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등날리기

‘기약 없는 고통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에게는 버티고 견디는 것도 한계에 이르기 쉽습니다. 혼자 견디기는 정말 힘듭니다. 누군가 손 내밀어 주는 사람이 꼭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힘든 시간이 오히려 더 큰 축복의 시간으로 바뀝니다. 더 용맹스런 용사가 됩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누군가 먼저 손 내밀어 주길 바라며’에서 발췌한 글귀다.

코로나19 감염병 확산에 따른 경기침체로 힘들어 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 고통을 침착하게 잘 이겨내고 버텨내 시간이 흘러 누군가에게 먼저 손 내밀어 줄 수 있는 인생선배가 되어있을 것이다. 모든 축제들도 코로나19에 묻혀버렸다.

매년 음력 5월 5일을 전후해 열리는 500여 년 전통의 법성포 단오제도 공식행사는 취소하고 6월 24일부터 27일까지 4일 동안 제전행사(산신제, 당산제, 선유놀이, 용왕제)만 축소해 진행할 예정이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지상에서 법성포 단오제를 만나본다.

▲단심줄놀이

단오(端午)는 동아시아의 명절의 하나로, 음력 5월 5일이다. 다른 말로 ‘술의 날’ 또는 순우리말로 ‘수릿날’이라고도 한다. 시기적으로 더운 여름을 맞기 전의 초하(初夏)의 계절이며,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기풍제이기도 하다. 수리 떡을 해먹거나, 여자는 그네뛰기, 남자는 씨름을 한다. 조상의 묘에 성묘를 가기도 하고, 창포 삶은 물에 머리를 감는다. 강릉과 전라남도 영광에서는 단오제를 연다. 강릉에서 열리는 것은 강릉 단오제, 영광 법성면에서 열리는 것은 법성포 단오제이다. 법성포 단오제 마지막날 저녁에는 소원을 빌면서 풍등을 올린다.

단오의 유래는 중국 초나라 회왕(懐王, 329~299) 때 충신 굴원이라는 사람에서 시작된다. 굴원은 문장도 잘 쓰고 충직 고결한 신하였다. 이에 회왕이 특별히 사랑하였는바 간신들은 늘 굴원을 시기하고 질투했다. 회왕이 죽고 양왕이 새 임금이 되자 간신의 무리는 임금께 굴원을 모함하여 끝내 귀양을 보내버렸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안고 살던 굴원은 초나라가 멸망하자 심한 충격을 받고 ‘어부사(漁父詞)’ 등 여러 편의 글을 지은 후 큰 돌덩이를 안은 채 멱라수(覓羅水)에 빠져 죽었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해마다 그날이면 대나무통에 쌀을 넣고 소태나무 잎으로 감아 물속에 던져 굴원의 영혼을 위로하였으며 그의 영혼을 건진다 하여 경쟁적으로 배 건너기를 하기도 했다.

그날이 바로 음력 5월 5일이고 이러한 풍습이 우리나라에 전해져 단오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고대 마한 시절부터 파종이 끝난 5월에 군중이 모여 신에게 제사하고 가무와 음주로 밤낮을 쉬지 않고 놀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단오는 절기상 봄농사를 마치고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가지며 신에게 제사도 지내고 흥겹게 지내며 풍요를 기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법성포 앞바다인 칠산어장은 조기 우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기 생산이 풍부한 곳이었다. 봄철이면 각지의 조기잡이 어선들이 법성포 앞바다로 몰려들어 전국 최대의 조기 파시(波市)가 형성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사회·경제적 조건 때문에 ‘법성포단오제’가 일찍 형성되었을 것이고, 규모 또한 성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에는 법성포 유수의 물산객주들이 ‘백목전계’라는 협동조직을 만들어 단오제 행사 비용을 치렀다고 한다. 또한 세곡을 나르는 조운의 선적이 음력 오월에 있었고, 법성장이 매월 5일과 10일에 큰 규모로 섰기 때문에 법성포단오제 때 몰려든 부보상들이 단오제를 후원하기도 했다.

