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정보를 이미 알고 있는데 누구에게 설명을 요구 받았을 때 이를 연상 시키면서도 언어로 상대에게 정확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현상을 혀끝에서 맴돈다고 하여 ‘설단 현상’이라고 한다. 이런 현상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처음으로 기술한 사람이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가 언급했으며 로저스 브라운(Rogers Brown)과 데이비드 맥닐(David McNeill)에 의해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그들은 ‘기억을 실제로 해내는 것’과 ‘자신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서로 다른 별개의 현상이라고 말했다.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겪어봤을 현상이다. 스쳐지나가는 멜로디를 듣고도 ‘저 노래 내가 아는 노래인데’라고 하면서도 무슨 곡인지 제목이 생각이 안단다. 어젯밤에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았는데 그 주인공 이름이 얼굴은 떠오르는데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첫 글자는 생각이 나지 않는데 몇 글자인지 글자 수는 알고 있다. 머릿속에 기억이 혀끝까지는 나왔는데 밖으로 내 뱉지를 못하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오죽하면 혀 끝 에서 빙빙 돈다고 했을까.
이런 설단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정보가 머릿속에 저장될 때 제대로 정확하게 저장되지 않았거나 저장은 확실하게 되었는데 어떤 이유로 그 정보를 인출하기 어려울 때 이런 현상이 발생하며 인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정보인출을 방해하는 긴장이거나 억압상태이거나, 또는, 정보가 기억으로 저장되는 단계에서 정확한 정보가 저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보처리 이론적으로 이런 현상들은 본다면 어떤 정보가 기억으로 저장될 때 방해를 받는다거나 저장과정에서 정확한 정보가 장기기억에 저장되지 않는 바람에 장기기억에 있는 정보를 단기기억으로 인출할 때 문제가 발생하는 것으로 본다. 일반적으로 기억저장과 인출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 이므로 설단 현상은 연령이나 시간대와 상관없이 아무 때나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으며 특히 긴장 상태에 처해 있으면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다. 시험을 볼 때나 면접 등 미래가 걸린 극도의 긴장감이 감돌 때 자기가 준비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기는 하는데 설명을 완벽하게 못한 경우를 경험했을 것이다. 

심리학의 대가로 알려진 유태인 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비슷하기는 하지만 조금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적 갈등과 관련된 억압 때문에 기억이 의식위로 떠오르지 못하고 혀끝 에서만 맴돈다고 말한다. 

현대 심리학자들은 이렇게 혀끝에서 빙빙 도는 느낌은 이런저런 주변 증거들로부터 기억 내용을 꿰맞추고 있는 과정에 대한 느낌이라고 말한다. 그 배우이름이 생각이 안 나면 자연히 그가 출연한 영화를 생각하게 되고 그 주변 자료를 모아서 어떻게든 해답에 도달하려고 노력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힌트가 가해지면 원래 의도했던 훨씬 많은 내용이 생각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들이 옳든 간에 이러한 현상들은 정상적 기억에 대해 많은 것들을 시사한다. 흔히 기억을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비교하곤 하지만 인간의 기억은 컴퓨터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컴퓨터의 기억은 기계적 기억이므로 덮어씌우기 전에는 원본 그대로를 가지고 있으며 필요할 때는 원본 그대로 끄집어내 쓸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기억은 오히려 순간적으로 재창조될 수는 있지만 원본 그대로 기억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설단 현상을 줄이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설단 현상은 아예 기억이 나지 않는 건망증(健忘症)과는 본질에서 다르기 때문에 불완전하지만 기억이 나기는 한다. 설단현상을 겪는 사람은 해당 정보의 일부나 또는 그 정보와 연관성을 가진 새로운 정보를 접하면 인출하려는 정보를 확실하게 인출 할 수 있다고 한다. 

혀끝에서 빙빙 돌 때 답답한 느낌은 원본을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떠오르지 않아 애가 타는 느낌이 아니라 머릿속에서는 많은 기억들이 재창조되고 있으며 그중 어느 것도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 듯 무엇인가 모자란 느낌이 든다. 이럴 때는 필요한 정보와 별로 상관없는 말인데도 갑자기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인간에게는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돌에 새겨진 기억처럼 고정 불변의 기억들이 아니다. 머릿속에서 또는 혀끝에서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파괴되고 수정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창의적인 지식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인간들의 기억들은 지식이 되며 지혜가 되기도 하지만 기억의 노예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지식이 축적되어 숙성되면 창의력이 생기고 더불어 지혜가 형성되어 좋은 언어를 구사하며 리더의 자질을 갖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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