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철 살인(寸鐵殺人)은 조그만 쇠붙이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고려시대 외교관 서희는 “거란의 땅은 원래 고구려 땅이었다”는 이 한마디로 오히려 강동 6주를 돌려 받았습니다. 우리 역사상 가장 통쾌한 ‘촌철살인’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습니다.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한 삼성 이건희 회장의 발언도 현대 한국사에 가장 통렬한 ‘촌철살인’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낡은 행정과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이 한마디는 당시 커다란 파문을 불러일으켰지요. 김영삼 정권은 발끈했지만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고 통쾌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26년 후 지금 기업은 환골탈태, 세계 1류로 도약했습니다. 그러나 정치는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지요. 탄핵 당한 전 대통령은 아직 형무소에 있는데 그 후예들이 다시 정권을 잡겠다고 기세를 올리고 있는 실정이니까요.

문재인 정권이 실패해서일까요? 아닙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만큼 민주주의 원칙을 최대한 지켜낸 정권입니다. 문재인 정권은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이 반 정권 행태에도 비난이나 강제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보수 언론은 정권을 배신한 이들을 ‘영웅’으로 키웠습니다. 의도적 기사로 도배하며 허구한 날 정부에 날을 세웠지요. 예전 정권 같으면 강제 경질하고 언론에 대해서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을 것입니다.

민주당 정권은 참았습니다. 왜일까요? 바보여서? 그만큼 정치를 잘못해서? 힘이 없어서? 아닙니다. 민주주의 원칙을 지킨 것입니다. 보수언론이 ‘영웅’으로 키운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은 자진 사퇴,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지요. 탄핵으로 좌우의 균형이 깨진 대한민국의 정치가 되살아난 것입니다. 진보의 독주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기에 국가적으로는 다행입니다.

하지만 나라보다 개인의 입신영달을 위해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은 대통령이 돼선 안 됩니다. 몰상식한 언행을 반복하는 사람은 더욱 안 되지요. 그런데 여론조사 결과는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캠프에는 내로라는 인사들이 즐비하다고 합니다. 제가 아는 후배도 거기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뛰어난 인재임이 분명한데 ‘3류 행정’이 그의 등을 떠밀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민주당은 이재명 전 지사를 20대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습니다. 국민의 힘에서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홍준표 의원이 각축을 벌이고 있습니다. 모두 흠집투성이 입니다. 고 이건희 회장이 정치를 ‘4류’라고 일갈한 세월이 26년째입니다. ‘2류’라던 기업은 1류가 됐음을 실감합니다. ‘3류’ 행정은 2.5류 정도 까지 온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정치는 아직도 ‘4류’를 면치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안타깝습니다. 차기 대선 후보군만 본다면 ‘5류’가 아닐까요?

그래도 전두환을 찬양하며 국민을 개로 보는 사람보다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고쳐쓸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조일근 편집위원장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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