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재 아시아문화학회 부회장(언론인)

촛불민심의 한편에서 개헌론이 움트고 있다. 핵심 관점은 권력구조 개편에 쏠려있다. 취지가 무엇이든, 헌법을 손대는 개헌은 엄중하게 접근해야 할 사안이다. 개헌이 특정 인물이나 일정 정파의 유불리가 내재된 정치 공학적 산물이 돼서는 결코 안 된다는 얘기다.

우선 그런 측면에서 작금의 개헌론은 충분한 숙고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물론 그동안 간간이 거론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갑자기 돌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중심에 있는 최근 게이트를 지켜보지 않았느냐. 이게 바로 제왕적 대통령제가 지닌 폐해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이런 논리로 개헌의 당위성을 앞세우고 있지만, 이는 상황논리가 곧 개헌의 동기가 되는 가벼움이 느껴진다. 이 논점이 객관화되려면 대통령제는 확실하게 부패하기 쉽고 내각책임제나 이원집정부제는 그렇지 않다는 일반론이 주창의 근거로 성립돼야 한다.

개헌론의 출발점이 국민여론이 아닌 정계이기에 우선 먼저 개헌 찬반으로 갈라선 두 진영의 정치적 욕망을 점검해봐야 한다. 개헌이 무용하다고 주장을 펴는 이들은 다가올 대선에서 최소한 상대 후보와 맞장을 뜰 수 있는 후보, 혹은 그런 후보를 지닌 정파다. 대통령의 탄핵이 대법원에서 인용돼 조기 선거를 치를 경우 한번 해 볼만 한 지지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개헌론자들은 지지율이 무기가 될 수 없는 수준이거나 대선이라는 치열한 열기구에 자신을 실을 수 없는 정치인들이다. 오랜 은거에서 돌아온 손학규, 대중 정치인으로서의 이미지가 취약한 김종인, 급격하게 쇄락의 길에 접어든 새누리당의 일부 세력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개헌의 종착역인 내각책임제를 통해 권력을 분점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기득권을 이어가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향후 정치일정도 개헌 주창자들에겐 난제이다. 탄핵이 이뤄지면 최소한 6월 이전에 대선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개헌 논란은 사실상 설자리가 없다. 탄핵이 결렬돼도 마찬가지다. 촛불민심을 두고 볼 때 상상할 수 없는 혼란과 파국이 예고된 까닭이다. 국민 동의를 구해야 하는 개헌 추진이 그 소용돌이 속에서 힘 있게 추진될 리 만무하다. 유력 정계인사의 입을 통해 간헐적으로 던져지는 개헌 언급이 이슈로 떠오르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실적으로 난망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촛불 민심이 과연 개헌을 요구하고 있느냐는 문제다. 개헌론까지 불거진 현재의 탄핵정국은 정당이나 정치인들이 이끌어 낸 것이 아니다. 촛불 봉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국민이 주도해 온 국면이다. 이에 무임승차한 일부 정치인들이 주도하고 있는 개헌론은 그런 의미에서라도 힘이 실릴 수가 없다.

그리고 촛불 민심의 내면엔 박근혜 게이트를 겨냥하는 것만이 아닌, 우리사회의 기득권 구조를 비롯한 총체적 정치혁신을 촉구하는 의도가 담겨있다. 인적 청산이 아닌 권력을 분점 해 대통령제의 독주를 막자는 보수적 접근방식이 촛불민심을 결론짓는 정답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국민주권을 앞세운 혁명에 가까운 어떤 강력한 혁신 에너지를 통해 나라를 바꾸자는 게 촛불의 요구이다.

기득권 정치에 대한 총체적 불신을 기존 정치인들이 다시 주인공으로 나서는 권력분점 구조를 통해 해소하겠다는 발상에 다름없는 개헌론이 촛불민심에 녹아들 수 없다. 그것은 정치가 안정된 평화로운 시기에 해야 할 일이다.

박호재 아시아문화학회 부회장(언론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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