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_칼럼니스트/자기계발서작가

어떤 남자가 무슨 이유에선지 갑자기 애인으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았다. 차인 그 남자는 너무나 당황스러워서 먹먹한 가슴을 안고 휘청거리며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적적한 자취방에 홀로 누워서 생각하니 얼울하고 분하고 서럽고 또 그동안 만나며 쌓아왔던 추억이 떠올라 과거의 실수를 되짚어보며 그녀가 자기에게 했던 행동들을 하나하나 회상해 보았다. 욕도 하며 주먹으로 벽을 치기도하고 모든 사람들이 자기만 볼 것 같아 그냥 집에만 처 박혀 있었다. 

어느 날 정신이 들어 벽을 보니 웬 파리 한 마리가 붙어 있었다. 이 파리는 이 청년을 자세히 관찰하는 것 같이 보인다. 나에 대해 모든 것을 파리가 아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파리는 그냥 파리일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정신을 차리고 파리를 보는 순간 파리는 자기일이 아니라고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보고 있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파리는 나와 같은 실연을 당한 사람들을 수도 없이 봐 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청년의 자취방에서 청년을 바라보는 파리의 시선과 내가 파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서로 제 삼자의 눈으로 보고 있음을 알았다. 청년의 시선은 지나간 한순간 한순간을 격앙된 감정을 되살리고 있는데 아무런 이해타산이 없는 파리는 객관적인 제 삼자의 시각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버클리 대학의 심리학자 오즈렘 에이덕(Ozlem Ayduk)과 미시간 대학의 이선 크로스(Ethan Kross)는 ‘벽에 붙은 파리 효과’는 감정적으로 초연한 관찰자 즉 제3자의 시각으로 청년을 바라고 있다고 말한다.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하거나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거나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겪는 일종의 정신질환이라고 할 수 있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천재지변이나 전쟁, 예기치 못한 끔찍한 사고나 강도, 여성들이 강간 피해를 입고 나서 너무나 심한 충격을 받으면 헤어 나오기가 힘들다. 그러나 재해 등은 천재지변이므로 피할 수 없는 일들이라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벗어 날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은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기 쉬우므로 과거의 내 모습에 사로잡혀 현실적으로 자기다운 삶을 살지 못한다.

삶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심리적 외상과 상흔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관찰 대상으로 삼고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공감하며 스스로 위로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이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자신의 처지를 글로 쓰거나 객관화 하는 훈련을 의식적으로 해나간다면 상처를 극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치료 방법에는 약물 요법도 있지만 심리적 치료법을 학자들은 많이 권장하는 추세다. 심리 치료법으로는 먼저 장기간에 걸친 심리적 지지면담으로 외상과 그 외상후의 적응 과정 전반에 대해 치료자와 함께 깊이 있게 논의하고 대응책을 찾아 실행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로는 심리적 경험 보고라는 기법인데, 주로 사고 직후에 상담자에게 자신이 직접 겪은 사고에 대해 당시 심리상태를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방법으로 이 방법은 일회성이 대부분이라 예산이나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이 경험 보고기법은 사람은 부정적 경험을 되짚어 봄으로써 감정적 충격을 유연하게 하고 스스로의 잘못도 발견하며 미래에 도움이 될 만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강하게 한다.”는 철학자 니체의 말처럼 나에게만 있을 것 같은 재앙과 불행의 경험 속에서 오히려 나를 단련해줄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에이덕과 크로스가 궁금하게 생각한 것이 있다. 과거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바다. 그런데 충격에서 벋어나지 못하고 과거의 집착에 잡혀 있는 사람들은 무엇 때문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실패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다고 봤다. 하나는 1인칭 시점에서 당시의 감정을 그대로 살려서 바라보고, 또 하나는 3인칭 시점 즉 아무 상관없는 ‘벽에 붙은 파리’의 시점에서 바라보며 그 경험을 하고 있던 나를 초연(超然)히 관찰해보라는 것이다. 

두 학자는 실험에 참가한 피험자들에게 위 두 가지 시각에서 자신의 과거 실패를 재 경험하게 한 후 이들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를 실험을 통해 조사를 해봤다. 1인칭 시점에서 보는 재 경험한 피험자들은 혈압과 심박 수가 높아지며 그때와 동일한 불쾌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반면에 3인칭 시점에서 스스로를 바라본 피험자들은 어떤 생리적 변화는 보이지 않았고 과거 경험으로부터 좀 더 긍정적 메시지를 끌어 낼 수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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