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자원에 수많은 소유자가 생겨나 누구도 자원을 이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상호협력도 안되어 자원이 낭비되거나 대중에게 고통을 안겨주기까지 한다. 과도한 법적 재산권보호가 공익에 역행하는 결과를 불러온다. 이런 현상을 ‘반 공유지의 비극’이라고 하며 대중적인 용어로 ‘그리드락’ 이라고 한다. 

교차로에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차량이 뒤엉켜 신호가 떨어 졌는데도 움직이지 못하는 교통마비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어원은 분명치 않으나 1980년 미국 뉴욕에서 교통파업이 일어났을 때 그로인한 그리드락을 언론에 설명하기 위하여 뉴욕 교통국의 수석 엔지니어인 샘 슈이츠가 대중화 시켜 그리드락 샘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이어서 〈뉴욕타임스매거진〉에서 그리드락을 심층 보도하면서 널리 쓰이며 적용범위가 넓어지고 일상적인 용어가 되었다. 전화와 인터넷은 물론 방송토론에서 출연자들이 말다툼을 벌이다 동시에 말해 말이 뒤섞여 알아들을 수 없게 된 것도 보컬 그리드락(vocal gridlock) 즉, 음성 그리드락 이라고 했다. 

그리드락은 지적(知的)재산권으로 먹고사는 신약개발과 생명공학 분야에서 가장 심하게 충돌한다. 지난 30여 년 동안 DNA 관련 특허만 4만개가 넘는데, 이 많은 특허가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다. 특허에 대한 대가(對價) 지불이 신약 예상 이익을 초과해 신약개발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신약을 본연의 R&D(연구개발)보다 소송에 힘을 쏟다가 개발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인류의 보편적 건강추구권이 그리드락 그물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하는 꼴이다. 

유럽에 선진국이라고 하는 프랑스에서도 요즘 같은 첨단시대에 우리나라 50~60년대 후진국 시절에 심했던 머릿니(蝨)로 골치를 앓고 있다. 매년 9월 새 학기가 되면 학교에서 가정통신문에 아이들의 머리에 이를 소탕해 줄 것을 당부하며 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해 주먹만 한 이 그림을 부착해서 보낸다. 스스로 선진국이라고 자처하는 프랑스에서 왜 이런 어이없는 이 와의 전쟁이 일어났을까?

프랑스에는 100%퇴치 율을 자랑하며 가격도 저렴하고 부작용이 거의 없는 퇴치약이 1981년부터 나와 있었다. 그러나 이 약은 이나 서캐용으로는 허가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약으로는 판매할 수가 없었다. 이 사실을 언론에 폭로한 사람은 마르세이유 의과대학에 디디에 하울(Didier Raoult) 교수다. 이약은 약국에서 이미 판매 중 이었다. 그러나 몇몇 열대병에 대한 치료용으로만 처방이 가능했다. 제약업계에서는 머릿니의 퇴치약이 나오는 것을 원치 않았다. 제약업계의 주머니 채우는데 정부당국에서는 구경만 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법의 과잉보호가 오히려 그리드락을 유발한다. 

정치판에도 그리드락은 여지없이 나타난다. 미국의 대통령제는 대통령과 다른 정당 즉, 야당이 의회다수를 장악한 여소야대의 경우 그리드락이 발생할 문제를 안고 있다. 2013년 오바마 정부시절 의료보험 문제를 둘러싼 여야 간 갈등이 촉발되어 연방정부의 셧다운(shutdown) 즉 ‘부분업무 정지’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데 전형적인 그리드락 이다. 이때 스탠퍼드대학 석좌교수 프렌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비토크라시(vetocracy)’가 미국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비토크라시는 거부를 뜻하는 ‘비토(veto)’와 민주주의를 뜻하는 ‘데모크라시(democracy)’의 합성어로 ‘거부민주주의’라는 말이다. 강력한 반대자가 조금만 있어도 정부 여당이 하고자 하는 입법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이다. 당시 미국 하원은 435명중 야당이 232명을 차지하고 있었다. 

한국정치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지역 그리드락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지역주의가 심하다보니 똑똑하고 일을 잘 할 사람보다는 어느 당적을 가졌는가가 더 중요하다. 언론도 현실정치를 내세우며 지역주의 변수를 앞세워 더욱 심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지역 연고가 일종의 소유권이 되면서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치가 한국적 그리드락에 빠지고 있다. 

그리드락을 탈출할 수 있는 경로가 정치권인데 정치인들이 오히려 그리드락을 조장하며 이용하여 선동하고 있다. 정치는 국민을 위한 일이 우선되어야 올바른 정치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에도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고 되어있다. 그런데 정작 국민에게 주권이 있는가를 위정자들에게 묻고 싶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를 보면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왔는지 몰라도 주권은 모두 국회의원에게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국회를 보면 언제쯤 사회적 진보가 가능할까? 입으로는 민생 운운하면서 그들에게 정작 민생은 있는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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