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_회사원

나뭇잎 하나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가을이 오는 것은 모두가 다 안다. 전반적인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앞으로 예측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나뭇잎이 떨어지면 가을이 깊어져 한해가 저물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의 작은 기미를 보아도 전반적인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질지 미리 예측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자연(自然)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라는 서양 격언도 있다. 사소한 것 하나로 전체를 파악하지 말고 신중하게 하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당나라 무명시인의 시구(詩句)에 ‘산속의 스님은 세월을 헤아리지 않고도 낙엽하나 떨어지는 것으로 가을이 왔음을 안다.’로 유명하다. 

또 중국 전한시대 유안(劉安)이 쓴 회남자(淮南子)에도 고깃국이 끓고 있는데 그 맛이 궁금하다면 국을 다 먹어봐야 그 맛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를 보면 한해가 장차 저물어 가는 것을 알 수 있고 병속의 물이 언 것을 보면 천하가 곧 추워지리라는 것을 안다.’ 고 했다. 

조선시대 한자 입문서인 천자문(千字文) 다음으로 읽는 명심보감(明心寶鑑)이 있다. 명심보감에도 송(宋)나라 때 주자가 말한 권학(勸學)문에 우성(偶成)이란 제목의 시로서 표현했다.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 미각지당춘초몽(未覺池塘春草夢)/ 계전오엽이추성(階前梧葉已秋聲)’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가 어려우니/ 적은 시간이라도 가볍게 여기지 말라/ 연못가의 봄풀은 꿈에서 아직 깨어나지도 못했는데/ 섬돌 앞 오동잎 떨어지는 것을 보니 이미 가을을 알리는 소리가 나는 구나.)
무수히 돋아난 풀들은 아직도 봄인가하고 자라고 뜰 안의 오동잎은 푸르기만 했는데 벌써 바람에 비벼대는 잎 소리가 말라가면서 다른 소리를 내는 것을 말한다. 시간 즉 세월이 쏜살같이 가는 것을 알 수 있는 시적 표현이다.
 
우리나라 대하소설 태백산맥(太白山脈)의 저자 조정래(趙廷來) 작가도 지리산 피아골의 가을 단풍을 ‘새빨간 단풍들로 계곡의 물까지 붉게 물들었다. 주황빛이나 주홍빛 단풍들 사이에서 핏빛 선명한 그 단풍들은 수탉의 붉은 볏처럼 싱싱하게 돋아 보였다.’ 라고 지리산의 가을 풍경을 묘사했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단풍은 누가 보아도 감탄할 만큼 절경이다. 

우리나라 단풍은 설악산에서부터 시작한다. 단풍하면 풍악산(楓嶽山)으로 명명된 금강산(金剛山)이 있지만 설악산도 금강산 못지않은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설악산을 물들이기 시작해 백두대간을 타고 천천히 남하한다. 오대산과 치악산을 거쳐 속리산과 내장산에 이르면 우리나라 단풍은 절정에 이른다. 이때는 백두대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어디서나 동네 뒷동산에서도 붉은 단풍을 볼 수 있다. 소위 말하는 만산홍엽(滿山紅葉)이다. 

조선 말기 조두순(趙斗淳)도 세월의 무상함을 시구로 표현했다. ‘오동잎 한 잎 날리자 천하가 가을이라/ 가을바람 가을비만 외로이 누각에 가득하네.’ 세월의 빠름 속에 시간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교훈이 담겨 있지만 어리석음도 경계해야 함이 포함되어 있다. 기세등등했던 여름이 후다닥 지나고 가을이 왔으니 금방 겨울이 올 것을 대비해 결실을 생각하고 거두어 저장할 것을 말한다. 

천지현황(天地玄黃)으로 시작하는 천자문 앞부분에도 한래서왕(寒來暑往) 추수동장(秋收冬藏) (추위가 오면 더위가 가고, 가을이 되어 거두고 겨울에는 저장한다)이란 구절이다. 만물은 봄에 나고 여름에 자라며 가을이 되면 여물이 들어 거두고 겨울에는 말라붙으니 잘 저장하라는 선조들의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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