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평양기생은 음식 솜씨가 뛰어나 제주 한량이 던져준 목침으로 안주를 만들었고, 무 한 개로 열두 접시 요리를 차렸다”라고 하지만 이보다 더한 맛과 효능을 자랑했던 고을이 법성포며, 이곳의 특산이 ‘영광굴비’이다.

조선 성종의 셋째 아들 안양군의 증손자인 이응희는 ‘석수어’ 제하의 다음 시에서 “조기를 말려 밥반찬으로 먹으면 으뜸”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석수어

이응희

 

비릿한 바람이 바다 어귀에 불면

배가 누런 조기가 어선에 가득하지

불에 구우면 좋은 반찬이 되고

탕으로 끓여도 맛이 좋아라

그 모습은 비록 크지 않지만

쓰임새는 한두 곳이 아닐세

가장 좋은 건 이것을 말려 먹으면

밥반찬으로 가장 으뜸이라네.

『옥담 시집』

또 이응희는 『옥담 시집』에 ‘굴비’ 소재인 ‘조기’의 효능에 대해, 숙종 때 상주목사를 역임한 홍만선은 『동의보감』을 인용하여 “줄 풀의 독을 치료하려면 ‘조기’를 구워 먹이거나, 달여 즙을 내어 먹이면 자연히 없어진다”하였다.

또, 조선 정조 때 사간원 대사간을 역임한 이의봉은 『고금석림』에 “사람의 기를 돋우어준다고 하여 사람들이 ‘조기’(助氣)라 불렀다”라고 하였다.

또, 『수양총서』의 글을 인용하여 “조기는 서해에서 사는 물고기인데 위의 활동을 도와 식욕을 돋게 하고, 원기회복에 좋으며, 소금에 절인 조기를 말려 만든 굴비는 ‘소화가 되지 않고 위에 남아 있는 음식물의 소화에 좋다’. 고기 머리에 바둑알 만한 돌이 있는데 그것을 갈아서 먹으면 임질을 치료할 수 있으며, 순채와 함께 국을 끓여 먹으면 매우 좋다. 오래 묵은 것일수록 좋다”라고 하였다.

또, 민어과에 속하는 “조기의 머릿속에 있는 돌은 이석(耳石)이라는 것으로 ‘동물의 내이(內耳)에 있는 골편’을 말한다. <중략> 이석은 가루를 내서 중이염 치료제로 쓰이고, 요로 결석에도 효과가 있다”하였다.

또, 이석은 『식료본초』와 『본초강목』에 ‘흥분하여 기절하는 증상을 치료한다’고 나와 있다“라고 하였다.

또, 순조 때 전라감사를 역임한 서유구는 『난호어목지』 (아래 사진)에 ‘조기’를 ‘석수어’라 쓰고 한글로 ‘조기’라 토를 달아 이 ‘조기’를 소금에 절여 포로 만들어 먹었는데 모두 귀한 생선으로 여기고 귀한 사람이나 천한 사람을 막론하고 모두 이를 좋아하며, 바닷고기 가운데 가장 많고, 가장 맛이 있는 고기라고 설명하고 있다.

▲‘조기’는 몸이 평편하고 비늘이 잘고 등은 담흑색이며, 몸 전체는 황백색이다. 우리나라 동해에는 없고 서·남해에서 만 잡히는데 곡우 전후에 떼를 지어 남쪽으로부터 서쪽으로 회유하며, 호남의 칠산에서 시작하여 해서의 연평 해에서 성하고, 관서의 덕도(德島)에서 끝난다. 상인들이 모여들어 이 '조기'를 배로 사방에 실어 나르는데 소금에 절여 포로 만들거나, 소금에 담가 젓을 만들어 전국에 넘쳐흐른다. 귀한 사람이나 천한 사람을 막론하고 모두 이를 좋아하며, 바닷고기 가운데 가장 많고 가장 맛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국역 : 이 두순(수산 경제 연구원) 요약

“법성포구로 조기가 들어올 때는 천둥 번개가 요란했다”

전 회의 「고을별 굴비의 명칭」에서도 이야기하였듯이 조선시대는 맛이 좋은 조기를 황해도 해주에서 진상하였고, 서해지역 군·현에서 잡아 ‘굴비’로 가공하여 진상하였다. 그런데 입하에는 알이 매우 굵어지고 살이 빠지게 되는데 이때쯤이면 기온이 높아져서 ‘굴비’를 만들 수 없게 됐다. 그래서 입하 이전인 곡우 절기에 법성포 초입인 칠메 삼봉에서 알을 실어 통통하게 살찐 ‘곡우사리’로 가공한 ‘영광굴비’를 최상품으로 쳤다.

