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_칼럼니스트/자기계발서작가

자기가 선호하는 특정 정치집단이나 이념에 치우쳐 생각이 다른 사람이나 집단을 증오하면서 욕설이나 악플로 공격하는 광적인 사람들을 미국의 사회운동가이면서 심리학 작가인 에릭 호퍼(Eric Hoffer)는 ‘맹신자(盲信者)들’ 이라고 불렀다.  호퍼는 《맹신자들》 이라는 책에서 “자기혐오에 사로잡힌 그들은 자신을 거부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조직과 완전히 하나가 된다. 특히 종교나 정당 같은 신성한 조직의 품안에 있을 때 비로소 열정과 힘을 과시하며 경험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은 조직의 대의를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내 놓으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한다.”고 했다. 

호퍼는 많은 미국 지식인들이 공산주의에 기울었다가 스탈린에게 혐오를 느끼고 전향하던 시절 노동자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지식을 쌓아 사회비평가로 활약한 작가다. 1951년 맹신자들을 출간해 기독교에서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에 이르기까지 대중적 신념의 문제를 날카롭게 해부했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맹신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면 현실을 외면하고 혐오하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군중이 대중운동에 매혹되고 빠지는 것은 그것이 제공하는 약속과 교리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무력한 존재감과 두려운 공허함을 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므로 대중운동에 잘 휩쓸리는 사람들은 아주 가난한 사람들의 집단이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웬만큼 가지고 있지만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에서 오기 때문에 욕구 불만이 더 크다고 말한다. 그중 일부는 소속감과 동지애를 구하기 위해 또는 단순한 삶을 벋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도 섞여있다. 그래서 그들은 현실세계의 집단이나 사이버 세계의 집단이든 간에 열정적 증오의 발산은 자신이 몸담은 집단에서 ‘인정욕구’를 충족시키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따라서 “이것이다.” 보다는 “이것이 아니다.”가 늘 강력한 동기를 유발한다고 보고 있다. 즉 긍정보다는 부정이 강해 힘이 많이 작용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열정적 증오는 부정의 힘이 극대화되기 때문에 선거 때마다 소위 네거티브 공세를 취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은 대중운동이 시작되고 전파되려면 신에 대한 믿음보다는 악마의 믿음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본다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대중운동의 힘은 대개 악마가 얼마나 선명하며 얼마나 만져질 듯 생생한가에 비례한다. 공동의 증오는 아무리 이질적인 구성원들이라도 하나로 결합시킨다. 증오는 우리의 부적합함, 쓸모없음, 죄의식, 그 밖의 결합을 자각하지 못하게 억누르는 필사적인 노력의 표출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쁘기만 한 적보다는 장점이 많은 적을 미워하는 편이 훨씬 쉽다. 오히려 경멸스러운 적을 증오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이념이나 노선이 중요한 것처럼 생각하지만 호퍼가 중요시하는 열정적 증오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념이나 노선은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어떤 사람이 무슨 대의를 위해 헌신하거나 희생하는 것은 자신이 주장하는 대의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열정적인 집착에서 안도감(安堵感)을 찾기 때문이다. 그 사람에게는 열정적 증오를 발산하면서 매달린 그 무엇인가가 필요할 뿐 대의나 원칙은 후순위로 밀려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다른 대의로 넘어가는데 크게 갈등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끔 정책 노선을 바꾸는 사람들을 보기도 한다. 철새정치인이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정체성이 흔들려서가 아니라 호퍼의 말을 빌리자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한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양극단에 있는 사람들이 중간에 있는 사람들보다도 더 잘 통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것이 양극을 하나로 묶는 ‘열정적 증오’가 고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바라보면 정체성이 분명하지 못해 표류하는 삶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 증오의 대상은 반가운 안주감이 된다. 증오가 자신의 공허한 삶에 목적과 의미까지 부여해주니 반갑다고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래서 실재로 증오의 대상에게 온갖 악플과 욕을 퍼붓는 것 때문에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이들은 그렇게 심한 악플을 구사하면서도 자신이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고 느끼지 못한다. 그들에겐 나름대로 스스로 희망을 넘어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호퍼는 이런 사람들에게 증오를 빼앗아 버리면 우리는 신념 없는 인간으로 보게 된다는 재치 있는 말로 지적하며 표현했다. 

미국의 34대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는 중도(中道)와 중용(中庸)을 좋아했던 인물로 정평이 나있다. 그는 “사람들은 중도를 용납할 수 없는 것처럼 말하지만 도덕을 제외한 모든 인간 문제는 회색 영역에 속한다. 세상사란 흑백이 아니며 타협이 있어야만 한다.”고 했다. 그도 에릭 호퍼의 맹신자들을 애독했다고 한다. 

오늘날 한국정치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나는 열정적 증오를 품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을 증오의 발산으로만 몰고 간다면 답은 없다. 그들이 추구하고 빼앗긴 열기가 어떤 식으로 타협하며 화합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우리 모두의 숙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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