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노벨 문학상을 받은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문학에만 전념한 것이 아니라 유명한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다. 그는 학식이 풍부하고 다방면에 능통한 등산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 말이다. 그 등산가는 세계 최고봉 히말라야의 몇 개 봉우리를 올랐던 경험을 통해 깨달은바 있다며 이렇게 말한다. “산은 인간이 오르기에 딱 알맞도록 만들어졌다. 암벽 등반을 하다보면 다 자란 성인에게 필요한 거리, 딱 그 거리마다 발 디딜 자리가 있고 움켜쥐고 몸을 지탱할만한 것들이 있다.

만약 인간의 몸집이 지금의 두 배였다면 지금의 등산 코스는 너무 쉬워서 산을 오르는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산을 오르는 일이 흥미를 자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 사람의 말을 보면 세상을 보는 눈이 낙관적(樂觀的)이며 세상을 만든 조물주(造物主)에 대한 감사가 충만한 사람으로 보인다. 반면에 대자연에 대한 오만(傲慢)으로 보일 수도 있는 말이다. 인간이 세상을 자기중심적으로 보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낮과 밤이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 휴식을 취해 재충전을 하라는 것이고, 사계절이 있는 것은 다양한 레저를 즐기며 변화에 적응하고 살라는 것이다. 곡식과 가축이 있는 것은 인간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기 위함이요, 들이나 산에 이름 없이 피었다 지는 꽃들은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면서도 조물주는 심술궂게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고통을 인간에게 주었고, 아무데서나 서로 협력하지 못하도록 언어를 각각 다르게 만들었으며, 교만하지 못하도록 가끔 지진과 홍수를 내려 경각심을 일깨우도록 하였다.

그런데 이런 인간중심의 생각 본능은 보통사람들의 심리적 위안이나 불평을 위해 쓰이는 것이 아닌 듯하다. 최고의 지성을 자랑하는 천문학자들도 역시 동일한 논리를 펴고 있다. ‘인류 지향 원리란’ 1974년 천문학자인 브랜든 카터(Brandon Carter)가 최초로 제시했으며, 역시 천문학자인 존 배로(John Barrow)나 폴 데이비스(Paul Davies) 등의 저술을 통해 일반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넓고 광활한 우주에 인간과 같은 지적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확률은 극히 드물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만 보더라도 태양과 지금보다 가까웠다면 자외선 독성 때문에 인간뿐만 아니라 어떤 생명체도 존재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반면에 좀 더 떨어져 있다면 태양 에너지가 충분치 않아 역시 생명체가 살수 없다는 것이다. 태양과 지구사의의 거리는 생명이 살기에 적합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다. 이렇게 딱 맞는 거리를 학자들은 ‘골디록(Goldilok) 원리’라고 말한다. 중력도 역시 생명체가 살아가기에 알맞도록 작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이유로 해서 인류 지향원리를 주장하는 천문학자들은 물리 법칙의 모든 상수(常數)는 인간이라는 생명체를 탄생시키기 위해 교묘하게 맞춰져 있다고 주장한다.

진화론과의 이데올로기 싸움에서 일진일퇴(一進一退)를 반복하고 있는 미국 개신교를 중심으로 등장한 지적 설계론 역시 같은 논리에서 기인한다. 진화론과 창조론의 주장은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하더라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평행선을 달릴 것이다. 그들은 생물체의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은 도저히 우연에 의한 돌연 변이나 자연 선택에 의한 점진적 수정만으로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해답은 결국 생명체 특히 인간이 존재하게 된 것은 인간의 이해 범주를 벋어나는 상위법칙 즉, 신의 의도적 설계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성서에서처럼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과학적으로는 증명할 수가 없다. 성경구절의 글자그대로를 믿을 수 없을지는 몰라도 많은 물리학자들은 넓디넓은 우주에 예외 없이 통용되는 물리 법칙이 우주를 넘어서는 미지의 차원에 의해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는 다소 의지적인 믿음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법칙들이 오로지 인간을 번성시키기 위해 정해졌다고 믿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이는 히말라야 같은 산들이 등반의 즐거움을 위해 창조되었다고 믿는 버트런드 러셀의 지인과 다를 바 없는 오해일 뿐이다. 기후가 변하고 환경이 달라져 가는 이 시대 즉, 내일이 불안정한 현시대에 우리에게는 자연이 우리를 위해 창조되었다고 어깨를 으쓱해 하기 보다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인간이 자연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진 것을 겸손하게 감사해 하는 일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간과 공간 자연과 우주는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스펙터클한 쇼가 아니라 인류를 너그러이 품에 안아준 우리들의 어머니라고 봐야 한다. 자연이 우리에게 봉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연의 목적에 봉사해야 함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야 할 것이다.

이경일 회사원 (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저작권자 © 영광군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