‘조기’는 제주 남서쪽에서 겨울을 지내고, 2월부터 알을 낳기 위하여 서서히 북상한다. 그리고 3월에 추자도를 지나 4월 초 즈음에 알을 실어 통통하게 살쪄 법성포구 초입인 칠메, 삼봉(三峯) 근처로 모여 으뜸 ‘굴비’ 가공에 가장 좋은 알배기 조기로 잡힌다. 그리고 청명, 곡우 절기(약 2개월) 동안 머물렀다가 6월 초에 ‘연평도’ 근해에 이르고, 7월에 ‘대화도’ 근해에 이르러 여름을 지낸 후 서서히 남하했다.

옛날에 법성 포구로 조기가 들어올 때는 자욱한 안갯속에 동남풍이 불고 천등 번개가 요란했었다. 물러날 때도 천둥 번개가 치고 요란한 동북풍과 함께 무리를 지어 헤엄쳐 나갔다. 그래서 법성포 사람들은 조기를 ‘천어’(天魚)라 하였고, ‘조기’ 철이 되면 살이 연하여 맛이 좋은 ‘곡우사리’를 성주께 먼저 올리는 ‘조구 심리’(助氣新産) 의식을 한 다음 ‘조기’를 먹을 정도로 신성시하였다.

법성포에서는 조기를 ‘조구’라 부르며, 절기에 따라 달리 부른다.

한식 절기의 ‘한식 살이 조기’, 곡우 절기의 ‘곡우사리’와 입하 절기의 ‘입하 사리 조기’ 등인데, 이 ‘조기’들 가운데 아주 큰 ‘조기’만 골라 가공한 ‘굴비’를 ‘곡우사리’ 또는 ‘곡우사리 굴비’라 하며, 비교적 큰 조기로 가공한 ‘굴비’를 ‘장대’라 한다. 그리고 작은 조기로 가공한 ‘굴비’를 ‘엮걸이’라 한다.

‘굴비’의 단위는 열 마리를 짚으로 엮어 ‘한 갓’(束)이라 하였고, 두 갓을 ‘한 두름’이라 하였다. 이에 반해 알배기(굵고 큰 조기)인 ‘곡우사리 굴비’는 다섯 마리를 엮어 ‘한 갓’이라 하고, ‘두 갓’을 ‘한 두름’이라 하였다.

옛사람들은 이 ‘굴비’를 커다란 보리 독(항아리)이나 고추장 항아리에 묻어 두었다가 명태처럼 찢어 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아예 통째로 고추장 독에 묻어 두었다가 찢어서 밥에 얹어 먹었다.

“발막리.... 이 마을은 비단 소금을 생산하는 염 벌이었을 뿐 아니라.... 근동에서 생산되는 많은 양의 소금들이 이곳에서 거래되었다.”

「법성향지」 (1988년) 511쪽

영광굴비는 법성포에 살구 꽃이 활짝 필 즈음에 밀물과 썰물의 교체 시기가 분명한 사리를 전후한 4일간, 제일 많이 잡혔는데 이때 잡은 조기로 가공한 굴비를 최고로 쳤다.

법성포에서 가공한 ‘영광굴비’의 어장은 법성포와 아주 가까운 칠메의 삼봉 해역과 ‘법성진’의 해문(海門)인 돔배와 고양이 섬, 쥐섬 부근이었다. 이곳에서 잡힌 씨알 좋은 알배기 ‘조기’를 이 어장의 코앞인 ‘법성포’로 이송하여 가공하였기 때문에 이송 시간이 짧아 맛을 좌우하는 신선도가 유지될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맛이 좋을 때 잡은 성어(成魚)로 ‘굴비’를 가공하였다.

