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재 아시아문화학회 부회장(언론인)

새해가 밝았다.

그러나 매스미디어에서 토해지는 소식들을 보면 전혀 새로운 해가 시작됐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송구영신은 새 달력을 벽에 거는 의미 정도로 시들해졌다. 지난 해 터진 박근혜 게이트의 화마가 잦아지기는커녕 그 주역들이 턱도 없는 저항을 펼치면서 국민의 촛불 분노가 더욱 타오르고 있는 까닭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다수 국민들이 분노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은 상식을 초월한 역대급 치졸함 때문이다. 도저히 한 나라의 대통령이 저런 일들을 벌였을까 싶은 낮 부끄러운 사실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지금도 하나씩 발가벗겨지고 있는 중이다.

불법 시술을 하는 무면허 의료인이 청와대를 제집처럼 드나들었다는 등…수많은 아이들의 목숨이 명재경각에 처한 그 긴박한 세월호 7시간 동안에 미용사가 두 차례나 청와대에 불려왔다는 등…너무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드러나고 있기에 대통령이 정신장애, 인격장애를 앓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게이트 정국 초기에 필자는 대통령을 향해 독한 비난의 글을 써댔지만 이제 그런 의지조차 한풀 꺾였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그중 하나는 그녀는 정상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그녀를 ‘정말 잘 모르겠다’ 는 자포자기에 이른 까닭이다. 정체성이 모호한 사람, 속내를 헤아리기 어려운 사람,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짐작되지 않는 사람들은 위험한 인물군에 속한다.

박근혜 게이트의 비극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왜 대통령이 되고 싶어 했는지, 대통령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자신이 이끄는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야하는지…그 모든 근본적인 질문이 그녀의 의식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 작금에 밝혀진 사실들을 보면, 최순실의 민원해결사 역할을 했다는 것밖에 달리 그녀의 역할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능, 무취, 무책임…박근혜 대통령 앞에 나붙은 부끄러운 수식어들이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녀에겐 나라의 앞날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는 점이다. 비전, 국가의 미래 등등의 어휘는 그녀에겐 사전 속에만 존재하는 말이었다. 새겨볼 의미가 없는 불필요한 말이었을 것이다.

가치 지향적인 꿈과 목표가 없는 사람들은 일신의 영화나 단편적인 욕구에 탐닉할 수밖에 없다. 최순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고 싶어 했고, 얼굴 예쁜 대통령이 되고 싶어 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걸어 온 바로 그 길이다.

탄핵정국의 한 모퉁이에서 대권을 노리는 잠룡들이 꿈틀거리고 있는 중이다. 저마다 적임자를 자처한다. 얼마 남지 않은 후일에 우리는 그중 한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박근혜 정권의 시작과 끝을 돌이켜보건대, 지금 당장의 지지율은 고려할 바가 아니다. 그녀도 한때는 고공행진을 했다.

그럼 무엇을 가장 중하게 살펴야 할까. 대한민국을 위해 무엇을 하고 싶다는 분명한 비전, 그리고 그것을 진실 되게 실천할 수 있는 능력과 됨됨이를 갖춘 사람인지가 최우선의 판단기준이 돼야 할 것이다. 아무 생각이 없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무능의 극치였던 대통령의 암울한 종말을 지금 이 순간 우리들 모두가 고통스럽게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박호재 아시아문화학회 부회장(언론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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