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편집위원장

영광군이 올린 의회의 예산심의가 마무리 단계다. 군의회 의원들의 존재감이 가장 돋보이는 시기다. 국가 예산안을 둘러싼 자치단체의 치열한 로비와 같은 행태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의원의 개인감정에 따라 춤을 추는 행태는 엿보인다. 물론 공개 심의 아닌, 의원들만의 비공개 간담회 등을 통해 사전 조율될 것이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모 의원의 경우 자기가 진행시켰던 사안의 처리가 성에 차지 않아 심의 도중 급하게 쪽지를 돌려 예산 삭감을 요구했다고 한다. 집행부인 공무원들이 급히 나서 없던 일로 하고 그대로 반영키로 했다는 말이 새나왔다. 의원도 사람이니 어찌 감정이 없겠는가. 이해는 한다. 하지만 국회에서 하는 것 같은 ‘쪽지 예산’이 영광군에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영광군이 수년간 시도 했지만 시행하지 못한 조운 시인의 생가 매입 건은 올해도 의회에 상정됐으나 일부 의원의 개인감정으로 또다시 좌초될 위기라고 한다. 월북한 조운 시인의 전력이 문제가 된 것이다. 월북 작가에 대한 해금조치는 지난 88년 이뤄졌다. 30년이 다되는 세월이다. 조운 시인은 사상운동이나 좌우대립의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독립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르고 지역 문화·계몽 활동을 하다 월북했을 뿐이다.

문학의 정지용과 김기림, 미술의 이쾌대 등의 출신지에서는 지난 88년 이래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심지어 공산권 작가의 작품들도 정당한 대가와 가치를 매겨지고 있다. 영광군이 조운 시인에게 불행한 역사의 멍에를 씌워 그의 탁월한 문학을 현대 영광의 발전 ‘콘텐츠’로 활용하기 위한 사업을 하지 못한다면 역사 발전에 역행하는 것이 아니가 하는 아쉬움이 크다. 조운 선생이 이끈 영광의 문학은 학계로부터 재조명 받고 있다. ‘남도문학 1번지’ 영광을 재현하라는 주문도 받고 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영광으로서는 그 상처와 갈등을 치유하고 화해함으로써 새로운 발전의 역사를 써내려갈 필요가 있다.

유족회도 2010년 결성돼 화해의 시대를 열고자 추모탑과 공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역사의 비극을 끌어안고 갈등을 계속할 것인가 화해와 용서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조운 시인은 누구와도 싸우지 않았다. 죽이지도 않았다. 살기 위해 월북했을 뿐이다. 상당수 군민은 물론 전국의 문학 관계자들의 관심이 작지 않다.

조일근 편집위원장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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