▲조선시대 법성포의 조기 어장이었던 이 어장은 1960년대까지 그런대로 명맥을 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어로기술의 발달로 남획되어 어족자원이 고갈되었다.

상하기 쉬운 해산물을 오래 보존하기 위해서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소금’이다. ‘굴비’도 소금에 절인 조기를 말린 고기이다.

지금과 달리 조선시대 ‘소금’은 아주 귀한 국가 전매 용품이었다. 제조 방법도 지금과 같은 ‘천일염’이 아닌 ‘화염’(火鹽)이었다.

▲화염 제조 이미지 하의도 소금 전시관 사진

‘화염’은 갯벌 한가운데 통 자락을 설치한 후, 조금 때를 이용하여 갯벌 흙을 말려 염도가 높은 간수를 만들고, 사리 때가 지나면 송진으로 염도를 측정하여, 이를 솥에 옮겨 붓고 끓여서 만들었다. 즉, 갯벌지역에 염전을 조성하여 염도(鹽度)를 높인 간수를 솥에 붓고 끓여서 ‘소금’을 만들었다.

이 귀한 소금을 법성포 사람들은 법성포 동북쪽의 삼당리, 발막리 그리고 이곳과 인접하고 있는 홍농의 월평·진정·하석·상석·영평에서 만들어 발막리로 집하된 소금을 굴비가공에 사용하였다. -『조선지지자료』

천일염을 굴비 염장에 사용한 것은 일제강점기부터였다. 지금의 신안군에서 배로 실어 날랐다. -「동아일보」

영광산 천일염으로 굴비를 가공한 시기는 1950년대 이후부터다. 굴비의 역사에 비하면 영광 천일염의 사용 시기는 아주 일천하다.

▲①우봉, ②하석, ③상석, ④삼이천, ⑤회룡, ⑥발막. 위 지도는 목맥 언이 생기기 전인 1918년에 발간한 1:50,000지도로, 서울 종로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1925년 이전에 이 일대는 지금과 달리 모두 바닷물이 드나드는 갯벌지역이었다.

“굴비는 영광 치가 제일 좋다”

지금의 ‘법성면’에는 일찍이 고려 성종 때 설치한 ‘부용창’이 입암리 ‘고법성’에 있었다. -『고려사』 제79권 식화 조운 조 志卷第三十三

조선시대는 세조 때부터 법성포창을 설치하여 전라도 28개 군·현에서 매년 11월 1일(음력)부터 다음 해 음력 정월까지 진내리에 있는 '법상포창'으로 세곡을 납부토록 했었다.

이 세곡은 음력 3월 15일 안에 ‘제월정’ 아래 ‘굼방모탱이’에서 조운선에 실려 음력 4월 10일 안에 해로를 이용하여 서울로 이송되었다. 『만기요람』

따라서 매년 음력 11월부터 이듬해 음력 4월까지는 세곡 수납과 조운 시기, 그리고 칠산어장의 파시와 맞물려 흰옷을 입은 사람들로 법성포내가 들끓었다.

“세곡실은 조운선이 삼백 척에 이르고 하루 팔린 술만 해도 만여 병에 이른다네.”

-소세양(전라 관찰사)의 칠언율시 ‘법성포 신루’에서

“법성 사람들은 저만 부지런하면 고샅(골목길)에 흘리고 간 곡식만 쓸어보아도 1년 먹을 식량이 된다 할 정도로 세곡을 등에 지거나, 말 잔등에 매어 달거나, 달구지에 싣고 (사람들이) 법성포창에서 장사진을 쳤다”라고 한다 -「법성향지」 (1992년) 134쪽

또, 법성포는 수많은 어·상선들에게 어구와 식구미(식량과 어·상선들의 일상 생필품 등)를 보급하는 육상 파시의 전진기지였다.

이에 따라 ‘법성포’ 이외에서 가공되는 ‘굴비’는 그 고을 인근이 소비철인 반면 영광군의 특산이자 진상품이었던 ‘영광굴비’는 ‘조운’과 ‘파시’로 형성된 유통망을 따라 전국으로 판매되었고, 맛이 뛰어나 ‘영광굴비’하면 ‘맛 좋은 명품 굴비’로 널리 알려질 수 있었다.