과거의 법성포단오제에서는 제의를 비롯한 다양한 민속놀이가 펼쳐졌다. 제의는 법성포 지역의 세습무 집단이 맡아 담당하였다. 『법성포견문기(法聖浦見聞記)』와 『법성향지(法聖鄕誌)』를 보면 법성포에서 활동해 온 세습무 집안은 네 집 정도로 거론된다. 칠산어장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무속인이 많았고 무속도 매우 발달해 있었다. 주로 농악과 무당굿 반주를 담당하던 무부(巫夫)들도 법성포단오제에 참여하여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무부들은 풍물패를 구성하여 마을을 돌며 걸립을 하거나 용왕굿의 악사로 참여했다.

법성포단오제는 매년 단오절(음력 5월 5일) 시기에 맞춰 법성포 단오보존회의 주관으로 닷새 동안 개최되고 있다. 제의, 민속놀이, 각종 행사 등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제의로는 산신제(인의제), 당산제, 무속수륙재, 용왕제 등이 진행된다. 민속놀이는 선유놀이, 길놀이(오방돌기), 전국국악경연대회, 연등행진, 그네뛰기대회, 씨름대회, 영광우도농악공연 등이다. 이 밖에도 법성포굴비의 홍보 및 판촉을 위한 행사뿐만 아니라 각종 이벤트가 접목되고 있다.

단오제 때 민속놀이와 국악 공연은 대부분 숲쟁이공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 단오제 때 단오난장이 크게 섰을 때 숲쟁이공원이 바로 단오난장의 중심 무대였다고 한다. 놀이판을 통해 상업의 활성화를 도모한 상인들은 다양한 놀이의 시연이 가능한 이 숲쟁이에서 단오난장을 펼친 것으로 보인다. 단오제 때에는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이 숲쟁이에 모여들어 줄타기·판소리·민요 등의 공연과 그네뛰기·널뛰기·씨름·줄다리기 등 다양한 민속놀이를 펼쳤다.

이곳에서 국악경연대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이 대회는 전주 대사습놀이보다 훨씬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이 대회에서 장원한 사람만이 기예자나 명창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였다. 최근에도 숲쟁이공원에서 전국국악경연대회, 전국그네뛰기대회 등의 경연대회가 개최되고 있다. 또 각설이공연, 마술공연, 마당놀이 등의 공연과 각종 체험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민속놀이경연투호

법성포단오제의 유래

법성포단오제가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그 배경과 시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첫째, 조선시대에 법성포에는 전라도 영광과 그 주변 지역의 세곡을 거둬들여 한성으로 운반하는 기능을 담당하던 조창(漕倉)이 있었다. 이에 중종 9년(1514)에는 법성포 지역을 지키기 위해 법성진성(法聖鎭城)이 축조되고 숲이 조성되었는데, 이곳이 바로 오랜 옛날부터 지금까지 법성포단오제가 열리고 있는 ‘법성진 숲쟁이’이다.

둘째, 법성포는 서해안의 대표적인 항구로 봄철이면 각지의 조기잡이 어선들이 몰려들어 전국 최대 규모의 조기 파시(波市, 어시장)가 열렸다. 절기적으로 단오 즈음에는 조기 파시와 세곡 운반이 거의 끝나서 사람들의 마음이 넉넉해져 축제를 즐기기 좋았다.

이와 같이 조창과 조기 파시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던 법성포에 조선 중기에 법성진 숲쟁이가 조성되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이 마련되면서 법성포단오제가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규모 지역축제로 오랜 전통을 이어오던 법성포단오제는 1907년경 그 맥이 끊기고 말았다. 일본에 의해 대한제국의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면서 전국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했는데, 의병과 일본군이 조창이 있던 법성포에서 자주 충돌했기 때문이다.

법성포단오제는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고 우리나라가 광복되면서 1946년에 부활되었다. 이후 전통을 잘 이어오다가 1974년에 그네뛰기 행사 도중 인명사고가 발생해 다시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나 전통을 이어나가겠다는 법성포 주민들의 적극적인 의지와 노력으로 1986년에 다시 부활되었다. 그 결과 법성포단오제는 2012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23호로 지정되어 지금까지 500여 년에 빛나는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법성포단오제의 가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호남 유일의 전통문화예술축제 법성포단오제는 동해안의 ‘강릉단오제’와 함께 전국 2대 단오제로 평가받으며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현재 호남 지역의 축제 중 100년 이상의 역사적 뿌리가 확인되는 유일한 축제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으며 법성면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지는 민간 주도의 자생형 축제라는 점에서 다른 지역 축제들과 큰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단오제에는 어울림만 있고 나눔의 장이 없는데, 법성포단오제에는 단옷날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서로 나누어 먹는 나눔의 장이 있었다. 이러한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함께 나누고 어울릴 수 있는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또한 법성포단오제는 산신제∙ 용왕제∙ 당산제 등과 같은 우리의 소중한 무형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전승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문화적으로 큰 가치가 있다.

