둔 비밀의 창고 등 재미난 장소와 스토리가 곳곳에 숨어 있다. ‘삼효문’이란 현판 글씨는 흥선대원군의 큰 아들이며, 고종의 형인 이재면(李載冕)의 글씨다.

삼효문(三孝門)의 아랫부분은 약간 가공한 기단 위에 아름드리 소나무를 다듬지 않고 생긴 그대로 휘어진 둥근 기둥이 서있다. 집을 만들면서 자연을 닮으려고 노력한 마음을 읽어볼 수 있다. 대문 앞에는 하마비가 있고 대문 한 쪽은 기둥 간격을 약간 작게 하여 사람의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다른 쪽은 조금 크게 하여 가마가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문지방과 인방(引防, 기둥과 기둥 사이에 건너지르는 가로재)도 출입방법에 따라 지혜를 발휘해 편리한 구조로 만들었다.

집의 구성을 보면 안채를 비롯하여 사랑채, 별당(서당채), 사당채, 곳간채, 안대문, 바깥대문, 마구간, 헛간, 찬광, 장독대, 연못, 정원 등이 있다. 조선시대 후기 상류사회 주택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며 잘 보존되고 있다. 영광에 연안김씨가 정착했던 처음부터 2,000평이 넘는 넓은 대지 위에 125칸의 건물이라는 대단한 규모의 집을 지은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대를 이어 살아오면서 선조들이 근검절약해 가세를 일으켜 오늘날의 종택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언제 지었는지 확실한 자료는 남아있지 않지만 안채 상량문에 ‘숭정기원후사무진이월이십구일(崇禎紀元后四戊辰二月二十九日)’이라는 기록이 남아있어 고종 5년(1868)임을 추측해 볼 수 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안채를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불에 타 다시 지었다고 한다. ‘매간당(梅磵堂)’이란 산속 물가에 핀 매화라는 뜻으로 남이 알아주건 말건 소박하게 지조(志操)를 지키며 산다는 뜻이라고 한다.

삼효문에는 효자 세 사람 명정(命旌)

삼효문에는 3개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14세(孝贈廣進十贈通政大夫司僕司僕司政延安金眞之閭 顯宗廟 己酉命族), 19세(孝子通德郞延安金載明之閭 高宗 忌亥 命族), 20세(通政大夫禮式院左掌記延安金含之閭 高宗 忌亥 命族) 현판이다.

김진은 70세에 색동옷을 입고 부모를 즐겁게 하다 상을 당하여 3년간 죽으로 연명해 1669년 효자로 명정되었고 사복시정이 증직되었다. 김재명은 김훤의 아들로 부모상을 당해 시묘살이를 하던 중 호랑이가 나타나자 다른 짐승들이 막아주었다는 전설의 주인공이다. 또 김함은 한겨울에 두꺼비를 구하여 부모를 병을 구완해 1899년 효자로 명정되었다.

‘삼효문’은 고종 때 과거급제 하여 승지를 지낸 25세 김종관 대에 지었다. 김종관은 고종 때 종묘제사에 축문을 쓰고 독축을 하던 사람으로 고종으로부터 3명이나 효자 명정을 받았으니 효자각을 지으라는 명을 받아 지었다고 전한다.

사랑채에는 3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가운데가 매간당, 우측이 익수재, 좌측이 구간재다. ‘익수재(益壽齋)’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오래 건강하게 산다는 뜻이고 ‘구간재(龜澗齋)’란 거북이는 산골짝에 흐르는 작은 도랑물도 조심한다는 뜻으로 매사에 작은 일에 조심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자신의 호로 집의 이름을 부르게 한 것은 자신과 집을 동일시했던 선조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22개 파조로 갈린 연안 김씨

연안 김씨는 고려 말부터 조선조까지 문과 171명, 무과 174명, 왕비 1명, 정승 6명, 대제학 3명, 청백리 3명, 호당 6명 등을 배출한 명문가다.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 계축옥사의 화를 당한 연흥부원군 김제남, 좌의정을 지낸 김안로 등.

직강공파의 근현세의 인물로는 김창영(1898-1964)이 있다. 일제통치에 반대하여 신학문을 거부하고 독학으로 공부하여 선대의 전통을 지켰으며 종가의 가산이 적몰되었던 것을 환수 받아냈다. 김석주(1916-1980)는 일본 유학을 통해 해방정국 정계에 투신해 활동하다가 1961년 5·16 이후 정치를 그만두고 낙향해 청년계몽운동과 마을부흥운동을 했다. 마을에 공적비가 세워져 있으며 그의 동생 김복주씨가 현재 연안김씨 대종회장을 맡고 있다.

♣ 매간당 고택 방문소감

고택의 건물에 걸려있는 현판들과 기둥 곳곳에 적혀있는 주련(柱聯, 기둥마다 시구를 연결하듯 걸었다는 뜻)을 읽어보면 그 곳에 살았던 주인들의 인품과 사상 즉, 집의 역사만큼 스토리가 가득 담겨있다. 조선시대에 지어진 가옥들이다 보니 모두 한자로 되어 고택을 설명하는 안내판이나 자료를 찾아 읽어보면 전문용어들로 이해하기 어렵다.

한옥(韓屋)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건축물이다. 다른 나라의 주택과 비교하면 놀랍도록 과학적이고 심오하지만 우리의 일상과는 너무 멀어져 버렸다.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의 주된 건축은 한옥이었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시멘트로 집과 아파트가 지어져 지금은 문화재로만 아슬아슬하게 남아있다.

계절에 따라 집과 사람 사는 모습이 함께 변화고 자연과 서로 반응하며 소통하는 집이 한옥이다. 삶의 질을 생각한다면 아파트 공화국에서 벗어나 한옥으로 주거공간을 옮겨가는 것이 맞다. 우리 마음이 우리의 문화를 버리지 않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한옥을 일상 안으로 다시 살려내는 날이 온다면 원형이 되어 줄 영광의 고택들은 소중한 보물이다.

위치 : 전라남도 영광군 군남면 동간길2길 83-1

유창수 기자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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