또, 진상되는 ‘굴비’가 사대부가에 봉여(封餘) 된 사실도 영광굴비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봉여란 각지의 지방관이 왕실의 진상품과 함께 중앙의 각 관청에게 올린 특산품을 말하는데, 전라·충청 고을에서 진상된 ‘굴비’가 왕실→사대부로 이어지며 소비되면서 각 고을 ‘굴비’ 맛과 품질의 우열을 가릴 수 있었고, 그 결과 ‘영광굴비’가 월등히 비교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영광굴비’를 선호하였고, 유교를 숭상하였던 조선시대 ‘영광굴비’는 당연히 인기 의례 품이 되어 조운과 파시로 형성된 유통망을 따라 일용 상찬(上饌)이나 제수 물 등으로, 반상 구분 없이 대중어(大衆魚)로 명맥을 이었다.

제9화 꽹과리를 친 진내리 한량 최하달

법성진 독진 승격 1년여 전인 1788년 8월(음)에 진내리 창모퉁이 서문거리 사는 한량 최하달이 한양으로 올라가 임금(정조)이 거동하는 길가서 꽹과리를 치면서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하소연(격쟁)하는 일이 벌어졌다.

▲진내리 서문거리 창모탱이다. 재해위험지구가 된 이 근처의 제월정을 포함한 여러필지를 그동안 영광군에서 사들려 재정비될 예정이다.

“자기아버지가 ‘법성진이 독진으로 승격하여 영광에서 떨어져 나와야 한다’고 주민들을 선동하고 다녔다는 죄로 붙잡혀 영광군 형리가 고문하여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고 하소연한 것이다.

전라 감사 서용보가 장계하기를, 격쟁인 영광의 한량 최하달에게 추문하니, ‘작년 8월 7일에 법성진에서 독진을 설치하는 일로 저의 아비 최취광을 불러들였는데, 그 무렵 본관(영광군)에서 저의 아비를 수색하여 붙잡아 8일에 읍내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같은 진량면에 사는 임계량 등이 근거 없는 말을 꾸며 내어 읍내에 전파하기를, 「최취광이 조졸에게 뇌물을 받고서 독진을 설치하려고 도모한다.」하자, 관노 재천이 같은 패거리를 모아 제 아비의 옷을 벗기고 배위에 올라타고 앉아 칼로 찌르려고 하였고, 또 머리채를 잡고 끌고 다니면서 장시(시장)에 회시하였습니다.(시장에서 끌고 다녔습니다)」

관정에 들어가자 관아에서 분부하기를, 「독진을 설치하는 일은 많은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바인데, 너는 무슨 심보로 가서 첨사를 만나보고 이해(利害)를 진달하여 반드시 분속(영광군에서 떨어져 내려)하려 한 것이냐? 하고, 이어서 뇌자(죄인을 문초, 구금하거나 형벌을 집행하는 형리)로 하여금 좌우로 치게 하여 오른쪽 옆구리의 두 번째 뼈가 부러지기까지 하였습니다. 또 목에 칼을 씌우고 엄히 가둔 다음 장보로 강정(降定)하고 (일을 시키고) 신포(일 대신 바치는무명이나 베)를 다그쳐 징수하였는데, 찬 감옥에서 병이 더쳐서 한 가닥 목숨이 거의 끊어질 듯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애타고 궁박한 상황을 관아에 고하여 12월 2일에 겨우 풀려나왔는데, 20일에 그대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일성록」 정조 13년 1월 29일자 기사

진내리 서문거리 한량 최하달의 격쟁에 대해 정조는

“전라관찰사(서용보)는 심문을 받은 사람들의 기록을 살펴 석방여부를 결정하고 앞으로 영광군과 법성진이 이런 일로 조금이라도 서로 침해하는 폐단이 있으면 영광군수와 법성첨사에게 죄를 물을 것이다. 이번 일에 앞장선 아전과 좌수 등은 곤장 백대를 쳐 먼 곳으로 귀양 보내도록 하라.”

