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_칼럼니스트/자기계발서작가

무슨 일을 하다가 크게 실패했거나 의도대로 되지 않아 어려운 처지에 놓인 상황일 때 흔히 낭패(狼狽)를 보았다고 한다. 낭(狼)과 패(狽)는 모두 전설상의 동물인데 낭은 태어나면서부터 뒷다리가 아주 짧고 성질을 포악한데 지략(智略)이 없는 우둔(愚鈍)한 짐승이다. 반대로 패는 앞다리가 짧고 성격이 유순(柔順)하면서 지략이 뛰어난 짐승이었다. 그러므로 낭과 패는 함께 다녀야만 제 역할을 할 수 있으며 만약 낭과 패가 서로 자기 고집만 부리면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사람이 살다보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관에 부닥칠 때가 있다.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의 환대를 받았던 사람이 어느 날 권력이 없어져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던 사람들이 한사람도 찾지 않아 삶이 허전하고 싫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낭과 패가 각각 따로 놀아 낭패스러움이 견딜 수 없을 정도(不堪)가 된 것이다. 

중국에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出師表)와 더불어 서정문(抒情文)을 대표하는 이밀(李密)의 진정표(陳情表)에 나오는 말이다. 이밀은 서진(西晉)의 학자로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 슬하에서 자라난 촉한의 관리였다. 촉한(蜀漢)이 서진 무제(武帝) 사마염(司馬炎)에게 멸망하자 진 무제는 그를 태자세마로 임명하려고 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렇지만 사마염의 요청은 끊이지 않았고 이밀은 더 이상 거절하는 것이 미안한 생각이 들자 자신의 처지를 솔직하게 밝히며 올린 문서가 유명한 ‘진정표’다. 

진정표의 일부를 보면 “저는 불행하게도 일찍이 부모를 잃어 생후 여섯 달된 간난아이 때 자애로운 아버님과 사별하고 나이 네 살 때 수절하려는 어머님의 뜻을 외삼촌이 꺾어 개가를 시켰습니다. 조모 유씨께서 저를 불쌍히 여겨 손수 길러 주셨습니다. 저는 형제도 없고 큰아버지 작은 아버지도 없어 의지할 곳이 없으므로 매우 쓸쓸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할머니가 계시지 않았다면 오늘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조모 유씨께서 연로하시니 제가 없으면 누가 할머니를 돌봐드리겠습니까. 그렇지만 제가 조서를 받들어 달려가고 싶지만 조모 유씨의 병환이 날로 위독하고 구차히 개인의 사정을 따르고자 하여 하소연해도 들어주지 않으니 제가 벼슬길에 나가야 할지 물러나야 할지 오늘 저의 처지는 참으로 낭패스럽습니다.”

이밀의 간곡한 요청은 결국 무제에게 받아 들여졌다. 이밀이 벼슬길에 나오지 않더라도 할머니를 잘 봉양하도록 노비와 식량을 하사했다. 이밀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입장을 글로 무제를 설득시켜 어려움을 뚫었다.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제갈량의 출사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충신(忠臣)이 아니고, 이밀의 진정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효자(孝子)가 아니라고 했다. 90이 넘은 조모를 위하는 이밀의 지극한 효심이 구절구절 스며있는 명문장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길을 잘못 판단해 낭패를 당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고집 부리지 말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요목조목 잘 점검해 주위의 협조를 구하거나 방향을 틀수 있어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이밀을 문장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글로서 임금을 설득한 것이다. 

어떠한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해결방법은 있는 것이다. 서양 철학에서도 어려운 문제에 부닥치면 해결되지 못하는 것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이나 관점에서 새롭게 탐구하는 출발점이 된다고 했다. 어려움에 봉착하면 그만큼 발전될 기회가 된다고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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