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형질을 가진 개체를 교잡시키는 것을 생물학에서는 이종교배라 부른다. 그 결과물로 만들어진 동물이나 식물은 잡종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순혈주의에 대한 집착이 뿌리 깊었던 탓인지 대다수 한국인들은 잡종이라는 언어를 비천한 것을 일컫는 것으로 사용해왔던 편이다.

박호재/언론인

그러나 이종교배가 이제 21세기 문화 담론의 핵심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한 작금의 시대에 생물학적 상상만으로 아직도 그런 비어를 입에 담는 사람이 있다면 신속하게 스스로 용도 폐기에 나서야 한다. 서로 이질적인 기능과 역할, 그리고 다양한 문화가 서로 섞이는 융합이 사회 발전의 첨단 동력으로 작동되는 시대를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사를 돌이켜봐도 문명은 정작 하이브리드(Hybrid)라 불리는 잡종문화에 대한 포용을 통해 번성을 구가해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

프랑스가 그 전형적인 사례다. ‘프랑스적 기질’ 이라는 지칭이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마르크시즘과 같은 유럽의 모든 전위적인 사조는 독일에서 태동하지만, 파리에 와서야 비로소 꽃을 피우고 혁명으로 실천되었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의 실존철학 또한 프랑스 작가 사르트르의 ‘구토’라는 소설을 통해 그 사상의 진면목이 세인들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났음은 물론이다. 세계인들이 한 결 같이 프랑스 요리를 칭송하지만, 사실 프랑스 고유의 전통요리는 빈곤하다. 대부분의 프랑스 요리는 다른 나라의 식재료와 요리법이 융합된 새로운 창조의 결과물인 셈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파리를 유럽문명의 옥답이라 부른다. 이식된 문화들을 제 자식처럼 잘 길러낸다는 뜻이다.

지역과 세계를 가르는 울타리가 사라진 글로컬리즘의 시대에 고유의 것과 외래의 것이 섞이는 이종교배의 지혜는 이제 지역공동체 발전의 주요 경쟁력으로까지 떠오르고 있는 국면이다. 산업적 측면에서든 문화적 측면에서든, 성공사례로 평가되는 대부분의 지역 브랜드는 이 같은 융합의 지혜가 그 원동력이 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우리 모두는 지금 우리 자신이 가진 것만으로 성공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또한 타인과의 열린 소통을 통한 융합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미덕만 갖춘다면 자신의 열악한 처지 또한 문제될 리 없다는 역설의 지혜를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열린 지역사회로 나아가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지연과 혈연, 학연과 정리로 얽힌 관계들이 유달리 끈끈한 소도시 공동체의 경우 상호간 폐쇄성을 극복하는 일은 더더욱 힘겨운 과제일 수 있다. 자칫 협량한 패권의식으로 번질 수도 있는 이 서로간의 닫힌 마음들은 외지의 유용한 것들을 받아들이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을뿐더러, 공정해야 할 풀뿌리자치의 본질적인 가치를 다반사하게 훼손하기도 한다. 그 결과는 융성이 아닌, 쇄락을 서로 나누어 갖는 불행으로 마무리될 것이 불을 보듯 빤하다.

근친은 열성을 낳고, 이종교배에 의한 하이브리드는 우성이 강화된다. 또한 서로의 거리가 멀수록 융합의 결과는 더욱 달콤하며 유익하다. 서로에게, 그리고 안과 밖으로 열린 소통의 지혜가 융합의 근본정신임은 물론이다.

불교의 전래지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영광은 본디 외래의 문물과 사상이 드나드는 교류의 관문이라는 역사적 연원을 지니고 있다. 이 같은 ‘열린 영광’의 전통이 다시 한 번 지역성장의 동력으로 가열 차게 타올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박호재/언론인, 아시아문화학회 부회장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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