단오제의 무대, ‘법성진 숲쟁이’

법성진 숲쟁이는 전라도 지역에서 가장 번창한 법성포 포구와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1514년(중종 9)에 법성진성(法聖)을 축조할 때 만들어진 인공 숲이다. ‘쟁이’는 '성(城)'이라는 뜻으로 ‘숲쟁이’는 숲으로 된 성을 의미한다. 법성진 숲쟁이는 법성포 마을에서 홍농으로 넘어가는 산허리의 능선을 따라 약 300m에 걸쳐 조성되어 있으며, 보호 면적은 27,397㎡이다. 1988년 12월 전라남도기념물 제118호로 지정되었다가 2007년 2월 명승 제22호로 승격되었다.

숲·성벽·포구가 어우러진 특이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지니고 있는 법성진 숲쟁이는 조선 시대 수군 진성의 모습과 조창(漕倉)과 파시(波市)로 번성했던 법성포의 영광의 역사를 보여 준다. 또한 오랜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법성포단오제를 비롯해 지역의 각종 민속 행사가 열리는 무대로서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뛰어난 명승지이다.

난장트기

난장트기는 법성포단오제의 시작을 알리는 제천행사이다. ‘난장트기’라는 말은 과거 전국 각지의 보부상들이 단오제가 열리는 것을 알리기 위해 상징기로서의 역할을 했던 ‘난장기’를 설치한 후 '난장을 튼다'고 한 데서 유래한다. 법성포단오제의 주관 단체였던 ‘백목전계(白木廛契)’라는 보부상 조직을 상징하는 의미로 긴 대나무에 백목, 짚신, 패랭이, 오색천 등을 걸어둔다.

산신제

산신제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믿는 산신에게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이다. 법성포단오제의 산신제는 ‘인의제’라고도 하는데, 이는 법성포의 인의산에서 제사를 모시기 때문이다. 법성포단오제의 시작을 알리는 난장트기에 이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첫번째 행사로 고유제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당산제

당산제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믿는 당산신에게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이다. 법성포단오제에서는 둘째 날 첫번째 행사로 두 곳에서 진행된다. 할아버지 당산제는 법성면 진내리 옹성마을에서, 할머니 당산제는 법성리 마을 노인정인 인의정 아래 노거수가 우거진 곳에서 지낸다.

용왕제

용왕제는 바다의 신인 용왕신에게 배의 무사고와 풍어를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이다. 법성포단오제의 용왕제는 여기에 축제적 성격도 포함되어 인사굿, 대동굿 등이 영광우도농악의 가락과 함께 펼쳐진다. 또한 법성포단오제의 용왕제는 타 지역과 달리 소머리를 제물로 바치며, 바다에 직접 나가 용왕제를 올리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때 관광객들도 수십 척의 선박에 승선시켜 용왕제를 보고 즐길 수 있도록 한다.

바다 위에 풍류를 띄운 ‘선유놀이’

선유(船遊)놀이는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풍악을 울리며 흥겹게 노는 민속놀이이다. 법성포단오제에서는 용왕제가 마무리될 무렵에 선유놀이가 시작된다. 배에 음식과 술을 잔뜩 싣고 소리꾼과 악사를 태우고 법성포 앞바다를 오르내리며 여흥을 즐긴다.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즐겼던 전통을 살려 뱃사공∙ 소리꾼∙ 악사를 제외한 전원이 부녀자로 구성된다.

‘숲쟁이 국악경연대회’

매년 법성포단오제에서는 영광군과 법성포단오보존회가 주최하는 전통민속예술행사인 ‘숲쟁이 국악경연대회’가 열린다. 전통 음악을 보존∙전승하기 위해 판소리∙기악∙전통무용 부문의 국악계 인재를 발굴∙육성하는 권위 있는 전국 규모의 국악경연대회이다. 경연은 학생부∙신인부∙일반부∙명인부로 나뉘어 진행되며, 대한민국의 대표 명인∙명창들의 축하공연도 이루어진다.

유창수 기자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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