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고정관념은 심리학에서 잘 변하지 않는 행동이나 생각을 결정하는 확고한 의식이나 관념을 말한다. 어떤 집단의 사람들에 대한 단순하고 지나치게 일반화된 생각들도 여기에 해당한다. 즉 이미 내안에 가지고 있는 정보가 잘 변화되지 않는 견해를 말한다. 그래서 가르치는 사람 입장에서는 강조하는 것이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고 역설하는 이유가 자기가 가르치는 것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고정관념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재되어 있는 고정관념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고 그중에 소수는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도 있다.

고정관념의 정도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심리학자들이 진행했다. 두 조로 나누어 동일 인물의 사진을 각각 피 실험자들에게 보여 주었다. A조에게는 “이 사람은 범죄자” 라고 했고, B그룹 실험자에게는 “현직 대학 교수”라는 정보를 제공했다. 그리고 사진속의 인물에 대해 생김새의 특징을 평가하도록 했다.

A조에 편성된 평가자들은 눈이 움푹 들어간 것이 흉악하고 교활하게 보이며 턱이 뾰족한 것이 고집불통인 성격을 반영하고 있다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B조의 대답은 이 사람의 눈을 보면 움푹 들어간 것이 깊은 사상이 있는 것 같이 보이며 턱이 삐죽한 것이 진리를 탐구하는 강건한 정신을 반영한 학자처럼 보인다는 대답이 많았다.

동일 인물을 보고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정보로만 신분에 따라 완전히 다른 평가를 내리는 것, 이것을 고정관념이라고 한다. 일반적인 사람들 눈에 범죄자는 흉악하고 교활하게 느껴지지만 교수는 온화한 느낌을 주고 유식해 보인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갖는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주위 사람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지역적으로 같은 지역에 살면 문화 배경이나 좋아하는 성향들이 유사성이 보이는데 사람들은 이런 유사한 특징을 종합하고 요약하여 보편적 인식으로 받아들여 고정관념으로 축적되어 가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도 진보(進步)와 보수(保守)로 정치가 나뉘는데 내가 성장하면서 내 주위에 잘 배우고 많이 아는 사람들이 그 길을 걸으면 그것이 좋고 옳은 것으로 내재되면서 고정화 된다. 그렇게 내면에 고정되면 상대 쪽에서 아무리 좋은 안건이 나와도 틀렸다고 생각하며 공격한다. 말로는 객관적으로 본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편견이 내재되어 있다. 절대로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미 내안에 자리 잡고 있는 고정된 편견 때문이다. 그래서 역지사지(易地思之) 할 수 없다.

이런 때 고정관념을 타파하려면 상대가 틀렸다가 아니라 나하고 다르구나 하면서 한발 물러서면 타협이 가능해 진다. 진보든 보수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일부 매국노를 제외하고)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사랑하는 방향만 약간 다를 뿐이다. 나하고 길은 조금 다르지만 종착지는 부국강병을 지향하는 애국하는 마음은 같다.

현대 사회에서 고정관념의 부작용이 특히 정치권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우리가 고정관념을 가지고 타인을 평가한다면 집단에 대한 보편적 인식을 바탕으로 평가하기 마련인데 오해가 생기고 터무니없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선거에서 내가 뽑지 않은 사람이 당선되면 그 사람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마음에 들지 않고 불만만 생긴다. 그러면 그 사람이 하는 일에 무관심 해지고 더욱 멀어지게 된다.

다민족 국가를 이루고 사는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편견이 현대에 와서는 조금 완화되기는 했지만 20세기 초반만 해도 ‘흑인’ 하면 부정적인 단어가 많이 떠올랐다. 예를 들어 미신, 게으름, 싸움을 좋아하는 난폭함, 멍청이 등 대부분 부정적인 단어로 점철되었었다.

그러나 2009년 버락 오바마 흑인 대통령 시기에 똑 같은 조사를 했을 때 흑인에 관한 편견은 찬란한 이미지로 백인과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긍정적 언어로 배치되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오바마 효과’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이 세상에 똑같이 생긴 사람이 없고 똑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없다고 한다. 사람마다 자기 철학이 있다. 다방면으로 배우고 다각도로 생각하며 배우다 보면 생각이 유연해지고 ‘집단의 보편성’과 ‘개체 독립성’을 인식할 수 있으므로 고정관념이라는 함정을 피할 수 있다.

물론 고정관념을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만은 없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서 인구조사를 위해서 정확한 통계를 필요로 한다면 가정에 직접 방문을 해야 한다. 그런 때는 성 차별이 아니더라도 여성 조사자가 방문하면 비교적 부드럽고 안심이 되며 상냥한 말투로 모두 성실하게 응답할 것이다. 그러나 건장한 남성이 조사관으로 나오면 왠지 여성들만 사는 곳에서는 공격은 하지 않더라도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 이런 경우도 고정관념이기는 하지만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는 사례다. 책을 많이 접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 훨씬 생각이 유연해지고 고정관념이라는 함정을 쉽게 뛰어 넘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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