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편집위원장

당(唐)나라는 관리를 뽑을 때 신언서판을 먼저 봤다. 신(身)은 풍체와 용모, 언(言)은 언변, 서(書)는 필적, 판(判 판단력이다. 잘 생기지 못하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뜻이 깊고 아는 것이 아무리 많아도 조리 있게 말하지 못해도 그렇다. 필체도 매우 중요시 했다. 거기에 이치를 깨달아 아는 판단력도 매우 중요한 평가 기준이었다. 잘 생기고 말 잘하고, 글씨 잘 쓰고 정확한 판단력까지 요구 했다.

이 정도면 관리는 타고 나지 않으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거기에다 덕행과 재능, 일솜씨 까지를 평가 했다니 당나라에서 관리가 되기란 ‘하늘의 별따기’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나라는 신라의 삼국통일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당연히 이 땅에서도 신언서판은 중요한 평가 기준 이었다. 신언서판은 시쳇말로 ‘스펙’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타고 나는 요소가 많다는 점과 노력하지 않으면 갖출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몰랐다. 돈도 실력이라는 사실을. 정유라가 알려줬다. 언변이 좋았다면, ‘돈과 권력도 실력’이라고 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 말은 맞아 들어갔다. 그 어렵다는 이화여대도, 재벌들 상대로 ‘삥’ 뜯는 것도, 장관 임명도, ‘문화융성’도 입맛에 맞게 해냈다. 정유라는 알고 있었다. 최순실이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돈 있는 어머니도 실력이며 스펙이라는 것을. 돈을 실력으로 안 것은 판단력 부족한 정유라의 착각이다.

진정한 실력은 도덕적 판단능력인 선(善)의식이다. 선은 배우지 않아도 분별할 수 있는 좋은 마음(良心), 즉 상식이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는 몰상식의 극치다. 판단력은 저능아 수준이다. 그 저능아들의 놀음에 국정이 결딴났다. 탄핵 재판이 진행 중인 오늘도 국정 파행은 계속되고 있다. 나라 살림(경제)도 위신(외교)도 X판이다.

권한대행 체제는 앞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현상유지가 최선이다. 인사도, 내·외 정책도 모두 유보해야 한다. 저능아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 박근혜가 발탁한 사람들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판단력이 바닥인 박근혜 입맛에 맞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국민은 그들을 믿지 못한다. 벼슬 값 하려 해서는 안 될 이유다. 가만히 있는 것이 나라를 도와주는 일이다. 헌데 기어이 사고가 터졌다.

사드 배치 발표로 중국의 반발이 심각한 상태다. 민초가 모르는 사정이 있겠지만 중국의 보복조치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실감날 정도다. 중국에서 대박 행진을 계속하던 화장품과 연예 관련 사업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여행객 방문도 줄었다. 중국인으로 넘쳐나던 제주도가 한산해졌다. 국민이 국가 경제를 걱정하는 실정이다. 이런 판에 국가안보실장이라는 사람이 미국에 가서 사드 배치를 다짐했다. 중국은 발작적 반응을 보인다. 중국의 반한(反韓)은 이제 혐한(嫌韓)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박관진의 행보는 쫓아가서 매 맞는 결과만 가져왔다.

박관진은 군인이 아니다. 각료다. 각료는 정치적, 정책적 판단과 행동을 해야 한다. 안보는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사드 배치 발표 후 중국의 경제 보복은 심각할 정도다. 숨 막혀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런 판에 박관진 실장이 배치를 다짐, 중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머리에 전쟁만 있고 경제는 없는가. 소나기는 피하고 보는 것이 지혜다. 사실상 대통령 공백기다. 중대한 대내·외 정책은 유보돼야 마땅하다. 시간을 벌 수 있는 명분도 된다.

김관진의 ‘똠방’ 짓거리로 국가경제는 더 어려워졌다. ‘똠방’은 또 있다. 대한체육회 부회장과 진천 선수촌장을 공무원 출신으로 임명했다. 모두 영남 출신이다. 체육과는 관계가 먼 ‘똠방’들이다. 박 정권 냄새가 짙은 인사다. 시류를 모르는가. 부정하는가. 탄핵 결정전에 누릴 것은 모두 누리겠다는 모양새다. 가만히 있어라. 그것이 나라를 도와주는 것이다.

조일근 편집위원장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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