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일은 인류에게 의미심장한 세월이다.

지극한 치성의 시간, 혹은 인간 염원이 비로소 벽을 깨고 나오는 극복의 시간으로 새겨지기도 한다. 성서에서 솔로몬은 1000일 기도를 통해 지혜를 얻는다. 불교에서 108배 1000일 기도는 자신의 마음에 잠들어 있는 불상을 밝히는 최고의 수행이다. 전남 화순에 있는 운주사는 신라 고승인 운주화상이 1000일을 기도하여 흙으로 탑을 쌓았는데, 이 탑들이 천동선녀로 변하여 불상이 되었다는 창건 설화가 전해진다.

이처럼 1000일에 담긴 깊은 의미 때문인지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1000일을 기념비적인 시간으로 곧잘 활용한다. 만난 지 1000일된 커플이 특별한 이벤트를 마련하거나 서로 선물을 주고받기도 한다. 상인들의 욕망이 이를 지나칠 리 없다. 1000일 커플을 위한 다양한 기념상품들도 시중에 출시됐다.

물론 역사 속에서 슬픈 1000일의 기록도 있다. 국왕 헨리 8세를 연인으로 만나 영국의 왕비가 되었지만, 역사의 격랑에 휘말려 1000일 만에 자리에서 내려와 사형을 당한 비극적인 사건도 있다. 이 슬픈 얘기는 ‘1000일의 앤’이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심금을 울렸다.

지난 9일은 세월호 참사 1000일 추모일이었다. 전국에서 수많은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모여 아직도 의문에 쌓여있는 세월호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세월호의 진실은 이렇듯 여전히 인양되지 않고 있지만 탄핵당한 대통령은 할 일을 다 했다며 국민의 분노를 부추기고 있다.

그래서 더욱 참담하고 비통한 1000일이지만 결코 헛된 시간은 아니다. 그 누가 1000만 촛불이 전국을 뒤덮을 것이라고 짐작이라도 했겠는가. 304명 아이들의 영혼을 잊지 않은 양심적인 사람들의 지극한 뜻이 모아진 치성의 결과다. 그리하여 박근혜는 가라앉고 세월호는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1000일에 대한민국이 또 하나의 의미를 새겨 넣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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