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의 기미를 보이던 촛불이 설을 지내며 다시 타오를 기세다. 지난 주말 광화문엔 다시 40만 이상의 촛불이 밝혀졌다. 청와대의 특검 압수수색 거부, 억울하다고 외치며 진술을 거부한 최순실, 태극기 친박 집회에 기대어 여전히 막말을 서슴지 않는 보수 정객들의 행태 등 촛불민심을 자극할 소재들이 산처럼 쌓인 까닭이다.

체중 감량에 나선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종의 ‘요요현상’ 이라고 봐야 할까? 마치 ‘샤이 박근혜’로 숨어있던 친박 보수들의 대 반격이 시작된 조짐이기도 하다. 구체제의 종식은 이렇듯 지난한 일이다. 내성이 생긴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일처럼 끊임없이 강도 높은 약물을 주입하지 않으면 다시 고개를 들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고지를 눈앞에 두고 좌절을 맛볼 수밖에 없었던 현대사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국민들의 걱정이 이 때문에 깊어가고 있다. 광복이 되고서도 친일세력에게 다시 권력을 넘겨준 해방 전후사, 4·19의 희생을 치르고도 박정희 군부독재권력의 길을 열어준 아픈 체험, 전두환 신군부 세력에 의해 하루 아침에 겨울 공화국으로 전락한 서울의 봄, 양김의 분열로 직선제 쟁취로 얻어 낸 민주화의 길에 다시 어둠이 내려앉은 등등…아픈 기억들이 숱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랑곳없이 대권이라는 권좌만을 향해 질주하는 정치인들의 맹아적 모습이 또한 국민들의 수심이 되고 있다. 게이트 정국에서 드러난 적폐가 한 치도 해소되지 않은 엄혹한 시국에서 중원을 갖겠다는 욕망으로 대 연정을 얘기하고, 촛불민심의 칼끝을 스스로 무디게 하는 개량의 사고들을 쏟아 놓기도 한다. 지난 시기, 아니 바로 엊그제 촛불광장에서 호언하던 가치와 신념들을 슬그머니 뒤로 감추고 표를 얻기 위해서는 무슨 말이라도 할 기세로 달려들고 있다. 세류의 밑을 빠는 정치의 교활성을 새삼 실감케 한다.

촛불민심의 이치는 그렇다. 우선 박근혜 게이트로 들춰진 대한민국의 모든 적폐를 철저하게 씻어내자는 것이다. ‘이게 나라냐’고 되묻는 그 외침 속에 담긴 절규다. 탄핵정국이 어떤 식으로 종말에 이를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광장의 정치를 영원히 계속할 수는 없기에 썩어가는 집을 허무는 것만으로 체제 개혁이 끝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새로운 정치 지도자를 내세우는 성찰 속에 부수고 새로 짓는 이 과정에 대한 상상력이 극대화돼야 한다는 얘기다. 이미 우리는 많은 격랑의 시간들을 보내며 진실 되게 시대정신을 구현하고, 잘못을 진정으로 책임지는 정치인은 없다는 점을 실감했다. 그러기에 선택의 고뇌는 국민의 몫이고, 그 결과 또한 온전히 국민이 감당할 수밖에 없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공모자임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나고 있음에도 반성하고 국민 앞에 사과할 줄 모르는 박근혜 정권이 바로 그 극명한 표본이다.

이 무도한 정권에 철퇴를 내리고 새로운 정권을 창출해야 하는 것은 대의이지만, 그렇다고 정권의 교체만이 절대 선이 될 수는 없다. 이게 나라냐고 외치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 ‘이게 바로 나라다’를 보여줄 수 있는 정권이 탄생해야 한다. 그 판단 기준은 결코 어렵지 않다. 적폐를 철저하게 씻어낼 적임자, 그리고 ‘진짜 나라’를 보여줄 수 있는 정치 지도자를 선택하면 된다.

물론 지금 쏟아내는 말들만 가지고 평가할 일은 아니다. 위기의 순간에 어떤 단호한 신념을 보여주었는지, 그리고 책임 있는 자리에 있을 때 그 어떤 책임감을 보여주었는지, 지난 프로파일을 꼼꼼히 살피며 결정할 일이다.

박호재 <언론인, 아시아문화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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