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_회사원

우리 조상들의 한자 입문서라고 할 수 있는 《천자문(千字文)》에 한래서왕(寒來暑往) 추수동장(秋收冬臧)이란 구절이 나온다. ‘추위가 오면 더위는 가니, 가을에 거둬들여 겨울에 저장해 난다.’는 뜻이다. 곧 계절의 자연 변화를 한 문장으로 나타낸 말이다. 

이와 비슷하지만 순서가 바뀐 한왕서래(寒往暑來)는 추위가 가면 더위가 온다고 했으니 반대인 것 같지만 같은 말이다. 눈이 녹으면 무엇이 될까? 보통 사람들은 물이 된다고 하는데 감성적인 사람은 눈이 녹으면 봄이 온다고 말한다. 겨울에 쌓인 눈이 녹으면 물론 물도 되지만 봄이 오고 있다는 뜻이다. 자연의 변화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우리 속담에 겨울이 지나지 않고 봄이 오랴! 라는 말이 있다. 추운 겨울을 견뎌 내야만 따뜻한 봄이 온다는 당연하면서도 희망찬 메시지다.  

영국의 낭만 시인 퍼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는 서풍부(西風賦)라는 시에서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라는 명언(名言)으로 유명하다. 추운 겨울이 왔다고 슬퍼하거나 절망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소생(甦生)의 봄도 멀지 않으므로 희망을 품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봄은 더 가까워지고 있으므로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는 뜻도 된다. 아무리 춥고 세상 끝처럼 괴로운 일이 있어도 머지않아 반드시 봄은 오고야 만다는 말이다. 

세상일에는 반드시 일정한 질서(秩序)와 순서가 있으므로 급하게 서두른다고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지금은 어려움에 처해있다고 할지라도 잘 극복하고 견뎌내면 희망찬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다. 추위가 가면 더위가 오고 반대로 더위가 가면 추위가 오는 것은 말 하지 않아도 모두 아는 사실이다.  

동양의 철학서 《주역(周易)》에 나오는 가르침이다. 중국 주(周)나라 때 만들어진 역(易)은 동양의 사서오경(四書五經)에 들어가는 지식인들의 필독서였다. 역(易)은 해 일(日)자에 말 물(勿)자가 합해졌으나 도마뱀을 그린 상형문자(象形文字)라고 한다. 도마뱀은 아주 쉽게 옮겨 다녀 잘 바뀐다는 말과 햇볕도 흐렸다 개였다 바뀌어 햇살이 어디나 비치므로 쉽다는 뜻으로 쉬울 이(易)의 뜻도 가지고 있다. 

주역은 심오(深奧)하고 어려운 학문이다. 만세사표(萬世師表:오래도록 스승의 표상)라고 하는 공자(孔子)님도 위편삼절(韋編三絶)을 했다고 하니 얼마나 어려웠으면 죽간을 묶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닳아 떨어질 때 까지 공부를 했겠는가. 그 어려운 책을 공자가 체계적으로 알아보기 쉽게 해석해 놓은 것이 십익(十翼)이다. 그중 하나로 하나하나의 괘효(卦爻)를 총괄해 해설까지 곁들려 내놓은 책이 계사전(繫辭傳)이다. 

계사전 하편에 나오는 성어를 보면 ‘해가 가면 달이오고 달이 가면 해가 오니 해와 달이 서로 밀어 밝음이 생긴다. 추위가 가면 더위가 오고 더위가 가면 추위가 오니 춥고 더운 것이 서로 밀어 한해를 이룬다.’ 이렇게 계절의 변화는 자연의 법칙으로 오고가는 것을 설명하는 것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여름의 극은 하지(夏至)이고 겨울의 최고봉은 동지(冬至)다. 동지가 12월 21일 또는22일인데 동지를 기점으로 낮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한다. 즉 겨울이 지나 봄이 온다는 뜻이기도 한다. 가장 음기가 찼을 때 이미 양의 기운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극에 달했을 때 희망의 씨앗이 움트기 시작 한다는 말이다. 자연의 법칙도 새옹지마(塞翁之馬)의 교훈이 담겨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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