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_칼럼니스트/자기계발서작가

우울증은 양극성 장애와 함께 가장 대표적인 감정 질환 또는 기분장애이다. 우울증에 시달려본 사람만이 우울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약 6%가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가장 흔한 정신질환 중에 하나다. 세상을 우울한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지금까지 내가 무엇을 바라고 살아왔던가 싶어 모든 것들이 무의미해지고 삶에 대한 의미나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목표가 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빠져나가 무기력한 삶을 살아간다. 

우울증이 많은 현대 사회에서 연구하는 학자들은 어떤 동물로 실험을 해서 신약을 개발해야 하는데 무슨 동물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 개발을 할까. 미국의 위스콘신 대학교에 교수를 지낸 심리학자 헬리 할로는 사람과 가장 흡사한 원숭이를 이용해서 인간 심리를 연구한다는 참신한 아이디어로 현실적으로 진행한 학자다. 처음에 엄마원숭이와 새끼 원숭이의 애착 관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아기 원숭이는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는 털실을 감아놓은 인형에게서라도 매달려 엄마의 포근한 품을 느끼고 싶어 하는 행동을 보였다. 이런 품마저도 없으면 우리 한구석에서 다른 원숭이들과 온기를 나누려고 했다. 

이런 새끼 원숭이를 보고 엄마의 온정이 영아의 신체적 심리적 발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 당시에는 엄마가 아이를 직접 키우는 것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가정의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인식이 팽배했으며 아이를 유약하게 만든다거나 버릇없게 만든다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할로의 주장과 이어진 정신의학자들의 의식개혁 노력을 통해 어린 시절의 부모 사랑이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됐다. 

1946년 할로는 본이 아니게 이혼을 경험하게 된다. 얼마 후 재혼을 하게 되는데 아내는 결혼 후 오랜 기간 동안 암과 투병하다가 할로가 65세 되던 때에 세상을 떠난다. 두 번이나 아내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한 할로는 스스로 혼자서 우울증에 시달린다. 자신의 애착 욕구와 그것이 충족되지 못했는지 분노 때문이었는지 중년을 넘긴 할로는 고립과 단절이 원숭이들에 미치는 어두운 연결에 대해 연구하기에 이른다. 두 번째 부인과 사별한 후 할로는 ‘절망의 구덩이’라는 심리적 고문 상자를 제작한다. 

이 실험 상자는 스테인리스로 제작된 직육면체 상자인데 윗면만 트이고 사방이 막혀있었다. 특이한 점은 피라미드모양을 거꾸로 세워놓은  사면체인데 위는 넓고 아래는 좁은 형태다. 어린 원숭이들을 상자 안에 넣으면 빛이 들어오는 위쪽으로 뛰어 오르려고 발버둥을 친다. 미끄러운 경사면에 미끄러져 아래로 곤두박질을 치면서도 온갖 힘을 써가며 위로 뛰어오르려고 안간힘을 쓴다. 발가락에 온힘을 다해 버티려고 해도 주르르 미끄러져 결과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절망의 구덩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할로를 비롯한 연구팀들은 미끄러져 떨어지는 이 원숭이를 가두었을 때부터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 원숭이의 반응이 인간의 우울증과 유사한 정도를 파악하는 것이 실험의 목적이기도 했지만 얼마나 긴 시간을 발버둥 치는가도 관찰 대상이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원숭이들은 뛰어 오르기를 포기하고 바닥에 끼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 30일이 경과되자 원숭이들은 정신이 완전히 붕괴됐고 몇몇 원숭이는 먹는 것도 거부하고 굶어죽었다. 이 구덩이에 들어간 원숭이들은 빠지기 전 편안하게 생활했던 것도 모두 다 잊어버리고 똑같이 행동했다. 

조직으로부터 고립된 외로움 속에서 그리고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때 절대적 좌절감 속에서 어떻게 개인의 심리가 무너지는가를 살펴본 할로는 원숭이의 모습에 자신을 비춰보았는지도 모른다. 우울증에 빠진 스스로의 모습을 연구를 통해 다잡아 세워보려고 했는지 아니면 절망의 분노를 원숭이에게 학대하며 폭력으로 해소하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실험을 통해 원숭이를 우울증으로 몰아넣고 인간도 유사하다는 것을 입증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현재도 신약개발을 위해 제약회사에서는 우리에 갇힌 수많은 쥐들과 원숭이들이 있다. 항우울제의 효과를 연구하기 위해 항우울제를 먹인 쥐와 일반 쥐를 수조에 빠뜨려 두 쥐가 과연 얼마니 오래 살기위해 발버둥 치는지 시간을 체크한다. 항우울제를 먹인 쥐가 조금이라도 오래 생존하면 우울제의 약효가 있다고 판단한다. 

절망의 구덩이에 갇힌 원숭이나 수조에 빠진 쥐나 원칙은 같은데 아픔이나 고통이 우울증을 유발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생명체가 있는 동물은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면 빠져나오려고 온갖 힘을 쓴다. 죽을힘을 다해 노력 했는데도 상황을 변화 시킬 수 없을 때 포기하며 그 순간 우울증이라는 것이 자리 잡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울증 자체 역시 빠져 나올 수 없는 함정(陷穽)이며 절망의 구덩이로 느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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