「일성록」 정조 13년 1월 29일자 기사

진내리 서문거리 한량 최하달의 격쟁에 대해 정조는

“전라관찰사(서용보)는 심문을 받은 사람들의 기록을 살펴 석방여부를 결정하고 앞으로 영광군과 법성진이 이런 일로 조금이라도 서로 침해하는 폐단이 있으면 영광군수와 법성첨사에게 죄를 물을 것이다. 이번 일에 앞장선 아전과 좌수 등은 곤장 백대를 쳐 먼 곳으로 귀양 보내도록 하라.”

「일성록」 정조 13년 1월 29일자 기사

하였고, 영광군수 김방행과 법성첨사 이명규는 파직되었다.

“영.정.순.헌.철.고종까지, 6대 왕조의 호적문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서문거리 경주 최씨 가(家)”

현재 진내리에 거주하고 있는 최훈창의 집에는 지금부터 250년전인 1765년, 영조 41년부터 1873년, 고종 10년까지 108년동안의 선대의 「호적문서」를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는데, 이 호구단자가 진내리 마을이름의 변천을 규명하는데 소중한 사료가 되었다.

▲지금부터 250년 전인 영조 41년에 영광군수가 수결한 서문거리 밀양최씨문중의 호적단자다. 이 당시는 법성면이 영광군 관할이었기 때문에 영광군수가 발급하였다.

▲지금부터 189년 전인 순조 31년에 법성첨사가 수결한 밀양최씨 문중의 호구단자다. 이 호구단자에 기록된 상리는 정조 때는 치리로 지금의 진내리 서문거리다. 순조 때는 법성이 영광군에서 떨어져 나와 법성첨사가 관할하였기 때문에 앞 사진의 영광군수 대신 법성첨사가 문서에 수결하였다. 또 영조 때 치리였던 마을이름이 상리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는 문서다.

제10화 왜 공(公)이고, 왜 후(候)인가요?

법성진이 독진으로 승격되기 1년 전인 1788년 8월에, 조정에서는 영광군에 관문(*공문)을 보내 법성진을 독진으로 승격하는 것이 좋은지, 편리한지 여부를 조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법성첨사는 각 리 대표자 한 사람씩을 불러 이를 물었는데 모두“’독진을 설치하는 것이 편리하다."고 첨사에게 고하였다. -「일성록」 정조 13년, 1789년 1월 29일(음)자 기사

법성진의 여론은 독진 찬성이고 영광군은 반대 입장이었다. -「일성록」 정조 13년, 1789년 8월 23일(음)자 기사

당시 기록을 보면 법성진에서는 독진 승격을 위해 집집마다 6푼씩을 거둬 이명규 첨사 선정비를 세우고 비각까지 지어 법성첨사를 독려하였고, 선대부터 군관 집안인 최 한량 집안이 이일에 적극적이었다. -「일성록」 정조 13년, 1789ᅟ년 8월 23일(음)자 기사

이렇게 법성고을 사람들의 열의와 경주최씨들의 희생 등이 있고 난 뒤, 법성진은 진량(법성) 사람들의 바램대로 영광군으로부터 진량면(현 법성면)이 떨어져 나와 법성진에 붙여 독자행정권역으로 삼았다.

조선시대 행정조직은 방백이라 불렸던 관찰사아래 태수라 불리던 군수, 원이라 불리던 현감 현령 등이 수령이 되어, 3정(군정·전정·환정 등)을 행사하였다. 군수와 현감, 현령은 품계가 다르지만 수직적인 관계는 아니었다. 또, 군·현 밑에는 면·리를 두고 고을사람가운데 신망을 받는 사람을 면임·이정으로 임명하여 군수와 현감, 현령을 돕도록 했다.

법성진도 이와 같이 독자행정 권역이 되자 진량면(현 법성면)을 관장한 법성첨사는 고을사람들로부터 곡식을 거둬 세곡을 상납하였고(만기요람), 면임·이정·향약소를 두고 구호사업을 하면서 영광군수와 똑 같은 임무를 수행하였다. -「순조실록」

조선시대 독진으로 승격시킨 예는 많다. 그러나 조선시대 행정제도 가운데 이렇게 수군부대에 한 고을을 붙여 독자행정권역을 삼은 예는 법성진이 최초가 아닐까 생각된다. ‘독진’과 관련된 조선행정제도 연구나 학술토론을 아직 접하지는 못했다.

