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태어났다.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때이니 부모님 애간장을 어지간히 태웠을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4·19 혁명과 5·16 군사 정변을 겪었다. ‘반공을 國是(국시)의 제1義(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 체제를 재정비 강화한다’는 등 대여섯 가지의 ‘혁명 공약’을 외워야 했다. 화폐개혁으로 돈 바꾸러 은행 가시며 당황하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선하다. 미국이 지원한 분유와 옥수수죽도 먹어봤다. 가끔이지만 ‘화려한’ 옷을 입은 고아원 아이들이 부럽기도 했다.

‘기아’의 전신인 아시아 자동차 기공식에 박정희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이 온다고 광주 시내 중·고 학생들이 동원됐다. 매년 가뭄과 홍수가 반복됐다. 가뭄으로 고통받는다는 이유로 ‘납부금’을 반납받아 용돈으로 쓰기도 했다. 고교생 형·누나들의 반정부 시위도 지켜봤다. ‘군사정권 반대’와 ‘민주주의’를 외치며 시내를 뛰어다니던 씩씩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박정희 군사정권에 대한 반대 의식이 자연스럽게 커졌다. 

고3 때 갑작스럽게 대입 예비고사가 도입됐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데모’한다고 최루탄에 시달렸다. 어느 날 등굣길을 탱크와 무장 군인들이 막아섰다. 소위 ‘10월 유신’이다. 박정희 정권의 장기 집권 야욕은 그렇게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짓밟았다. 쿠데타 포고문에 반공이 ‘국시의 제1의’로 등장한 것은 남로당 전력이 있는 박정희 소장이 자신의 이념 성향에 대한 의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 유력하다. ‘반공’은 또한 장기 집권의 ‘핑계’이기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지역과 사상에 따라 평가가 극명하게 다르다. 긍정적 평가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를 산업화로 ‘부자 나라’로 가는 초석을 다졌다는 것이다. 부정적 평가는 이 땅의 민주주의 발전을 막고 동서 간의 갈등을 고착화한 원흉이라는 점이다. 그는 당시 대한민국의 유일한 자본이던 농업을 중시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호남의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 하지만 당선 후 그는 농업을 ‘산업화’의 도구로 사용했을 뿐이다. 

그리고 박정희의 집권 16년은 ‘호남 푸대접’을 공식화, 호남을 대한민국의 비주류로 전락시켰다. 농업 자본으로 산업화의 밑거름 역할을 한 호남은 그렇게 이 땅의 ‘비주류’로 전락하는 역사를 썼다. 박정희 정권에 속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군사정권은 전두환과 노태우로 이어졌다. 김대중과 함께 군사정권에 항거했던 김영삼은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으로 만들어진 민주자유당 후보가 됐다. 

단식까지 하며 군사정권에 맞섰던 ‘민주 투사’ 김영삼은 그렇게 군사정권과 손을 잡았다. 민자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 김대중과의 ‘라이벌전’을 마감했다. 수십 년을 ‘민주주의 투사’로 살아 온 김영삼이 하루아침에 군사정권의 ‘수괴’로 변신할지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김영삼이 군사독재 정권을 계승한 역사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의 가장 큰 ‘사건’이자 치욕적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탄생한 김영삼 정권은 ‘금융 실명제’와 ‘세계화’를 내세웠다. 김영삼의 성공 신화는   거기 까지다. 국가 경제 부도를 선언하는 ‘IMF 사태‘를 야기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를 받아야 하는 치욕적 역사를 썼다. 김영삼 정권을 이어받은 김대중 정권은 부도난 국가 경제를 ’금 모으기‘ 등으로 3년 8개월 만에 ‘IMF 사태‘를 해결하고 ’월드 컵‘ 축구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뤘다. 

김대중 정권은 대한민국을 ’전혀 다른‘나라로 바꿨다. 햇볕정책으로 국민들에게 통일의 꿈을 선사했다. ’월드 컵‘ 축구를 성공적으로 치르며 대한민국의 자존감을 높였다. 

그러나 노무현의 뒤를 이은 이명박 정권은 활짝 열린 남북의 창을 다시 닫아버렸다. 국가 경제보다 개인 경제를 우선했다. 뒤를 이은 박근혜 대통령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윤석열 정권은? 야당인 민주당을 그림자 취급하고 있다. 정치가 아니다. 통치다. 민주주의의 실종이다. ’나 홀로 정치‘로 인한 대한민국의 후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말씀 하신 고 리영희 선생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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