▲1888년(광서14)에 법성첨사가 상도 도정에게 보낸 지시문으로, 전라감영의 지시대로 굶주리는 고을사람들에게 구호양곡을 배급하여 구호토록 하라는 내용이다. 신덕동 신덕원(성시환)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다. 신덕원에는 철종연간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창령성문 고문서를 많이 보존하고 있다.

1888년, 고종 25년 11월 8일 자 위 지시문은 제66대 법성첨사인 민태식 첨사가 덕흥리 신덕동에 사는 성하충 상도 도정에게 보낸 지시문이다. 3개의 도장과 법성첨사의 수결이 있는데 본문이 ‘행절제사’(行節制使)로 시작된다. 이렇게 관직 앞에 행(行)자가 붙으면 품계는 높고 직이 낮다는 뜻이다. 지금의 예로 설명하면 5급 면장자리에 3급이 면장일 경우는 이 지시문에서와 같이 관직 앞에 행(行)자을 썼다. 반대로 낮은 품계로 높은 직을 맡으면 직 앞에 수(守)를 썼다.

2020년 7월에 법성고을을 다스렸던 수령들의 선정비가 법성포역사문화탐방길에 잘 정돈되어 세워졌다.

▲2020년 7월에 옛 법성포단오제 건물 한 켠에 세워 두었던 조선시대 첨사들의 선정비와 박경원 전 내무장관 공적비를 옛 법성포노인당 앞으로 옮겨 정비한 모습이다.

“법성진성의 정문은 남문이 아니고 하동문이다”

조선시대 ‘법성포’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고을 치소를 출입했던 육로가 하동문 어귀(洞口)였기 때문에 고을 수령들의 선정비를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이곳에 모두 세웠다. 이런 연유로 이 길을 ‘비각거리’라 한다.

조선시대 성문은 보편적으로 남문이 정문이다. 서울의 남대문같이...

법성진성도 4개 성문(상동문·하동문·남문·서문)이 있었는데 하동문이 주통로였기 때문에 다른 고을과 달리 법성진성은 하동문이 정문이다.

원래 20여 기의 비가 이 비각거리에 세워져 있었는데 지금은 13기 만 남아있다.

법성포단오제보존회 앞뜰에 석비 11기, ‘비각거리’에 철비 1기와 석비 1기를 보존하고 있다. 이 비들을 2020년 6월에 ‘법성포 역사문화탐방길’을 조성하여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현재 보존되어 있는 비 가운데 연대가 가장 오래된 비는 순조 11년(1811년)에 세운 유성태 제16대 첨사 비며, 짧은 비는 1893년에 세운 제73대 유석규 첨사 비이다.

이 비들 가운데 관찰사 비는 정기세 전라관찰사 비가 유일하며, 나머지 첨사비 가운데 눈길이 가는 비는 철종 사위 박영효의 아버지 박원양 첨사비이다. 또, 두꺼비 전설과 연관되어 있는 홍대항 첨사비, 일본인들이 다릿돌로 쓸려고 농장마을로 옮겨 갔던 유석규 첨사 비 정도이다.

선정비의 비문을 보면 성씨 다음에 어떤 비는 공(公)이라 새겼고, 어떤 비는 후(候)라 새겨져 있다.

공이라 새긴 비는 신분이 문관이고, 후라 새긴 비는 무관이다. 역대 법성첨사가운데 문관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조참의 홍경모가 좌천되어 법성첨사로 임명되었지만 이 어명을 하루만에 거둬들여 부임도 안했다.

법성진의 선정비의 주인공 아홉 사람가운데 정기세 전라관찰사 비만 ‘관찰사 정공기세 영세불망비’[觀察使 鄭公基世永世不忘碑]라고, 성씨 다음에 공(公)을 붙였고, 나머지는 모두 후(侯)을 붙였다. 모두 무관이었기 때문이다.

법성문화진흥원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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